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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영인
작성일 2018-04-14 (토) 03:28
박정희의 4.3, 노무현의 4.3 -옮김-

 1961년 9월 7일 오전 11시, 한 사나이가 바람 부는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이 사나이가 도착하기 전까지 제주도는 망망대해의 고도였고, 제주의 사람들은 탐라국이나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살았던 방식과 다를 것 없이 오두막 초가집에서 바닷가 용천수를 마시며 변소에 돼지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그날 제주공항에 도착한 사람은 작았지만 위엄이 넘쳤고, 어깨에는 별 세 개가 달려 있었다. 바로 박정희였다. 박정희가 도착하고부터 제주도는 오천년의 묵은 껍질을 깨고 삶의 방식을 바꿀 준비를 했다. 고려의 왕이나 조선의 임금도 제주도를 바꿔주지 못했던 제주도를, 고대에서 현대로 단 한방의 타임머신으로 이동시켰던 사람은 바로 박정희였다. 

역사적으로 변방 중의 변방 제주도는 풍랑의 기착지나 유배지였다. 그래서 제주도는 역사의 유력인사들이 스쳐가는 정거장이기도 했다. 하멜,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김대건 신부,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인사들이 제주도에 영향을 끼쳤지만 오로지 제주도는 박정희가 만든 섬이었다. 박정희만큼 제주도를 사랑하고 제주도를 바꾼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제주를 둘러보고 두 가지를 깨달았다. 제주도가 무한한 미래 가치를 가진 섬이라는 것과, 제주도가 4.3으로 인해 상처를 가진 섬이라는 것이었다. 박정희가 제주를 떠나자 김영관 도지사는 특별 담화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최고회의 의장은) 제주도가 과거 정부로부터 버림받아온 사실에 대해서는 아주 가슴 아파했다"

 4.3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박정희는 제주도의 개발과 4.3이재민의 원주지 복귀사업을 정했다. 박정희는 제주도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김영관 지사는 이를 바탕으로 제주도에 '물'과 '길'의 혁명을 추진했다. 제주도에는 식수가 없어 바닷가 용천수를 마시고 있었고, 포장도로는 전무했다. 제주도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5.16도로 개발과 수도 개설은 이렇게 4.3의 치유에서 시작되었다.

 김영관 지사는 중앙 고위층이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5.16도로 건설이야말로 군사정부가 도민들에게 해줄 수 잇는 절대적인 사업일 뿐 아니라 4.3사건으로 인한 도민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보상사업"이라고 역설하며 예산 지원을 사정하곤 했다. 수도 건설 사업에서는 예산 지원이 거부될 때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호텔 메모지에 그려준 어승생 수원지 설계도를 들이대며 대통령의 역점사업이라며 공무원들을 협박하다시피 했다.

 4.3이재민 원주지 복귀 사업은 1962년 6월 9일 남원면 하례리에서 기공식을 가진 후 전도로 사업이 확대 되었다. 남로당의 4.3폭동으로 원주지를 떠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6.25사변과 4.3공비 잔당들의 준동으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당시 복귀희망자는 3865세대에 17,915명이었고, 15년 만에 4.3이재민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제주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제주도 종합개발을 위해 필요하면 특별법 제정과 자유항 지정을 검토하겠다며 이런 말을 했다. "이번 한일회담이 잘 되기만 하면 제주에 몇 천만 달러를 팍 쏟아놓겠어" 이때 박정희가 제주도를 위해 했던 모든 구상들이 지금 제주특별자치도 개발의 초석이 되었다. 관광, 감귤, 축산 아직도 진수성찬인 제주도의 밥상은 그때 박정희가 차려준 것이었다.

 박정희가 했던 4.3 치유의 구상은 제주도개발특별법 구상까지에 이르렀고, 이 구상은 노태우 정부에서 특별법으로 제정되기에 이른다. 박정희의 4.3치유 방식은 가난했지만 말없이 제주도 개발에 힘을 쏟는 것이었다. 4.3에 대한 언급으로 아픈 기억을 불러내기보다는 묵묵히 옆에 서서 등을 토닥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 다시 4.3을 치유하겠다며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에서 제정된 4.3특별법으로 제주4.3정부보고서를 발간하고 4.3평화공원을 조성했다. 과거사 파먹기에 수백억을 쏟아 붓고 공산폭도들까지 위무하는 노무현 시대는 돈이 넘쳐나는 나라였다.

 노무현은 제주4.3에 대해 사과했다. 대통령으로서 국가 폭력에 대한 사과였다. 그러나 노무현은 공산폭도들의 폭력에는 침묵했다.

더 나아가서 노무현은 4.3정부보고서에서 공산폭도들을 항쟁투사로 만들고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을 학살범으로 만들었다. 노무현은 군인과 경찰보다 공산폭도를 편드는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수백억의 예산으로 4.3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여기에 공산폭도들의 위패까지 대량으로 모셔놓고 추념을 올렸다. 인권 대통령으로 자처하던 노무현은 공산폭도들에게 피살된 피해자 유족들의 인권에는 무참했다.

노무현은 4.3평화공원에서 유령을 불러내어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심의 굿판을 벌이는 저주의 무당이었다.

 노무현은 4.3정부보고서를 통해 다시 4.3의 귀신들을 불러내었다. 그 귀신들을 양쪽으로 나눠 피해자와 가해자로 구분하고, 가해자를 가리키며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저것들이 당신들을 학살한 범인이다. 저 수구꼴통들을 때려잡아라. 노무현의 피해자 가해자 구별은 순전히 사기였다.

노무현을 지지하면 피해자요, 거부하면 가해자되는 구조였다. 노무현이 주장하는 피해자 측에는 오히려 가해자가 더 많았다.

 노무현의 4.3치유 방식은 한바탕 시끄럽게 굿판을 벌여 피해자의 한을 해원(解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방식은 다시 좌우로 진영을 나누고, 공산폭도들에게 항쟁투사라는 훈장을 달아주고 죽창을 집어주며 대한민국을 향해 돌격하라는 복수전의 방식이었다.

그 때의 아픈 기억을 헤집어내어 증오를 키우고 다시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라는 제2의 4.3이었다.

 박정희의 4.3이 아픈 4.3에 대한 언급을 피하면서 묵묵히 개발과 복지를 향해 전진하는 미리지향형이었다면, 노무현의 4.3은 유혈이 낭자한 4.3의 장면을 펼쳐놓고 강제로 기억을 불러내어 증오심을 부추기고 선동하는 과거지향의 4.3이었다.

제주도민의 옆에서 말없이 등을 두드리며 잘 살수 있다며 속삭이는 사람이 박정희였다면, 제주도민의 뒤에서 등을 밀며 저놈을 때려잡아 원수를 갚으라고 선동하는 사람이 노무현이었다.

 박정희 시대의 제주도 시골에는 4.3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삼촌 조카하면서 아픈 기억을 묻고 공동체로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시대에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고 공산폭도들이 항쟁투사로 변신하면서, 기억을 묻고 삼촌 조카 하던 사람들이 다시 기억을 불러내어 가해와 피해의 갈등과 반목으로 빠져들고 있다.

 좁은 제주 지역사회에서 필요했던 4.3의 치유는 박정희의 방식이 맞았다.

노무현의 방식은 치유를 가장한 제2의 복수전이었다.

무덤에 누어있던 공산폭도들의 유령을 불러내어 다시 봉화를 올리고 경찰지서를 습격하라는 남로당 박헌영의 도래였다. 지금 원희룡 도지사의 4.3방식도 좌익만을 지원하는 노무현 방식을 따르고 있다.

 지금 제주사회에는 4.3 70주년을 맞아 170여억 원의 예산이 지원되고 있다. 4.3공산폭동을 항쟁으로 미화하는 세미나, 전시회, 음악회, 각종 행사가 꼬리를 물고 있다. 좌익들의 돈 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하여 밤마다 왓쌰 시위가 벌어지고 김일성 만세소리가 드높았던 1948년의 제주도가 다시 도래한 것이다.

노무현의 4.3은 언제나 끝날까. 박정희의 4.3은 언제쯤에 다시 제주도에 찾아올까.

뉴스타운 김동일 칼럼니스트 tapng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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