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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진 칼럼
작성일 2018-07-06 (금) 16:09
대법관 "검찰이 대법원 수사하는 법치국가가 어디 있나… 정말 비정상"

'검찰의 대법원 수사' 참담한 판사들

이명진 논설위원

법원 사태의 중심에 있는 게 법원행정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원 청사에서 이전시키겠다고 했고 '괴물' 소리까지 듣고 있으니 대수술은 불가피한 것 같다. 해체 논의까지 있다고 한다. 행정처는 판사 3000여명 중 1%, 30여명이 소속돼 있다. 법원 예산·인사, 등기, 전산, 사법 정책 수립과 재판 지원 등 재판 업무를 제외한 많은 일이 행정처 업무다. 대법관이 처장, 법원장급이 차장이다. 젊은 심의관 선발은 인사 평정이 기준이다. 재판 실력, 성격 등까지 감안해 엘리트 위주로 뽑혔다. 심의관 시절 인정받으면 총괄심의관(부장판사급)이나 국장, 실장(고법부장급)으로 승진하고 나중엔 대법관까지 되는 경우도 많아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들었다.

하지만 모든 판사가 선망(羨望)한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행정처 인사심의관 출신 한 판사는 "인사 때 지원을 받지만 행정처 근무 지원자는 별로 많지 않았다"고 했다. 일은 고되고, 출세는 보장될지 모르나 대외 업무가 잦아 가끔 '을(乙)' 노릇을 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외국은 행정처가 법원 소속인 곳도 있고 행정부나 의회 소속인 곳도 있다. 1939년 법무부에서 업무를 넘겨받은 미국 행정처는 사법권 독립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우리도 과거엔 군인·검사가 행정처장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법 독립을 위한 기관이던 행정처가 '권한 남용'으로 해체 위기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법원 청사 정문 앞에서 잠시 서성였더니 방호원이 금세 달려왔다. 얼마 전 청사와 법정이 시위대에 점거된 일 여파다. 대법원 담 밖에선 사흘이 멀다 하고 집회가 열린다. 최근엔 옛 통진당이 천막을 쳤다. 대법원 청사 주변 100m는 집회 금지 구역이다. 시위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시법은 이제 무효"라는 구호까지 외쳐댄다. 이들 눈에 대법원은 '사법(司法)의 심장'이 아니라 '재판 거래' 수사 대상일 뿐이다.

법원행정처 간부가 말했다. "힘들어요. 상황이 꼬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말은 믿어주지도 않고…." '양승태 행정처'가 아니라 '김명수 행정처' 간부다. 검찰은 법원 스스로 끌어들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 의혹 문제를 맺고 끊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법원 밖에서 20건 넘는 고발이 검찰로 들어갔다. 법원이 따로 고발할 필요도 없었다. 행정처 간부는 "우리는 순수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무리하고 탄탄히 서야지"라고 했다. 그러나 일은 그 바람대로 풀려가는 것 같지 않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파문이 1년 5개월째 법원을 괴롭히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파문이 1년 5개월째 법원을 괴롭히고 있다. 급기야 대법원이 검찰 칼날 앞에 섰다. 전례 없는 사법의 위기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연합뉴스

검찰은 '양승태 행정처'의 모든 자료를 달라고 한다. 대법원장·대법관이 쓰던 PC는 물론 업무추진비 사용 내용과 동선(動線) 파악 자료까지 요구했다. 대법원이 일단 거절하자 '디가우징 증거 인멸 의혹' 보도가 나왔다. 행정처가 재판 거래 증거를 없애려고 양 전 대법원장 등의 PC를 디가우징했다는 줄거리다. 디가우징은 이명박 정권 총리실이 민간인 사찰 기록이 담긴 컴퓨터를 파괴할 때 써서 알려졌다. 그냥 데이터 지우는 기술일 뿐인데 이미지가 고약해졌다. 대법원이 "오랜 관행"이라 해명해 본들 이미 증거 인멸 집단이라는 낙인이 찍힌 뒤였다. "아직 피의자도, 뚜렷한 범죄 혐의도 없는데 무슨 증거 인멸이냐"고 법리(法理)를 따져봐도 소용없다. 판사들은 '플레이'에 통달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새삼 실감하고 있다. 사건 담당 검사들의 수사 스타일을 탐문하는 판사들도 생겨났다.

검찰은 총력전 태세다. 간판 부서라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사팀에다 대검 연구관들이 뒤를 받치고 있다. 검찰로선 툭하면 영장을 기각해대는 법원에 본때를 보여줄 기회다. 꼭 처벌감은 아니더라도 법원의 약점을 쥐는 망외 소득도 기대할 수 있다. 애초 고발된 재판 거래, 법관 독립 침해와는 거리가 먼 '변협 회장 사찰 수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검찰은 던져진 먹잇감만 물지 않는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법원 내에선 김명수 대법원장을 탓하는 목소리가 늘어간다. 물론 대놓고 그럴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대법원장은 판사 3000명의 인사권을 쥔 '제왕적 존재'다. "그럼 덮고 가자는 거냐"던 대법원장 '친위 세력'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결국 제 발등을 찍은 거다. 범죄 혐의로 확인되지도 않은 얘기들을 검찰이 계속 흘리고 판사들이 범죄자 취급을 받는 일이 지속되면 책임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재판 거래 프레임은 틀렸다. 양승태 행정처가 상고법원 지지를 끌어내려 고 끝난 재판을 갖고 청와대에 생색내려다 들킨 것 아니냐"며 "그걸 부풀려 조직 신뢰 위기까지 불러왔다"고 했다.

판사들 처지에서 재판이 거래나 흥정 대상이 된다는 건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서울고법 부장과 판사들, 서울중앙지법 부장들, 법원장과 대법관들은 '있을 수 없고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대법원장은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으려 했다는 부분에 대한 의혹 해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의심스럽다는 거였다. 적지 않은 판사가 대법원장 발표로 자존심 상한다고 했다. 가까운 이들까지 '그런 거였어?' 여기는 것 같아 참담하다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대법관들 의견까지 묵살당한 건 법원 내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법원장이 주재하는 대법관 회의는 판사 인사나 사법행정 관련 중요 사안을 최종 결정하는 공식 의결 기구다. 그러나 대법관들은 '최종 결정 기관'이 아니라 그냥 여러 판사 중 하나로 취급됐다.

한 대법관의 말이다. "대법관들은 충분히 의견을 개진했지만 대법원장 발표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어요. 대법관들 의견과 전혀 동떨어진 얘기만 나오니까 따로 성명을 낸 겁니다. 대법관들은 명확하게 재판 거래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13명 모두 이견이 없었어요. 톤은 강하지 않았지만, 대법관들이 어디 흥분해서 쓸 수 있습니까." 지난달 15일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 직후 대법관들이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 된다"며 낸 성명은 그렇게 나왔다. 이 대법관은 "30여 년 판사를 하면서 상상도 못 한 충격이다"며 "이건 정말 정상이 아니다. 자유민주, 법치국가에서 명확한 근거 없이 검찰이 최고 재판 기관을 수사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느냐"고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비슷한 경우는 전에도 있었다. 대법관들은 지난 1월 김 대법원장 지시로 구성된 법원 2차 조사단이 '원세훈 상고심' 선고(2015년) 즈음에 청와대와 행정처가 의견 교환을 했다는 문건을 공개했을 때도 "재판에 관해 사법부 내외부 누구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성명을 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판사는 "회의에서 '청와대 수석 나부랭이가 어떻게 대법원 재판에 개입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린 대법관도 있었고, 그 분위기가 성명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사이에 파인 골이 그만큼 깊다는 것이다.

갈등과 불신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얼마 전 인터넷 매체의 오보(誤報)로 법원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어느 고법 부장판사가 지난달 초 '재판 거래 수사 불가' 결론을 낸 고법부장 회의를 주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판사는 휴가 중이어서 회의에 참석한 일이 없었다. 매체는 기사를 취소했지만 이번엔 누가 음해한 거냐를 놓고 소문이 분분해졌다. 지방의 부장판사는 "(위에 일러바치는) '거점 법관'이 어디 있을지 몰라 말조심하게 된다"고 했다. 서울고법 판사는 "법원은 기본적으로 합의제 기관이고 중요 사건은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가 의견을 조율한다"며 "합의의 전제는 다름을 존중하는 것인데 앞으로 그런 관계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솔직히 겁난다"고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빚은 '양승태 행정처'에 대한 판사들의 시선은 싸늘한 편이다.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모든 판사 회의 발표문에 들어간 '책임을 통감한다'는 문구도 불만"이라며 "조용히 재판만 해왔는데 왜 그들 책임까지 통감해야 하나. 학창 시절 반에서 잘못한 몇 명 때문에 단체 기합을 받는 꼴"이라고 했다. 다른 판사는 "국가적 이슈들이 법원에서 결론 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권력화한 일부 법관이 '우리가 원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동료 판사 사찰까지 했다"며 "이제 재판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원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일부 고참 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은 그것대로 책임질 일이지만, 갈등의 근본 원인을 달리 본다. "세대와 직급 간 갈등의 바닥에는 고법부장이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젊은 판사들의 공포와 인사 적체가 깔려있으며, 양승태 코트(court)의 엘리트 발탁 시스템과 김명수 코트가 내세운 평등주의가 충돌했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고법부장 승진제를 폐지하고, 사무 분담 문제도 법관들끼리 정하도록 했다. 부장과 배석이 서로를 평가하고 , 법원장을 판사들끼리 호선(互選)하자는 방안도 나온다. 고참 판사들은 이런 조치가 적지 않은 소장 판사들의 지지를 얻으며 정권 교체 바람까지 가세해 '인적 청산'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어느 법조계 원로가 "과거 적폐를 때려잡는다고 하다가 법원의 현재와 미래를 다 망치게 생겼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됐는데, 판사들만 못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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