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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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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영인
작성일 2011/12/15 (목) 13:33
ㆍ조회: 1443   
[역사의 현장]박태준 “건드리면 가만 안둔다”

박태준 “건드리면 가만 안둔다”

포항제철은 선조들 피의 댓가 "실패하면 죽자"

2011-12-14   비바람 프런티어 기고논객 (tapng97@hanmir.com)

▲ 포항제철 건설 현장을 방문한 故박정희 대통령과 롬멜 박태준 회장의 생전 모습.

   1973년 6월 9일 새벽 6시, 고로앞에 도열한 포항제철의 전 직원은 좀처럼 쇳물이 나오지 않는 고로만을 쳐다보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긴장과 흥분은 무거운 침묵으로 변해 옆 사람의 침 넘기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1시간여 지났을까, 드디어 붉은 쇳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만세소리가 장내를 흔들었고, 무쇠 같은 사나이들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박정희 시대는 단군 이래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다, 1960년대가 가난과 패배주의에서 벗어나려는 희망의 시대였다면 1970년대는 그 노력이 결실로 맺어지는 영광과 긍지의 시대였다, 한민족 오천년 역사 중 가장 격동적인 시대가 1970년대였다, 70년대를 가히 민족의 중흥기라 부를 만 했던것은 70년대에 바로 포항제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상 그 족속들의 삶의 방식을 가장 확실하게 바뀌게 했던 혁명이 있었다면 그것은 5.16이다, 한민족의 역사는 5.16의 전과 후로 나눠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6혁명으로 대한민국은 환골탈태했다, 포항제철은 그 혁명의 완성이자 종착역 같은 것이었다, 포항제철은 5.16이 있어서 가능했고, 박정희와 박태준이라 는 사나이가 있어서 가능했다,

박정희와 박태준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사제지간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다시 제2군수기지 사령관과 참모장의 사이로 지내면서 두 사람 사이는 강력한 신뢰의 끈으로 연결된다, 5.16 당시에는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거사가 실패했을 경우 '내 식구들이나 좀 돌봐줘'라며 혁명에 참여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박태준은 박정희에게 부하보다는 동생이었다.

포항제철의 건립은 단군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공사였다, 이 공사의 책임자는 박정희가 가장 신뢰하는 박태준이었다, 1967년 9월 박태준은 박정희의 호출로 영국에서 달려왔다,! 박태준은 고사했으나 박정희는 호통을 쳤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맡을 수 있어, 아무 소리 말고 맡아!"

판자집이 즐비했던 나라에 제철소를 지을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돈을 빌리러 미국에 갔던 박태준은 첫 난관에 부딪혔다, 돈을 빌려주기로 했던 회사들이 등을 돌렸다, 한국에서 제철소를 만들어보았자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IBRD의 보고서 때문이었다, 이 때 실의에 빠졌던 박태준의 뇌리에 스쳐가는 것이 바로 '대일 청구권 자금'이었다,

박태준은 공사를 독려하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포항제철은 선조들의 피의 대가이다,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우리는 죽어 마땅하다, 우향우하여 영일만 바다에 빠져죽자" 박정희의 전폭적인 지원도 빠지지 않았다, 박정희는 3년여 공사 기간에 13번이나 현장을 방문했다,

박태준이 정치인과 관료들의 압력에 시 달리자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종이 마패를 건네줬다, 마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박태준을 건드리면 누구든지 가만 안 둔다'

100만 톤을 목표량으로 건설되었던 포철은 가동된지 단 일년 만에 매출액 1억 달러를 기록하며 빚을 다 갚고 흑자를 기록했다, 세계철강 역사의 기록적인 사건이었다, 고로 건! 설은 계속되면서 2기가 완공되는 1976년에 조강능력은 북한을 추월했다,

포항제철은 2008년에 매출액 30< span style="font-family: 나눔고딕, NanumGothic, sans-serif; font-size: 11pt; ">조6424억원, 조강생산량 3313만6000t을 달성했다. 2011년에는 4고로에서 하루 평균 1만 5천 톤 이상의 쇳물을 생산하며 연일 세계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1992년 10월, 박태준은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가 박정희에게 보고를 했다, "각하! 불초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 만에 포항제철의 건설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성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 드립니다, 포항제철은 빈곤 타파와 경제 부흥을 위해 일관제철소 건설이 필수라는 각하의 의지에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조강 생산 2,100만 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70년대에 판자집의 나라는 대리석의 나라로 바뀌었고, 지게에 땔감을 지고 가는 목(木)의 시대에서 용광로의 쇳물로 기계를 만드는 철(鐵)의 시대로 진보했다, 이제 박정희도 없고 박태준도 없다, 박태준의 존재로 박정희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었지만, 박태준이 떠나고 이제 비로소 박정희의 시대는 저무는가, 이제 다시 반도 땅에는 선 굵은 사나이들의 드라마는 탄생되지 않을 것인가, 땀과 눈물의 70년대가, 아버지의 등에서 풍기던 땀 냄새가, 그 영광과 긍지의 시대가 이제 역사의 장막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가난했던 아버지들의 시대, 고맙습니다, 독일 함부르 탄광에서 대통령의 눈물, 조선 수주협상에서 정주영이 내밀었던 거북선 지폐, 맨손 하나로 오늘을 일구어 낸 아버지들, 고맙습니다, 유신헌법 국민들의 90% 지지, 일부 정치인들이 독재의 시대라고 저주해도, 국민과 지도자가 일치단결하여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노도처럼 내달리던 그 시대가 부럽습니다, 그 시대에, 박정희와 박태준의 시대에 그리고 그 시대의 당신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박 대통령의 '된장찌개 유머'  

순 토종 한국인, 박정희 대통령을 이르는 말이다. 생김새도 그렇고, 식사하는 습관이나 좋아하는 음식도'옛날 밥상' 앞의 남정네 그대로다. 그런 면에선 신식이 아닌 구식이긴 한데, 가끔 구수한 입담으로 재미삼아 툭 던지는 한마디 말이 웃음을 자아내곤 했다.

온고지신의 '된장찌개 유머'라고 할까.

혁명정부 시절인 1962년 국전(國展) 개막 첫날 전람회장을 찾은 그가 이색적인 동양화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한지(韓紙)를 찢어 붙이고 구멍을 낸 권영우 화백의 비구상(非具象) 동양화였다. 그것을 보더니 "이건 첫날밤 신방의 창호지 같구먼"이라고 말해 미술계 인사들을 웃겼다.

춘궁기(春窮期)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의 어느 하루는 부하 직원들과 밥을 먹다가, 유달리 식탐(食貪)이 대단한 직원을 보더니 "저 친구 수출해 버려야겠어"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육영수 여사가 영부인으로서 대통령을 내조하는 데 필요한 각 분야의 공부에 열중할 때 어려운 경제ㆍ과학 용어들을 사전을 찾아가며 익히다가 하루는 남편에게 '경제 강의'를 부탁했다.

이때 부부의 대화 한 토막.

"돈 안 내고 강의를 해달라는 거요?"

"강의료가 얼만데요?"

"내 강의료는 너무 비싸서 당신 힘으로는 낼 수 없소." 이 말에 가족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추운 겨울, 특히 연말이면 어김없이 전방의 장병을 찾아가 위문하고 주한미군들을 격려했다.

1965년 12월 해병여단과 미 1군단을 방문할 때 이야기.

미 1군단 장병을 만난 박 대통령이 잠시 담배를 꺼내 물자 양달승 비서관이 재빨리 라이터를 갖다 댔다.

그런데 가스가 떨어져 켜지지 않자 양 비서관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순간, 박 대통령이 비치 미8군 사령관에게 한마디 했다. "미국이 무기를 준다 준다 하지만, 이 라이터 같은 무기는 필요치 않소."

통역 비서가 그 뼈있는 말을 그대로 전하자, 미 장성들이 역시 '코드 원' 답다는 표정으로 탄복하고 말았다.

1967년 8월 15일엔 광복절 행사가 끝나고 오후에 경회루에 내외 귀빈과 국외 교포들을 초대해 광복 22주년 기념 리셉션을 베풀었다. 박 대통령은 국외 교포들과 악수를 하며 "같은 한국 사람들이라 나보다 키가 크지 않군"이라고 말해, 연꽃이 핀 경회루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 바람에 다소 긴장됐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뒤집어진 것은 물론이다.

1967년 10월 14일 오전에는 청와대 정원에서 전국 일간신문 발행인을 포함한 신문협회 간부 29명과 조촐한 다과회를 갖고 환담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언론인들은 신문협회 배지를 실제보다 10배 크기의 순금제 기념품으로 만들어 박 대통령에게 증정했다.

박 대통령이 배지 도안을 보고 "이 배지의 뾰족한 끝이 무엇이오?"하고 물었다. "펜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박 대통령은 "끝이 너무 날카로운데 좀 무디게 할 수 없소?"라고 의미있는 한마디로  언론인들을 웃겼다.

▲청와대 뒤뜰의 웃음바다. 사진은 박 대통령이 최고회의 의장 시절인 1962년 5월 21일 시내 일간신문사와 통신사 간부, 그리고 최고회의 출입기자 등 1백50여명에게 청와대 뒤뜰에서 베풀었던 칵테일 파티의 한 장면이다. ⓒ 정부기록사진집

1969년 11월에는 부부동반으로 세계 일주 중인 아폴로 11호의 우주인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즈 3명을 접견했다.  

우주에 관하여 환담하는 가운데 달에 제일 먼저 내린 암스트롱에게 물었다.

"첫발을 달에 딛기 전에 왜 다리를 여러 번 굽혔다 폈다 했소?"

"두꺼운 먼지층에 몸이 빠질지도 모른다는 일부 학설 때문에 먼지층의 유무를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올드린도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저는 암스트롱이 먼지에 빠지면 건지려고 그의 허리에 맨 줄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모선(母船)에 있던 콜린즈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암스트롱의 달착륙을 못 보았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이 콜린즈에게 "지상에서도 TV로 보았는데 달까지 가서 그것을 못 보았소?"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을 자아냈다.

제7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1971년 7월 1일.

50여 나라에서 온 축하 사절과 여야 의원 등이 경회루에서 베풀어진 리셉션에 참석했다. 

대통령과 함께 이들과 인사를 나누던 육영수 여사가 야당 의원들에게 "8대 국회에서는 정부를 나무라지만 말고 더러 좀 두둔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4선(選)의 박병배 의원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자, 박 대통령이 그에게 "박 의원은 자신이 장기집권하면서 나보고 장기집권한다고 공격이 심하더군"해서, 잠시 야릇한 웃음이 오갔다.

1973년 속리산관광호텔에서 여당 간부들과 오찬을 할 때의 일이다.

목장을 경영하는 민기식 의원이 대통령에게 현재의 우유값으로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우유값을 인상해 달라고 요청했다.  

민기식 의원은 5.16 때 2군단장, 그 후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으며 박 대통령과 술자리에 자주 어울렸던 호주가(好酒家) 인지라 가깝다면 가까운 사이였다.  

박 대통령이 그에게 대꾸하기를 "세상에 3대 거짓말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80 노인이 이제는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 것이요,
둘째는 시집 못 간 노처녀가 시집 안 가겠다고 말하는 것이요,
셋째는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판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바람에 좌중에 웃음이 터지고, 민 의원은 머쓱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1973년 4월 23일엔 사라예보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부에서 우승한 선수들에게 다과를 베풀고, 선수들이 가져온 코비용컵을 어루만지며 "이 컵이 공산국가를 돌아다니다 왔군"해서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이에리사 선수의 부친이승규 씨에게 "훌륭한 따님을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등 정감 있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1975년 9월 16일 오후에 청와대 대접견실에서 대통령 따님 근혜씨가 브라질 교포 67명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근혜씨는 "어머니가 마지막 만난 분이 브라질 사람이었다"면서 "여러분을 뵈니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회고했다.  

이때 박 대통령이 예고 없이 들어와 "우리 교포들이 옷을 잘 입고 있는 것을 보니 돈을 잘 버는 모양"이라고 반기면서 "여러분이 성공하여 잘사는 것을 보니 반갑고 고맙다"고 운을 뗐다.

이에 교포들은 이민을 많이 보내줄 것과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반공정신만은 강하다는 등 앞을 다투어 대통령에게 말을 하는데, 여자 교포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이 금년이 '여성의 해'라고 하면서 여자 교포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더니 "여자 분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브라질에선 여자를 구박하느냐"하자, 조용히 가라앉았던 실내 분위기가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박 대통령을 가까이 지켜본 사람들은 새마을을 시찰할 때 대통령 기분이 최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의 새마을 모범부락을 시찰하러 갈 때의 이야기.

대통령 차가 광나루를 지났을 무렵, 농부들이 끌고 가는 소들로 길이 메워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광주의 장날이었다. 대통령 차량 행렬이 다가가자 모두 길가로 비켜서는데 그중 한 마리가 고집스레 비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소 주인은 당황해서 고삐를 마구 잡아당기고 차에서 경적을 울리는데도 막무가내였다. 고집불통 소에게 대통령이 한마디 던졌다.

"임마, 나를 몰라봐? 내가 '황소당' 총재란 말이야!"

여당인 공화당의 심벌이 황소였다. 그 소리에 조바심을 내던 수행원들이 폭소를 터뜨리자, 진땀을 빼던 농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옛날 사람의 풍류도 있고, 해학과 익살도 있다. 사석에선 컵을 '고뿌', 비어(맥주)를 '삐루'라고 옛날식 발음의 언어를 그냥 편하게 썼다.

간고한 세월의 흔적은 식성에서도 잘 나타나 우유를 찬 것으로 먹으면 설사를 하고, 된장찌개가 없으면 밥 먹은 것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유머에도 그런 삶의 자취가 묻어 있어 구수한 된장찌개 같은 맛을 주고 있다.

이름아이콘 하수
2011-12-15 20:56
박정희대통령, 박태준 회장이 동시대에 존재한 것은 한민족이 축복이다. 지지리도 가난하고 못생긴 우리 민족을 오늘날 무역액 1조달러 시대를 열게한 동기를 제공해 주신 분들이시다.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이다. 부디 영면하시기를...
서현식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천방뒤축 날뛰는 저 무지랭이들이 문제입니다. 12/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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