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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의 영웅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2-19 (화) 21:35

한광덕 중위와 투코전투

포병 관측장교가 이끌어낸 대승

 1966년 8월 9일 밤, 수도사단 기갑연대 제9중대는 캄보디아 국경선 부근 산악지대 둑꼬에서 중대 기지를 습격한 1개 연대 규모의 북베트남 정규군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뒀다. 둑꼬전투의 승리 요인은 포병화력 등 외부 지원화력이 결정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9중대에 파견된 61포병대대 관측장교 한광덕 중위의 역할이 지대했다.

북베트남군의 안방과 다름없는 산악지역에 중대 단위 전술기지를 편성하는 것 자체가 포병 등 외부 지원화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군들은 그 점을 수긍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론상의 전술일 뿐 실제 상황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이 공격을 감행할 경우 1개 중대 기지를 쓸어버리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3대대를 작전통제하게 된 미 제3여단장 워커 준장은 대대장 최병수 중령에게 “대대 단위로 강력한 타격부대를 편성하라”라는 작전 개념을 하달함으로써 그들은 사사건건 충돌했다.그러던 8월 9일 밤, 1박 2일간의 국경선 정찰을 마치고 기지로 복귀한 9중대는 기진맥진해있었다. 또 내일이면 중대장의 교대가 예정돼 있었다. 그 같은 분위기로 인해 중대의 경계는 대체적으로 소홀했다. 몇 차례 적의 공격 징후가 중대장에게 보고됐으나 중대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중대장과 같은 잠복호를 사용하던 관측장교 한중위가 중대장 인수인게를 위해 신임 중대장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인접 잠복호에 누워 있던 밤 10시쯤이었다. 9중대에 배치된 미군 전차가 시동과 함께 갑작스러운 사격을 시작하면서 중대 기지는 단숨에 전장으로 바뀌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한중위는 철모를 쓸 틈도 없이 중대 벙커로 달렸다. 그 순간 북베트남군의 포탄이 중대 벙커를 명중했다.

교통호에서 굴러 떨어진 한중위는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의식을 찾은 한중위가 엉금엉금 기어 중대 벙커에 들어서자마자 본능적으로 보이는 무전기를 움켜쥐었다. “호남선(대대장), 여기는 만리포(중대장) 관측장교, 호남선은 포병 무전병을 바꾸라, 넷둘 사격임무 송신한다. 화집점(표적) AB311, 방위각4360, 사격 중인 적 박격포, 포대 10발!”

그가 최초 사격 임무를 위해 사용한 무전기는 대대 지휘망이었다. 한중위를 뒤따르던 포병 무전병이 부상병에 막혀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대장을 바꾸라”는 대대장의 요구에도 한중위의 “포대 10발” 사격 임무는 계속됐다. 수정 사격도 없이 단번에 포대 10발을 사격하라는 요구는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또 그가 화력 지원 계획을 보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사격 임무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은 중요 표적의 제원을 수첩에 기록해 두고 암기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중위의 요구에 따라 최초 발사된 첫발이 적의 박격포 진지를 명중시킴으로써 적의 공격은 주춤했다. 이 틈을 이용해 제9중대는 난장판이 된 지휘체계를 추스르며 기지 방어에 임할 수 있었다. 결국 9중대가 연대 규모의 적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은 포병의 화력 지원이 결정적이었으며 중대에 배치된 미군 전차의 역할도 대단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보전포 협동 작전의 진수를 보여 준 전투였다.

정부는 한중위의 그 같은 공로를 높이 평가해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1명의 태극무공훈장과 7명의 을지무공훈장 등 190여 명에게 훈장이 수여된 포상 규모로 볼 때 포병 등 지원 장병에 대한 포상과 훈격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이름아이콘 김정현
2007-11-23 16:31
한장군님이  없었으면 큰일 날번했네요
   
이름아이콘 인강
2008-02-09 15:55
일체의 언급을 피하려 했으나, 김정현 6.25참전 원로 선배님의 관심표명에 접하며  몇자만 적겠습니다.  중대를 공격했던 적은 월맹 정규군 연대가 아닌 1개 대대 증강규모였으며, 박격포의 공격준비사격과 함께 기습공격을 시도했던 것으로 판단합니다.  적의 기습은 아군포병의 신속한 대응사격으로 그 효과를 상실했으며, 중대에 배속되었던 미군 전차 1개 소대와 아군 기관총의 기총소사로 적은 약진과 돌격의 기회조차 상실한 상태에서 아군과 미군포대의 포탄세례로 진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름아이콘 인강
2008-02-09 16:20
신속한 사격준비가 되어 있던 61포병 c포대와 적 박격포의 낙탄 속에서도 기관총사격을 계속할 수 있었던 미군 전차소대는 전승의 근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보병은 포병에게, 포병은 보병에게, 그리고 한국군은 미군에게, 미군은 한국군에게 서로를 보다 힘껏 칭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신임 중대장 강세호 대위와 일곱분 전우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름아이콘 인강
2008-02-09 16:36
촤용호 군사편찬 연구소 연구원이 별도의 기사를 작성해 준것을 감사하나, 훈장의 훈격에 대한 언급은 달랐기를 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의 경우엔 현장에서 살아난 이상의 훈장은 없었기에 결코 해당이 안되는 것이고, 당시의 현장 병사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전투 현장에서의 훈장은 부대의 대외적 명예보다는 직접적 위험을 극복하며 임무를 완수한 개인의 기여도가 비중있게 고려되어야만 부대의 사기와 전투력 유지에 보다 기여할 것이란 느낌이 있었음을 이 기회에 부언합니다.
   
이름아이콘 상처이민
2009-09-02 21:12
회원캐릭터
정말로 몰라던것을 알어내요 장수 다운 분 입니다 다른 장교들에게 배우점이 많은것 같아요 장군님 건강 하세요
화이팅 필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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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의 영웅들

번호 본문내용 작성일
34 김용길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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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로 중위 부비트랩 덮쳐 부하 목숨 구한 소대장...  수도사단 26연대 5중대 2소대장 윤상로 중위는 홍길동작전에 참가해 부하를 구하고 장렬히 전사한 영웅이다. 1967년 4월 맹호·백마 2개 사단의 연결작전인 오작교작전을 성공시킨 주월 한국군은 7월 9일부터 2개월간에 걸친 홍길동작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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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대위 위기 속에 돋보인 현장 지휘관 역할 수도사단 제26연대 10중대장 민병선 대위는 맹호11호 작전에서 수훈을 세운 영웅이다. 1968년 4월 20일부터 8일 동안 뀌년 북쪽 10㎞ 지점의 고보이 평야 해안지역에서 전개했던 작전이다. 당시 그곳 주민들은 대부분 읍내 시가지로 이주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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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하 소위 침투 적 크레모아로 격멸 승리 이끌어 9사단 28연대 5중대 3소대장이었던 나민하 소위는 1970년 10월 11일 밤 동호아 매복 전투에서 수훈을 세운 영웅이다. 동호아는 28연대 본부가 위치한 베트남 중부 뚜이호아로부터 서북쪽으로 13㎞ 지점의 길목에 위치한 마을이었다.당시 한국군은 적은 병력으..
200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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