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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길을 간다

박경석 = 한국시문학평론학회 회장 /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예비역 육군 준장-

작성자 박경석
작성일 2008-04-20 (일) 16:25
건군60주년에 재조명하는 베트남 참전과 국군의 발전

왜곡된 일부의 시각

 건국60주년과 건군60주년을 맞이하는 2008년은 참으로 의의 있는 해이기도 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만 60세가 되면 환갑이라 해서 그날을 축하하는 일생일대의 축일이기도 한데 하물며 나라가 서고 국군이 세워진지 60주년이라면 경축일은 물론 역사적 의의를 되새겨 재 도약의 각오를 다져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제2의 건국 제2의 건군의 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경축일에 잊혀져가는 전쟁, 관심밖의 과거사가 되어 버린 베트남전쟁에 대해 재조명하는 일은 참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전은 국군에게 있어서 최대의 변화, 최대의 발전, 최고의 자존심을 창출하는 등 건군 사상  가장 으뜸가는 빅 이벤트(Big event)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베트남전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게 가볍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비하하는 경우까지 생기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과거 김영삼 정부의 교육부 장관 김숙희가 국방대학원 특강에서 베트남전 참전 장병을 용병(傭兵)이라고까지 모독한 사건도 있었으니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정황이다.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을 별로 중시하지 않고 심지어 비하하는 경우까지 생기는 일이 국외자뿐만 아니라 군 원로들 가운데도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 원인을 유추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베트남전은 비정규전이기 때문에 한국전쟁과 같이 전투가 치열하지 않았으므로 전투 경험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

둘째, 베트남전에 참전하지 않은 한국전쟁 참전자가 자신의 경험을 더 격상시키기 위한 우월감 작용.

셋째, 베트남전 중반 이후 만연되기 시작한 주월한국군의 부정적인 사건들의 빈발.

넷째, 베트남 공화국의 패망으로 성과없는 전쟁이 되어 버린 점.

다섯째, 미국으로부터 받은 참전수당으로 인한 국군 내 경제적 불균형과 이로 인한 불만의 고조.

이상과 같은 부정적 인식은 일부의 편견에 지나지 않고 실제 업적과 효과를 외면한 왜곡된 시각임을 여기서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한국전쟁 당시 4년제 정규 사관생도로 6.25당일 첫 전투에 이어 임관 후 소대장, 중대장 대리로 참전하였고 베트남 전에서도 맹호사단 제1진 보병대대장으로 참전한 바 있으므로 양 전쟁에서 얻은 교훈이 성격상 다르다는 측면에서 공평하게 평가할 수 있음을 밝히면서 이 글을 풀어 나가기로 한다.

베트남 전 참전의 당위성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가 명백히 밝혀지고 있는 시점에서 경제의 도약이 가장 뚜렷한 업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더구나 IMF체제하의 경제적 위기를 겪은 우리가 그의 경제적 성취와 성과가 강렬하게 조명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느 보도 매체에서도 당시의 경제적 도약에 연관하여 베트남전 참전에 의한 그로부터 얻어진 실제 성과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역사의 사각지대가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불행한 일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베트남전 참전이야 말로 한국경제를 부흥케 한 가장 뚜렷한 효자였다는 사실을 망각할 위험성 때문이다. 베트남 전 참전은 국군의 발전에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을 필두로 하여 수구적 보수성향의 민족성을 해외지향적으로 변화케 하였고 많은 업체와 기술인력이 해외 진출의 물꼬를 트면서 경제발전에 시동을 걸었다. 거기에 더하여 국산품의 수출 개척은 한국의 기업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오늘날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케 한 원인제공인 베트남전 참전 장병들을 국군의 발전과 함께 한국경제를 부흥케 한 역사적 업적을 성취한 당사자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 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미국의 강요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당시의 파병 결정과정을 살피면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성취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베트남 두 정부 당국의 전투사단 파병요청이 그 기반이 되었음은 분명하지만 그 결정과정에서 박대통령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기록은 많이 발견된다.

당시 대부분의 국민과 야당은 전투사단 파병을 맹렬히 반대하고 있었다. 박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고려사항에 의해 전투사단 파병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첫째, 한국전쟁당시 미국과 동맹국들의 참전으로 위기를 극복했으므로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둘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공동전선의 형성과 상호 지원의 필요성.

셋째, 국군의 전투경험 축적으로 대 북한군 우위의 전투력 유지.

넷째, 한국방위에 대한 미국으로부터의 확실한 보장.

다섯째, 경제발전을 위한 해외진출의 돌파구 마련.

이상과 같은 고려사항은 베트남 전 참전으로 모두 성취되었고 오히려 처음 기대했던 것 보다 더 큰 결과를 얻게 되었다.

베트남 전 한국군 참전은 대한민국의 경제 기반을 구축하는데 기여했고 국위를 선양했으며 국군의 전투경험 축적으로 북한군보다 우위의 전투기술을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지원만 받던 우리가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민족적 자긍심과 자존심을 불러 일으켰다.

독자적 전술교리의 개척

전투부대 최초 피월당시 맹호사단은 제1연대와 기갑연대 등 2개연대로 구성되었다. 이때 재편성과정에서 대대장 선발은 다음과 같은 고려사항이 적용되었다.

첫째, 한국전쟁 전투경험자 중 전공이 있는자.

둘째, 대대장 직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자.

셋째, 육군대학 정규과정 졸업자 등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선발된 6명의 제1진 보병대대장 모두 육군대학의 현직 교관들이었다.

이와 같이 재편성 과정에서 전군적으로 유능한 인재로 편성을 완료했던 것이다. 6명의 대대장 선발은 한 예에 불과하고 모든 부대의 구성 요원은 이와 같은 엄선절차를  통해 임명되었다.

따라서 모든 구성원은 엘리트 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최초 파월의 명예와 긍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주월 한국군이 베트남에 배치되면서 미군 또는 베트남 군과는 전혀 다른 전술배치를 시도하였다. 바로 중대 단위로 사주방어를 하는 전술기지 배치였다. 이와같이 관례를 전혀 무시한 새로운 개념의 부대배치는 채명신 장군을 비롯하여 모든 주월군 장교들이 독자적 전술개발에 얼마나 마음을 쏟고 있었는가를 알게 하는 한 예였다.

당시 미군은 탐색과 섬멸(Search and distroy)이라는 작전개념을 적용하여 연대 또는 사단 단위의 기지를 운영하면서 탐색 후 헬기에 의한 기동작전으로 적을 섬멸하는 관용전술(慣用戰術)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군의 독자적 전술배치를 보고 미군 고위당국자는 당황하였다. 중대단위 전술배치는 효용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적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때 그 공격을 받은 중대는 하룻밤 사이에 전멸할 것이다. 그러므로 최소한 대대단위로 운영하면서 탐색과 섬멸 작전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채명신 장군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미군 당국자들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채명신 장군에 의하여 창안된 중대전술기지 개념이란 다음과 같다.

그것은 중대단위 사주방어체제를 의미하는데 중대단위로 강력한 장비계획하에 요세화하여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하여 1차적으로 진지 전방에 매복, 적의 침투를 포착 타격한 후 주력을 중대전술기지에서 섬멸한다는 방어 전술 개념이었다.

파월 초기에 있어서 중대전술기지의 적 공격에 대한 선공적인 방어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투코 지역에 배치된 맹호사단의 1개 전술기지에 월맹군 2개 대대가 기습공격을 가해왔다. 밤새 무려 7시간의 전투에서 적은 187구의 시체를 남겨놓고 도주해 버렸다. 이 전투결과는 즉각 전 세계의 매스컴을 통해 '베트남의 기적'이라는 표제로 보도되었다. 최초의 중대전술기지에서의 방어전투의 성공사례였다.

그로부터 다시 6개월후 추라이 남쪽의 청룡 여단의 전술기지에도 1개 연대의 베트콩이 공격해왔다. 용감한 해병은 수차례의 파상공격을 막아내어 적을 섬멸·격퇴시켰다. 이때 적의 시체는 무려 230구나 되었다.

이로써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개념은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미군 당국도 채명신 장군에게 다시는 시비를 걸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독자적 전술개발과 발전에 자신을 얻은 한국군은 계속하여 미군 전술교리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있는 행보로 베트남전을 개척해 갔다.

다음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군이 발전시킨 전술가운데 또 하나가 야갼 침투 공격이다.

베트남전선에서의 밤은 오로지 월맹군이나 베트콩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었다. 따라서 밤을 찾아와야 한다는 의지가 한국군 지휘관에게 널리 퍼졌다. 낮에 충분히 휴면을 취하게 하는 습성을 기른 뒤 평소 정찰로 익혀 두었던 목표지역에 은밀히 침투, 완전 포위망을 형성한 후 여명을 기하여 일제히 돌격을 감행하여 적을 섬멸하는 전술이다. 그래서 맹호사단 1연대가 관용전술(慣用戰術)로 개발하여 성공시킴으로써 세계의 이목을 끌만큼  큰 전과를 올렸다.

야간침투공격의 성공은 한국군을 야간의 수세에서 공세적 위상으로 전환케하여 적으로부터 밤을 되찾았다.

어디 그뿐이랴. 한국군은 수색, 정찰, 매복 등 독특한 방법으로 관용전술을 개발 발전시켜 적을 중대전술기지 도달 전에 포착, 섬멸시켰다.

야간 매복작전의 성공으로 이어진 숙달은 곧 한국의 DMZ 매복작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베트남전에서 개선한 소대장 분대장들이 한국의 방어선에 배치됨으로서 우리의 방어진지를 밥먹듯 쉽게 드나들던 공비들이 일망타진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1968년을 기해 DMZ일대는 침투를 노리던 북한군과 공비의 시체가 사방에 쌓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되자 북한 당국은 DMZ를 통한 지상침투를 포기하고 해상공작 및 수중침투로 전술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 게 되었다.한국 방어에 일대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 외에도 한국군이 개척한 자질구레한 전기 및 전술은 헤아릴 수조차 없게 많았다. 이로써 한국군은 미군의 교리에만 의존하던 자세에서 주체적 교리발전에 대하여 자각하게 됨으로써 육군대학을 위시한 각급 군사학교에서 한국학의 불을 댕기는 혁명적 사고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국학의 태동은 즉각 우방국가에도 영향을 미치기 되어 미군 또한 깊은 관심을 갖는 한편 자유중국은 마침내 한국학의 전수를 위해 장개석 총통이 직접 박대통령에게 한국군 교수단의 파견을 요청해 왔다.

1968년 육군의 한국학 교수단(단장 최영구 준장, 교수 박경석 대령(필자), 교수 최병수 대령)이 마침내 대만에 파견되어 자유중국 전체 영관급장교 및 장성들에게 한국군이 개발한 전술교리를 강의했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상 한국군 군사교리를 외국에 전파한 최초의 쾌거였다. 따라서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은 국군의 발전은 물론 민족적 자주 의식과 긍지를 갖게 한 면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고 평가할만 하다.

선무공작과 귀순작전

맹호사단 청룡여단 등 전투부대가 베트남 책임전술지역(TAOR)에 배치된 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뜻밖의 훈령을 하달하였다. 내용인 즉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이훈령은 곧바로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한국군 내에서도 일부 불만의 소리가 발생하기시작했고 미군 당국은 노골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도대체 100명의 베트콩을 놓쳐도 좋다면 작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항의였다. 그러나 채명신 장군은 미동도 않고 그 방침을 밀고 나갔다. 채사령관이 결심한 그 훈령 배경에는 한국전쟁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체험한 인도주의가 작용하였다. 월남인의 동족상잔에 끼어 들어 월남인의 가슴에 자칫 한을 심는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데서 경각심을 갖게 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 훈령에 긍정적 고무적 반응은 베트남의 전매스컴, 특히 거의 모든 신문의 사설에 나타났다. 한국군의 인도주의적 선언에 대하여 전폭적인 공감을 표시하고 한국군에 대한 뜨거운 격려를 보냈다.

이러한 배경하에 주월 한국군이 설정한 대민 정책은 군사작전과 함께 대민 심리전과 대민 지원사업으로 확대되었다.

한국군의 대대단위 본부에서는 대민 접촉과 그들의 지원을 위한 심리전 계획이 수립되었고 중대단위 전술기지에서는 책임전술지역내의 중대담당구역 민간인가 접촉을 유지하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지원, 식량공급, 주택건설,학교지원 등을 위해 오히려 전투에 할애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집중했다.

그결과 나타난 현상은 비록 적이지만 베트콩의 심리변화를 유도케하여 많은 귀순자를 획득함으로써 적에 대한 정보수집에 활기를 불러 일으키는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따라서 책임전술지역내의 작전주도권은 물론 심지어 야간통행과 행정수행에 자유가 보장될 정도로 평정이 달성되어가고 있었다.

비로소 미군 당국도 마침내 그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미군관계관들이 속속 한국군 대대본부를 방문하여 대민지원사업과 심리전 집행과정을 견학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군들은 그 효과를 끝내 발휘하지 못하였다.왜냐하면 피부색과 생활습관이 다른 서양인과의 접촉에서 오히려 베트남인들은 경계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에 프랑스인의 식민지 통치에 대하여 혐오감이 깊이 배어있는 베트남인에게는 미국인이라지만 프랑스인의 침략적 공작이라는 생각으로 의심했던 까닭이었다.

공산주의자에 의해 성취된 오늘날의 통일 베트남에서 따이한(한국인)에 대해 거부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는 현상도 한때는 적이었지만 당시 한국군의 대민 사업을 기억하는데서 기인했다고 본다.

군대가 전장에서 전투를 기피한다면 그 군대의 존재가치가 없지만 군대가 전투만이 승리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단견(短見) 또한 우둔한 짓이라고 생각된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오늘의 시점에서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은 오늘의 국군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국군의 발전에 기여

비 전투부대인 이동외과 병원과 비둘기부대의 베트남파병을 시작으로 주월한국군 사령부의 창설과 맹호사단, 백마사단, 청룡여단, 십자성부대, 백구부대, 은마부대 등 1964년 7월19일부터 1973년 3월23일까지 8년8개월에 걸쳐 총 31만2천8백5십3명의 자랑스러운 국군장병이 베트남전에 참가했다.

그 기간 중 우리는 약 5천명의 전사자와 1만명이 넘는 전상자 그리고 수만명에 이르는 고엽제 후유증환자를 내는 값진 대가를 베트남 땅에 치루었다.

건군 60주년과 파월44주년을 맞게되는 이시점에서 베트남전에 대한 평가분석과 함께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을 재조명한다는 것은 자주국방사상과 국가관의 충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1964년 5월 미국 정부의 한국군 베트남 파병요청이 당도하자 조야에서 찬반 논쟁이 불등하였고 미국은 한국에의 압력수단으로 주한미군 2개사단을 베트남전에 투입하겠다고 위협했다. 당시 남북의 군사력은 오늘날보다 더 극심한 불균형 상태에 있었고 병력과 장비면애서 그 차이가 극심하였다. 어디 그 뿐이랴. 경제력 또한 지금의 상태와는 달리 북한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더욱이 김일성은 중국의 공산통일에 고무되어 재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팽배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의 찬반 양론을 관망하면서 찬성쪽의 논리전개에 미소를 보내는 한편, 반대논리와 그 여론을 적절히 활용하여 미국으로부터 가급적 많은 실리를 얻어내는 외교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 과정에서 박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두 가지 큰 명제가 작용하고 있었다.

첫째는 한국군이 현대전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군사력의 현대화에 확충을 기대하였고 전투 경험 축적을 위한 대 북한군과의 전력우위를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둘째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하여 한국 방어의 확실한 보장과 함께 경제적 실리를 얻어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전투부대 파병을 결정한 박대통령의 판단은 어떤 대안보다 현명한 통찰력의 결과였다.

주한 미군사단의 베트남전에의 투입주장의 철회로부터 시작하여 3개 예비사단의 전투사단화, 한국군의 장비 현대화를 보장, 군원 이관의 중단을 약속 받았으며 선진국의 자발적 차관 공여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적 완수에 기여하게 되었다.

지난날 비록 금융위기로 IMF 체제하의 수모를 겪어 보았지만 당시 경제기반의 완성과 대북 우위의 경제국으로서의 위치확보는 실로 베트남전의 국군참전의 결과로 얻어낸 성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 우리 기술자들의 해외 진출의 길이 열렸으며 선진국 차관의 도입계기가 되었고 한국상품의 수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한국인의 보수적 국수주의적 사고가 세계로의 진출의욕과 자신감의 고취로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국제화 한국의 변모를 보게 된 것이다.

끝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함으로써 읻어낸 국군의 군사적 실리를 결론으로 요약하겠다.

첫째, 국군이 비로소 현대전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최신장비의 획득과 이를 조작 운용하는 능력을 구비했고 선진국 군대수준의 전술 운영기능을 체득했다.

둘째, 한국에서는 국군이 미군의 작전통제하에 있었지만 베트남전에서는 단독 작전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됨으로서 자주적 국방사상을 인식하게 되었다.

셋째, 한국방어에 절대필요한 매복과 수색정찰, 경계 등 소부대 전술의 실전체득으로 DMZ 작전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또한 한국적 전술교리의 발전계기를 마련하게 되어 국군의 자존심을 찾았다.

넷째, 한국인의 '우물안 개구리'식 수구사고가 개방적 진취사고로 발전함에 따라 진취적 군사상을 구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섯째, 새로운 긍지의 깨달음이다. 역사를 통해 내내 강대국의 침략과 원조등으로 독립국가 국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기에 부적한 정황이었지만 우리도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됨으로써 새 군사상의 발전계기를 갖추었다.

'베트남 참전용사는 국가유공자가 되어야 한다'

 건군 60주년을 맞이하는 2008년에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된 과제가 바로 '베트남참전 용사의 국가유공자로의 명예 회복' 이다.

역대 정권이 얼마나 무능하고 자기들 밥그릇만 챙기는데 정신을 팔렸는지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이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을 홀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호주 정부에서는 자국민 베트남전 참전자 뿐만 아니라 한국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민자까지 국가 유공자로 대우하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 이민자들이 비록 호주국가를 위해서 참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차원 높고 숭고한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혈맹군이기에 대우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거룩한 생각인가.이럴진데 우리의 지도자는 무엇인가. 맹호 재구대대장 내 후임  참전 전우인 노태우나 훨씬 뒤 백마사단 연대장으로 참전한 전두환은 전우를 위한 시혜커녕 수 천억원 뇌물 챙기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아...,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평시 병영에서 자기 잘못으로 병을 얻은 자에게도 국가유공자 자격을 주는 마당에 머나먼 이국 정글에서 죽음 직전에서 살아남은 영웅들을 내팽개치는 조국이 진정 조국인가?.다만 무공훈장이 없다는 조건 때문인데 무공훈장은 주로 지휘관에게 주어졌지 실제 정글을 누빈 병사들은 비록 전공이 있어도 빠지기 일쑤였다.

나는 대대장으로 참전, 정글에서 직접 전투한적이 없었지만 무공훈장은 수두룩하다.나는 이 훈장을 타도록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준 내 부하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앞으로 나는 명예 회복을 위해 여생을 바칠 것이다.

새 이명박 정부는 선거과정에서 공약한바 있으므로 기대를 걸어보지만 만약 딴소리가 나온다면 투쟁대열에서 앞장 서겠다.

이름아이콘 카이로
2008-04-20 18:01
장군님의 용기를주는글 바로 우리베트남 참전자들의 용기충전과 한마음 한뜻으로 힘이 될 진리를 담아 다시 지난 과거사 되돌아볼 수 있는글 많은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지난 과거 잘못된 보훈 정책만 바로 잡아도 참전전우들에게 보상하는데 큰 예산이 드는것 아니라고 봅니다. 통수권자의 결단만 있으면 할수있습니다.
   
이름아이콘 달마
2008-04-21 00:33
인생은 황혼에 접어들고 전우들은 마음이 조급한 모양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아직 국회도 원내구성이 안되었는데 오늘도 우리 곁을 떠나는 전우들을 생각하면 왜 급하지 안겠습니까. 그래도 기다려야지요. 이제 장군님께서 선봉에 계신한 가슴에 요동하는 맥박을 느끼며 우렁차게 눈물흘리며 애국가를 불러보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소생 또한 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름아이콘 rokmc56
2008-04-21 08:12
박장군님 용기와 격려대단히 감사합니다, 20만 저희참전 전우들은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아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국가유공자의 명예를 찾는데 생을 바친다는각오로 투쟁을 해야합니다, 그렇게해서 우리들 선봉에서서 이끌어 주시는 박 장군님외 여러장군님들에대한 보답이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이름아이콘 곰탱이
2008-04-21 17:04
장군님같은 분들이 게시기에 참전전우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이끌어 주십시요. 그시절로 돌아가 다시~ 참전하리다.
장군님의 건투를 빕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이름아이콘 박충열
2008-04-21 19:59
忠誠!!! 휼륭하신 장군님! 이베참 워~! 늦은 세월에 이제라도 컴의 사이트 에서 뵙게 돼어 감사,합니다.
저는 군생활에서 부하를 아켜주시는 지휘관에게는 저목숨 바쳐 충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역후에는 멀어져 가고 이제 두분만이 1년에 한두번 그리고 가끔씩, 안부를 묻습니다.
이때에 저가 갈망하는 새로운 지휘관을 이베참 워~에서 뵙게 돼,었습니다.
상기와 같은 글을 읽고 지난날의 상황들이 뇌리에서 맴맴 돌아 가고 있습니다.
만약,만약에 장군님께서 필요로 할때, 마지막으로 새로운 지휘관을 모시는 심정으로 임무를 수행을 할,것입니다.
늘~건강 하시기를 바랍니다. 必勝!!!
박충열 모두들 다시 읽어 본케나 감개가 무량하고 눈시울이 쓰릴끼미다. 12/16 14:45
   
이름아이콘 전대머리
2008-04-23 12:52
본인은 통장에 있는 돈 30만원도 안되는 데~  왜 나만가지구 그래...
   
이름아이콘 전각병
2008-04-23 15:42
박경석 장군님의 진리는 영원하리다.
이런말 한마디없는 옛상관님들의 얼굴.
부하를 영원히 사랑하는 박경석장군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박충열 와~선배님! 무조건 핫팅~재규 선배님이 말을 합디까.
사실은 박경석 장군님의 얼을 조금이라도 도와 드릴까해서,
여기 베참워에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매일 이창에서
보겠습니다. 기분~나이스 입니다.
4/23 16:26
   
이름아이콘 wonyoung
2009-05-21 10:32
장군님의 글을 읽고 참전 유공자들의 위상을 높일수 있는 길이 아직 남아있다는 기대감이
생기게 되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집니다 장군님 건강하시고 영원하시길..............
   
이름아이콘 달마
2009-12-16 09:53
박장군님의 글은 정말로 우리 베트남참전용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라 생각되어 [정의의 길을 간다]에서 자유게시판으로 복사하였습니다.
전우 여러분 한해를 보내면사 박장군님의 글을 다시한번 읽어보시고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자유게시판만 둘러보시지 말고 메인에서 각 칼럼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이름아이콘 초심2
2009-12-16 11:05
장군님의 글을 접하고 장군님의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을 읽을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장군님이 계시기에 힘이 솟아 납니다.지금부터 전우사회를 위하여 앞장서 주신다면 충성을 다하여 그 뒤를 따르겠습니다.리드 해 주십시요
   
이름아이콘 김경만
2009-12-16 14:31
전두환은 백마29연대장으로써 수많은 사병의 피,땀 또는 눈물속에서 공적만을
챙겼습니다. 저는 지휘관으로써 전두환을 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김대중은 자기의 추종자들인 광주의 폭도들을 민주화 유공자라 하여 수억의 보상금과
달달이 수 많은 액수의 국고를 지원하도록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군 출신으로< 또한 참전 지휘관으로써 부하 사병들의 복지문제는 커녕,
고엽제문제의 소송자체도 묵살시켜버린 생각하기도 싫은 존재입니다. 박경석장군님을
수 차레뵈었습니다, 그리고 장군님의 애국심과 부하사랑의 말씀 기억하고있습니다.
남은 노병들의 기둥으로 계속 건강하시고 교훈될 말씀을 자주 부탁드립니다.
    71-72 백마 29연대 2중대 3소대 1분대장 하사 김경만.
   
이름아이콘 로체
2009-12-16 15:03
항상 박 장군님의 글 을 자주 보는 전우임니다. 박 장군님은 시 도 잘 쓰시고 글 도 참 잘 스신다고 봅니다. 오래만에 뜻깊은 장군님의 글 잘 보고 갑니다.
   
이름아이콘 베로니카
2009-12-16 18:35
장군님 감사합니다
   
이름아이콘 베로니카
2009-12-16 18:52
존경하고 사랑하는 장군님!!
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우리 전우님들은 참 행복합니다
장군님의 글을 읽어보니 마음이 찡합니다...장군님!! 우리 전우님들의 삶의 희망이 되어주고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십시오  꼭~~옥 한번 뵙고 싶습니다, 추운날씨에 건강잘 챙기시고 밝아오는 새해에는 더욱더 건강 하시고 행복 하세요.
중국 산동반도에서... 소인 김태식 올림
서현식 베로니카님 박장군님은 우리 참전전우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고 계십니다. 뵙고 싶다하시니 기회를 한번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12/16 19:04
베로니카 네...고맙습니다.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12/16 19:12
   
이름아이콘 ninhoa
2009-12-17 05:34
항상 전우들과 같이하시는 박 장군님께 감사함의 례를 드립니다. 밝아오는 새해에도 건강하시도록 기도드립니다.
maester 박장군님께 감사드리며, 월남에 계시는 ninhoa전우님께도 새해에도
건강하십시오. 특히 본 홈페이지를 운영하시는 서현식전우님께도 한
해를 보내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진해 김철수
12/19 16:37
   
이름아이콘 빗발
2009-12-17 09:19
장군님 ! 경건한 마음으로 잡고 계시는 손이 어찌 그리도 따듯하십니까?
장군님 ! 그 카랑카랑하신 목소리 어찌 그리도 우렁차십니까?
장군님 ! 그 품 안에 품으신 부하 사랑 어찌 그리 크시고 사랑스럽습니까?
장군님 ! 이 나라에 외치시는 어머님같은 정이 남다르게 깊어 보입니다.
우리 부족함 나무라지 않으시고 보듬으시며 외치시는 그 크신 사랑에 고개숙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장군님을...
   
이름아이콘 김영일
2009-12-17 20:31
71년에 백마공병으로 참전하여 전두환 연대장으로부터 작전출동 전  군장검사를 받았던기억이 납니다
장군님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 하셨으니  나라를 구하고 국위를 선양하신 님께서 아직 건재 하시다니..
위글을 통해서 저는 장군님을 처음 알았습니다 아직도 우리는존경할 분이 계사다는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름아이콘 독불장군
2010-09-27 09:10
박경석 장군님 ! 그동안에 있어서는 죄송스럽게도 몇몇 전우들의 입을 통해서만 훌륭하신 장군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마는, 우리 참전 전우님들의 한을 한몸에 싣고, 이번에 제딴에는 "대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전국국토 순례를
단독으로 나가려 하다가 마~침 장군님의 글을 읽어 보고는 저절로 머리가 숙여 지기에 이렇게 감히 글을 올려 봅니다, 예로 부터 선인들의 말씀에 따르자면, 모~든  "공"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화"는 본인이 챙기라는 말이 기억이 납니다, 장군님이야마로 그의 표본이 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감히 이렇게 글을 올려 보면서 비록 저의 보잘것 없는 행위라고 보여지는 일이지만 이번에 저의 결단이 잘~ 이루어져서 우리 전우님들에게 조금만이라도 위로가 되고 또한 정부에는 조금이라도 그자들의 의식을 바꾸는데 힘이 되었으면 ~~ 하는 바램을 안고 떠나 보렵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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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길을 간다

박경석 = 한국시문학평론학회 회장 /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예비역 육군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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