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ung1.gif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베트남참전 유공자회

그리운 전우 찾기

베트남전쟁 참전수기

베트남전쟁의 영웅들

침묵의 살인마

STOP THE WAR

6·25참상

國會인터넷生放送 

國會議員홈페이지 

고 엽 제 란? 

고엽제 보고서 

  고엽제 후유(의)증 

  고엽제 등록절차 

  전국보훈병원안내 

  전국호국묘원안내 

tmp3512.bmp

dalma01.gif

역사의 현장

게시판은 건전한 사회문화의 흐름입니다. 본 사이트와 관련없는 글, 또는 타인을 비방, 욕설은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으며
또 이곳은 젊은 학생들이 학습자료 수집을 위해 많이 찾고있음을 유념하시기 비랍니다.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15/05/16 (토) 16:23
ㆍ조회: 1367   
성공한 5.16혁명!↔실패할 공포정치!

 

현영철을 숙청한 김정은도 위험해질 것

5.16 혁명 54주년 기념(67634남 일베회원)


http://www.ilbe.com/5825783201
2015

  • 농사는 하늘이 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서 짓는 것이다. - 박정희
     
  • 바르게 알도록 하고, 바르게 판단하도록 하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무거운 책임이 바로 우리 언론에 있다. - 박정희
     
  • 100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 그야말로 만전을 기하는 것 이것이 국방이다. -박정희
     
  • 시대와 환경의 변천에 관계없이 노동은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생활 무기이다. -박정희
     
  • 역사는 언제나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국민에게 발전과 영광을 안겨다 주었다. -박정희
     
  •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적어도 일세기라는 시간을 잃었다. 이제 더 잃을 시간의 여유가 없다. 남이 한 가지 일을 할 때 우리는 열 가지 일을 해야 하겠고 남이 쉴 때 우리는 행동하고 실천해야 하겠다. -박정희
     
  • 우리는 자유 민주 체제보다 더 훌륭한 제도를 아직 갖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에는 이 민주 제도처럼 취약한 제도도 또한 없는 것이다. - 박정희
     
  •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 - 박정희
     
  •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해가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잔재하는 수구(守舊)와 파쟁(派爭)이며, 시기와 모함이며 독선과 아집이며, 단견(短見)과 무정견(無定見) 등 전근대적이며 비생산적인 요소이다. - 박정희
     
  •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은 망하게 마련이지만 전쟁을 잊어버리는 국민도 위험하다. -박정희

 

 현영철의 죽음과 향후 북한상황 전개(궝키스칸 조갑제닷컴 회원)   

북한 군부서열 2위인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이 4월말경에 고사포에 맞아 사형당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국정원이 보고했다. (2015.5.13.수) 김정은 연설 중 졸았다는 것은 근거가 무척 부족하다 특수군단장인 최경성이 상장에서 소장으로 강등되거나 정찰총국장 김영철이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되었을 수 있다.    

첫 번째 가능성은 러시아 방문 과정에서 미션실패일 수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핵관련 입장에서 북한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현영철은 김정은의 요구사항인 무기도입(방공미사일 S-300) 등에서 실패 가능성이 있다. 무기대금으로 북한은 USD를 줄 능력이 없고, 러시아도 처리가 골치 아픈 지하자원을 제시했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현영철은 미션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북핵에 대한 러시아의 무리한 요구로 러시아방문이 취소되었을 수 있다.    

두 번째 금번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관련 일 수 있다. 무리한 핵실험 여부, 그리고 SLBM의 공개 등에서 현영철과 김정은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누가 무기 공개를 그렇게 쉽게 하는가?    

세 번째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의 감시망에 현영철이 김정은에 대하여 불만을 표하는 것이 걸려들었을 수 있다. 특히 자원과 돈을 어디에 투입할 지를 두고 군부와 이견이 생길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가벼운 불만이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안전보위부 쪽으로 흘러들어갔을 수 있다.    

당분간 북한간부들은 자신도 숙청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1~2달 동안은 납작 엎드린 채 충성하는 척할 것이다. 그러한 충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6개월 이내에 쿠데타나 암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 보이는 충성만큼 증오심이나 자신보호본능은 강하다.    

이 상황에서도 그들은 핵무기 소형화와 SLBM을 2~3년 안에 실전화 할 것이다. 미사일발사하는 장면이 합성가능성이 있지만, 미사일은 발사한 것이 확실하다. 이 부분은 국정원도 확인하였다. SLBM실험에 사용한 골프급 잠수함은 아마 구소련이 붕괴될 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 몇 척이 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조만간에 도발을 일으킬 것이다.(이 부분에서도 현영철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사이버전은 논외로 하고 서해5도 점령시도나, 무인기, 특수부대 파견 등의 형태로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全面戰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김정은의 어이없는 죽음을 가정해야 한다(예를 들면 떡이 목에 걸리거나, 잠수함을 탔는데 浮上이 안 되는 경우, 腹上死, 불량무기폭발 등)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THADD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 킬체인이나 KAMD는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詐欺이나 欺罔이다. 선제적 타격? 북한에 있는 미친놈의 심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약 10군데의 핵미사일 기지에서 9개를 공격한다면 나머지 1군데에서 핵을 발사한다면...(실제 위치 찾기도 쉽지 않다.)    

잠수함은 일단 탐지가 거의 불가능하다. 3,000톤급도 2018년이 되어야 인도가 된다. 전력화는 2년이 더 걸린다. 이미 늦었다. 당장 핵잠수함을 도입할 수 없다면, 우방국에서 리스하거나, 북한 잠수함 기지(서해 남포/비파곶/사곶/해주, 동해-차호/마양도/낙원/문천/장전)에 잠수함을 대기시켰다가 뻘짓을 하면 바로 격추해야 한다. 한국의 잠수함전력(13척?)이 부족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뢰를 박아놓거나, 미(72척)/일(16척)을 이용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 시 전면전을 예상해야 한다. 한미일 합동으로 북한을 접수시킬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희원이나 MB가 연평도포격에서 했던 것처럼 수동적이고 비굴한 태도여서는 곤란하다. 언제 북한이 붕괴되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평양을 접수하지 못한다면, 핵시설과 동해안을 먼저 접수해야 한다. 주변 한미일러와 공조가 중요하다.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은 배제하고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해주는 것도 없이 훈수만 놓는 통일의 걸림돌일 될 뿐이다. THADD문제는 북핵문제만 봐도 대중외교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나마 정부에서 이러한 점을 인지하여 늦었지만 다행이다.    

북에서 자발적으로 귀순하거나 정보를 넘기는 이들을 선별하고 이용해야 한다. 그들도 북한이 더 이상 희망이 없기에 자의반타의반 한국정부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신뢰성 가는 사람들, 위장귀순자들을 철저히 구별하여 휴민트로 이용해야 한다. 여차여차하면 김정은 암살도 시도해야 한다. 미국과 협상에서 전술핵을 가져오거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한미동맹에 의거해서 미국과 일본이 공격해줄 것을 명문화해야 한다.    

한편 현영철이 처형이 아니고 귀향이란 설이 경향, 오마이, 한걸레, 노컷 등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국정원을 제대로 엿먹이면 현영철이 직접 연설하면 되는 문제를... 최용해처럼. 아직 기록영화와 TV에서 김정은을 수행하는 모습이 나온다. 정은이 이후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주장하는 이가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정성장의 발언이라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는 서울신문('10.4.1)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대화를 갈구하며 평화협정을 체결을 제의한 상황에서 천암한 공격이라는 도발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본다고 했다." 북한이 양자대화를 갈구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지, 평화협정을 체결해도 그것을 쉽게 잘 뒤집는다는 것을 감안하지 못했고, 북한의 도발전과는 부지기수이다.  

"(천안함 침몰에 대한)확실한 물증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결과를 지방선거 직전인 20일경에 하는 것은 천안함 희생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란 발언을 보면 지방선거가 국가안보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데 사고가 건전하지 못하다. 그리고 세종연구소의 인간들은 헛소리와 친북발언은 더 이상 논하기 싫다(현영철이 죽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 정보를 얻은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
http://blog.naver.com/kwondhn/220360784880

 

싸가지 없는 김정은의 앞날(구기차 네티즌 논객)    

북한에서 백두혈통끼리 3대 세습을 이어받은 김정은에게 어떤 별명이 붙어 있는지 살펴보자. 북한 주민들 사이에 주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저는 잘 처먹어서 돼지처럼 살이 통통히 쪘다고 해서 ‘돼지지도자’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주민들이 호칭하는 ‘원수님’이라는 표현은 골동품처럼 여겨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고 ‘설주남편’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도 문화면에서 개방되고 있는 것일까.    

또한 북한 엘리트사이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해서 김정은을 무시하는 은어로 ‘꼬맹이’라고 부르는 한편, 지시를 내리면 김일성은 10년을 갔고, 김정일은 적어도 1년은 갔는데 김정은이 지시를 내리면 고작 열흘밖에 못 간다하여 ‘열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김정은이 앞으로도 별명 값을 톡톡히 할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김정일이 죽기 전 후계자로 김정은을 삼은 것은 사실이다. 그럴만한 이유로는 외모는 할아버지 김일성을 닮았고 성격과 사고는 저를 빼닮았다고 낙점한 것이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잔인한 독재자로서 애비 DNA가 고스란히 자식에게도 유전되고 있다는 것은 ‘만고의 불변’이려니와 ‘신의 이치’가 아닌가.    

하여 김정일은 군부장악과 후계체제 안정을 돕기 위해 자기가 총애하던 후견그룹(가신그룹) ‘5인방’을 김정은에게 붙여줬던 것이다. 즉 김경희, 현영철, 최용해, 김경옥, 최부일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후에 군부에서 물러나거나 숙청과 강등을 당하면서 심지어는 독살설과 함께 김정은의 공포정치희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김정일이 갑자기 죽자 후계자 수업이 짧았던 김정은은 유일영도체제를 확실히 잡지를 못했던 것이다. 용인술에 있어서도 제 아비 김정일만 못했고 젊은 나이 콤플렉스 때문에 고위간부들이 자기를 깔보는 식이라고 오해를 하게 됐던 것이다.    

그리고 당이나 군 간부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즉 시찰이나 현지 지도를 나갈 때는 대부분 60~70대의 늙은 고위간부들이 수행하거나 지시를 따르는데 그 과정에서 행동이 느리다든지 발걸음이 느리다든지 말귀를 잘 알아듣질 못해 짜증이 났던 것이다. 당연히 30대 초반 젊은 놈하고 60~70대 노령 층과는 확연히 다르고 세대차가 날 수밖에 없질 않는가. 우리에겐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유행가노래도 있듯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김정은에게는 권위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 이해를 못하거나 거부감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늙어봐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하여 김정은이 늙은 간부들에게 수영과 달리기 등 철인경기 비슷한 운동을 강제로 시키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게 다 군부 길들이기나 기강을 잡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김정은이 그래도 못마땅하여 제 아비 김정일이 아끼던 늙은 고위간부들을 어떻게 하면 차례로 없앨까하고 즉 숙청할까하고 고민했고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했을지도 모른다. 하여 노동당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를 시켜 지시에 토를 달거나 불만을 제기하거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불경스런 행동을 하는 반동분자를 잡아내기 위해 간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감독을 하게 했고 군총정치국과 보위사령부를 시켜 군고위층의 비행을 수집하여 보고케 했던 것이다. 아주 물샐 틈 하나 없이 이중삼중으로 감시케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덫에 걸려든 간부가 2012년 3명, 2013년 30명, 2014년 31명이나 되며 총참모장 이영호 등 간부 70여명을 즉결 처형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공개처형뿐 아니라 군 계급을 강등시켰다 진급시켰다 작란을 치는 계급정치를 일삼았고 자기에 대한 충성심을 한층 고취시켰다. 숙청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고모부 장성택 처형이었다. 장성택은 제 아비 김정일의 처남으로 김정일이 가장 아꼈던 측근이었지만 김정은과 소통이 잘 안 되고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나이의 김정은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마식령 스키장과 문수장 물놀이시설을 건설하려 들자 장성택은 경제살리기가 우선이라며 즉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된다고 반대를 했던 것이다. 하여 김정은이 속으로는 지시에 안 따른다고 매우 불쾌히 여겼을 테고 장성택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애숭이가 하는 짓이란 엉뚱한데 돈을 쓰는 생각뿐이라며 저게 통치자라며 거들먹거리는 것을 속으로 매우 비웃고 못마땅해 했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 생각이 다르고 물과 기름 사이가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김정일이 주관하는 행사에 참석한 장성택은 싸가지 없는 애숭이 김정은이 가소로워 앉은 자세가 자연히 삐딱해지기 일수였고 먼 산을 쳐다봐야 했고 박수도 건성건성 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 이것이 운명인가보다. 이런 모든 것이 김정은에게 괘씸죄, 불경죄, 건성건성 박수친 죄 또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거나 양봉음위(陽奉陰違:겉으로는 복종하면서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음)죄를 씌워 잔인하게 처형했던 것이다. 최고 존엄을 모독한 죄는 비록 고모부라 할지라도 용서치 안했던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와 같이 김정은만이 가지고 집행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왕권(王權)이었던 것이다.    

국정원이 13일 밝힌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에 대한 공개처형이 이슈다. 그 죄목 또한 웃긴다. 제5차 북한군 훈련일꾼대회에서 김정은이 연설 도중 졸았다며 이름하여 ‘김정은 연설 중 존 죄’가 씌워진 것이다. 하여 불경죄와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체포하고 재판절차 없이 2, 3일 만에 전격 처형했던 것이다.    

또한 작년 11월과 올해 4월 그가 러시아를 방문해 김정은의 방러 문제 협의와 S-300 지대공미사일 구매를 현물교환으로 요청했다가 거절당해 김정은이 러시아 방문을 취소하면서 그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 아닌지 생각된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여 평양 순안구역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수백 명의 군 장령 급 간부들이 동원돼 지켜보는 가운데, 1분당 1,200발을 발사하는 대공화기로서 총신이 4개가 달린 14.5mm 고사총으로 쏴 시체의 흔적도 남김없이 잔인하게 처형했던 것이다. 실로 소름이 돋는 공포의 정치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김정은이 “배신자는 신성한 조국 땅에 뼈를 묻을 자격도 없다”고 한 말처럼 반당, 반혁명은 물론이려니와 자기의 지시에 토를 달거나 불만을 제기할 경우 가차 없이 화염방사기 또는 기관총이나 고사총을 이용해 공개처형함으로써 제 아비 김정일보다도 더 잔인하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충격적인 공포정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이 2012년 집권하여 집권 4년차에 들어섰으나 리더십 불만확산을 잠재운다는 구실로 잔인한 피의 숙청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제 무덤을 파는지도 모를 일이다. 종국에는 신의 뜻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북한 엘리트집단이 김정은의 공포정치, 감시정치, 공개처형에 지금은 어쩔 수없이 숨을 죽여가며 꼼짝 못하고 있지만 인내도 한계가 있듯이 내부에서 반발이 생기고 충성심조차 떨어져서 언제 폭발 할 런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여 쿠데타 또는 암살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김정은의 하는 짓을 보면 갑자기 진도 7.6지진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북한정권이 갑자기 붕괴될지도 모른다. 이에 우리정부와 군은 철저히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5.16 혁명일 기념] 박정희 대통령 일기 모음(CKershaw 일베회원)

http://www.ilbe.com/5825740806 2015.05.15

1972년 3월24일(月) (새마을 운동)   

나 한 사람의 힘이란 적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힘을 다 발휘하여 꾸준히 노력할 때는 무한한 힘이 나타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조정신이 없는 사람은 자기자신이 가진 참다운 힘을 인식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조정신은 자기자신을 최대한으로 계발하고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는 원동력이다.

1972년 4월22일(土) 쾌청 (새마을 운동에 관하여)    

재작년(1970) 가을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작년(1971) 중에는 2차 선거로 인하여 다소 퇴조하는 경향이 보이드니 제2차년도인 금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전국 농촌에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두메산골에서도 외로운 낙도에서도 국도연도에서도 도시 변두리에서도 문자 그대로 우후죽순격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국도연변보다는 구석진 산골부락에서, 더 열의와 의욕이 왕성한 것 같다.   

가난을 하나의 숙명처럼 생각하고 침체와 체념과 나태와 무기력에 삶의 의욕조차 찾아볼 수 없는 농촌 구석 구석에서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아니, 누가 하라고 강요한다면 할 맛이 없다는 듯이 이제부터 내 힘으로 내가 일어서보겠다고 일어서고 있다.   

우리 역사를 오천년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오천년 민족사중에 왕조가 바뀌고 역성혁명이 일어나고 외적의 침략을 오백여회나 겪으면서도 민족이 스스로 눈을 뜨고 스스로 깨달아서 이웃과 협조하고 남녀노소가 다 함께 뜻을 같이하여 민족중흥을 위한 대약진운동을 전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마지막으로 한번 기회를 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호기회라고 생각한다. 저 의욕에 넘치는 사랑하는 동포들의 희망에 부푼 눈동자와 부지런한 모습을 보라. 전민족이 대동단결하고 혼연일체가 되어 이 절호의 천시(天時)를, 민심을 놓쳐서는 안된다.

위대한 새 역사를 창조하고 보람찬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다같이 이 대열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자.(이하 일부 생략)   

1975년 4월 30일 (월남 패망 후)   

월남공화국이 공산군에게 무조건 항복했다.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한때 우리의 젊은이들이 파견되어 월남 국민들의 자유수호를 위하여 8년간이나 싸워서 그들을 도왔다. 연 파병수 삼십만명. 이제 그 나라는 멸망하고 이제 월남공화국이라는 이름은 지구상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참으로 비통하기 짝이 없다. 자기 나라를 자기들의 힘으로 지키겠다는 결의와 힘이 없는 나라는 생존하지 못한다는 당연하고도 냉혹한 현실과 진리를 우리는 보았다. 남이 도와준다고 그것만을 믿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심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가 망국의 비애를 겪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눈으로 보았다.   

조국과 민족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하한 목숨도 불위하겠다는 결심과 힘을 배양하지 않으면 망국하고 난 연후에 아무리 후회해보았자 후회막급일 것이다. 충무공의 말씀대로 필사즉생 필생즉사다. 이 강산은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고진감래를 다 겪으면서 지켜오며 이룩한 조상의 나라이다. 조국이다. 우리가 살다가 이 땅에 묻혀야 하고 길이길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서 이어가도록 해야 할 땅이다. 영원히 영원히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 지켜가야 한다. 저 무지막지한 붉은 오랑캐들에게 더럽혀서는 결코 안된다. 지키지 못하는 날에는 다 죽어야 한다. 죽음을 각오한다면 결코 못 지킬 리 없으리라.(이하 일부 생략)   

1975년 6월 25일 (수) 흐름   

1950년 6월 25일(일) 새벽4시. 1백 55마일 38선 전선에서 북한 공산군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기습공격을 개시, 민족사상 가장 처절한 혈투가 전개되었다. 불의의 기습공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남침징후를 약 6개월 전에 예측했었다. 육군본부 정보국에서는 적의 남침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군 수뇌부에 누차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 판단서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군수뇌, 정부당국, 미국고문단 모두가 설마하고 크게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다.   

1949년 말 정보국 작전판단서는 전쟁이 발발 후 포로와 적 문서에 의하여 또는 귀순자들의 제보에 의하여 너무나 정확하게도 적중하였다. 알고도 기습을 당했으니 천추의 한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무능과 무위와 무관심이 가져온 국가재산과 인명, 문화재의 피해가 그 얼마나 컸던가 후회가 앞설 수는 없지만 너무나 통탄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4백년 전 임진왜란 때 우리조상들이 범한 과오를 우리시대에 또 되풀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의 정세는 흡사 6.25 전후와 비슷하다. 우리 세대에 또 다시 이러한 과오를 범한다면 후손들에게 영원히 죄를 짓고 조상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전국민이 시국의 중대성을 깊이 인식하고 총력안보 태세를 철통같이 다져서 추호의 허(虛)도 없이 조국을 수호하는 데 심혈을 경주해야 할 때다.   

1950년 6월 25일에 나는 고향집에서 어머님 제사를 드리고 문상객들과 사랑방에서 담화를 하고 있었다. 12시 조금 지나서 구미읍 경찰서에서 순경 1명이 급한 전보를 가지고 왔다. 정보국장 장도영 대령이 경찰을 통해서 보낸 긴급전보였다. "금조 미명(未明) 38선 전역에서 적이 공격을 개시, 목하 전방부대는 적과 교전 중, 급히 귀경"의 내용이었다. 새벽 4시에 38선에서 전쟁이 벌어졌어도 12시까지 시골동네에서는 누구 한 사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동리에는 라디오를 가진 사람이 한 집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후 2 시경 집을 떠나 도보로 구미로 향하다. 경부선 상행열차에 병력을 만재한 군용열차가 계속 북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25일 야간북행열차를 탔으나 군 병력 전송 관계로 도중 도중이나 역에서 몇 시간씩 정차를 하고 기다려야 했다. 이 열차가 서울 용산 역에 도착한 것은 27일 오전 7시경이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가 불안에 싸여 있고 위장을 한 군용차량들이 최대한도로 거리를 질주하고 서울의 거리에는 살기가 감돌기만 하였다.

용산 육본 벙커 내에 있는 작전상황실에 들어가니 25일 아침부터 밤낮 2 주야를 꼬박 새운 작전국 정보국 장병들은 잠을 자지 못하여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되어 있고 질서도 없고 우왕좌왕 전화 통화 관계로 실내는 장바닥처럼 떠들썩하고 소란하기만 했다.   

1975년 8월 1일 (금) 소나기   

여천(麗川)공업단지 방문.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여천단지 방문, 호남정유에서 오찬. 메탄올 공장, 칠비(七肥), 삼일만 부두공사 시찰. 조국근대화의 상징적 공사의 하나인 중화학 공업단지, 여천단지의 공사가 그 동안 여러 가지 난관이 많았고 특히 석유파동 이후에는 설상가상격으로 애로가 겹쳤으나 그래도 예정 공정대로 착착 추진이 되고 있는 것을 보고 기쁘기 한량없다.   

관계 책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다. 메탄올 공장이 금년 말에 완공되고, 칠비가 1977년 3월에 준공되고 삼일만 항만시설이 또 완공되고 석유화학 공장들이 1978년경에 완공이 되었을 때를 예상해 보면서 부풀은 희망과 자신감을 가득 간직하고 저도(猪島)로 돌아왔다. 남해고속도로의 쾌적한 기분은 배할 데 없고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교통사정이 극히 불량하던 이 고장에 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연도(年度) 농촌의 모습도 일신하였고 연도 농촌이 기름져 보였다.   

1963년 봄, 호우와 홍수로 보리농사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적이 있었다. <적미병>이라는 맥류(麥類)에 걸린 병충해였다. 당시 이 지방을 지날 때(아마도 진양 부근이라고 기억된다) 어느 농가에 들었더니 노인 농부가 썩은 보리이삭을 만지면서 "우리는 이제 무엇을 먹고 산답니까?" 하고 눈물이 글썽한 것을 보고 나는 "홍수 피해 복구에 농민들이 협력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정부가 여러분을 돌봐드릴 것이니 용기를 잃지 마시오" 하고 격려했다.   

그러나 몹시도 나는 마음이 괴롭고 가슴이 아팠었다. 1962년에는 큰 한해(旱害)로 농민들이 타격을 입었는데 다음해 63년 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또 농민들이 큰 타격을 입었을 때였다. 나는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연도 농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일을 회상해 보기도 했다.(이하 일부 생략)   

1975년 8월 27일 (수) 맑음  

미국 국방장관 슐레진저 씨 내방(11시). 오후 2시 30분까지 오찬을 같이 하면서 한반도의 제반 정세와 한미 공동관심사에 관하여 격의 없는 의견교환을 했다. 한국정부의 자주국방 결의와 노력에 대하여 슐레진저 장관은 매우 기뻐하면서 미국정부는 한국의 방위을 위하여 최대의 지원을 하겠다는 포드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자립경제(自立經濟), 자주국방(自主國防)의 완성이 내가 기여하고 완수해야 할 사명이다. 자조자(自助者)는 천조(天助)라고 하였다. 우리 국민의 염원은 하늘도 기필코 도와주리라. 지하의 아내도 우리를 반드시 도우리라.   

1975년 9월 2일 (목)    

영동고속도로 개통 1주년, 오전 10시 장성호(長城湖) 댐 준공식에 참석하고 준공비 제막식 통수식도 동시에 거행되었다. 영산강 유역의 종합개발사업의 제 1 단계 사업인 장성 담양 광주 나주 4개 댐이 오늘 준공됨으로써 여기에 담수된 2억 6천만 톤의 저수는 하류 1시 6개 군에 몽리(蒙利)를 하게 되고 3만 5천 정보가 한ㆍ수해로부터 벗어나는 전천후 농토가 되는 것이다. 이 지방 농민들의 천년의 한을 풀어주는 대역사가 1973년 4월에 착공하여 우리 기술진에 의해서 7백 3십억이란 방대한 예산으로 완성된 데 대하여 무한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1981년까지 제 2 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영산강 하구언이 완성되고 3ㆍ4단계 사업(1995년 완료)까지 완료하면 영산강 유역은 천재(天災) 없고 기름진 옥토가 조성될 것이다. 헬기로 여타 3개 댐은 공중시찰을 하고 영산강 하구 나불도에 착륙, 방조제 공사 예정지점을 시찰하고 광주비행장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들고 전용기편으로 귀경하다.   

금일은 1년 전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가 개통된지 만 1년이 되는 날이다. 태백산맥을 뚫고 국토를 동서로 관통하여 국민들이 모두 쾌재를 불렀던 감격적인 날이었다. 2백 90억이 소요된 고속도로이지만 1년 동안에 실질적으로 2백 90억원의 이익이 나왔다고 생각된다. 초기에는 주로 승용차가 많이 통행을 하고 화물자동차는 25%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화물차가 50%를 넘는 다고 하니 명실상부한 산업도로가 된 셈이다. 동해안의 풍부한 자원, 설악산을 비롯한 명승고적, 새로운 가치를 발휘하고 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1975년 10월 3일 (금) 맑음  

단기 4038년 개천절이다. 단군 성조(聖祖)가 이 땅에 나라를 세우신 지 4038년.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민족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지난 4천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이 땅에 생을 영위하면서 가꾸고 건설하고 키워왔다. 영고성쇠(榮枯盛衰), 민족이 걸어온 역정에는 허다한 굴곡과 기복도 있었으나 한 조상의 핏줄을 이어받아 연면히 조국의 수호와 민족의 발전을 위한 민족의 전진은 계속되어 왔다. 앞으로도 영원히 계승될 것이다. 올바른 민족사관(民族史觀)에 입각하여 배달민족이 걸어온 전통(傳統)과 정통(正統)을 우리들이 계승하고 창조적인 발전을 위하여 온 겨레가 가일층 분발하고 정진해야 하겠다.   

1976년 5월 16일 (일) 흐림   

5.16혁명 15주년 기념일이다. 15년전 오늘 새벽에 이 나라의 젊은 군인들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들고 궐기했다. 오늘 새벽 동녘이 틀 무렵 혁명군 부대가 결사의 각오를 굳게 간직한 채 새벽바람 찬이슬을 마시며 숙연히 한강대교를 도강했다. 고요히 잠든 수도 서울은 역사의 새로운 장이 바뀌는 이 순간까지 적막 속에 초여름의 피곤한 잠을 이루고 있다가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부패와 부정과 무능과 안일, 정체와 무기력으로 기식(氣息) 암암하던 이 사회에 새로운 활력소와 소생의 숨소리가 흘러나오고 몽롱한 깊은 잠결에서 잠을 깨고 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전 5시 국영방송을 통해서 혁명공약이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새 역사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1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혁명은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줄기차게 진행중에 있다. 가지가지의 고난과 저항과 훼예포폄(毁譽褒貶)을 들어가면서 5.16의 완성은 우리 나라를 선진 공업국가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자주국방 자립경제를 달성하여 평화적 남북통일의 기반을 구축하여야만 한다. 1980년대 초에는 이 목표가 달성될 것으로 확신한다.   

1976년 6월 25일 (금) 흐림  

6.25 26주년이다. 대역(大逆) 김일성 도당들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도발한 지 26주년이 된다. 조국강산을 피로 물들이고 국토를 초토화시키고 수십만의 동포가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해서 소위 남조선 해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이처럼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다. 반만년 역사상 동족끼리 이처럼 처참한 살육전은 없었다.   

이 대역무도한 놈들의 이 죄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이런 엄청난 죄를 범하고도 지금도 또다시 남침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이 만고역적들을 여하히 치죄해야 하나.   

길은 하나뿐이다. 전력을 경주하여 우리의 국력을 배양하는 길이다. 역적도당들에게 천벌을 가할 수 있는 막강한 국력을 길러서 민족의 원한을 풀어야 한다. 애국선열, 전몰군경, 반공애국투사들의 천추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길 하나뿐이다 나의 모든 생명을 바쳐서 이 민족적 사명을 기필코 완수하리라. 천지신명이시여! 나에게 이 대업을 완성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1976년 10월 13일 (수) 맑음  

10시 40분 기동차 편으로 서울역발. 영산강 유역개발 제 1 단계사업 준공식 참석차 광주로 향발. 오후 4시역 광주 도착. 기차편으로 공주행은 오래간만이다. 연도 농촌의 모습이 수 년 전에 비하여 괄목할 만큼 변모한 모습이 눈에 띈다.   

새마을운동의 실적이 농촌 방방곡곡에 나타나고 있고 풍요에 넘실거리는 가을의 평화는 아름답기만 하다. 광주시내 모습도 1년여만에 보는 눈에는 깨끗하고 알뜰하게 다듬고 가꾸어진 모습 역연하다. 시민들이 내 고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씨가 구석구석에 보여 기쁘기 한이 없다. 도착 후 목욕을 하고 고건(高建) 지사를 대동하고 무등산 너머에 있는 김덕령(金德齡)장군의 사당, 충장사를 참배하고 돌아오다.   

1976년 10월 17일 (일) 흐림   

10월 유신 4주년이 된다. 유신 4년 동안에 우리나라는 과거 10년 내지 20년 정도의 변화를 가져왔다. 국력이 그만큼 커졌다. 정부와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그 동나 73년 말부터는 유류파동으로 시작된 국제경제의 일대 불황이 있었다. 75년 초에는 인도지나 반도의 비극이 있었다. 북괴의 남침땅굴 발견도 이 기간 중에 있었다. 8.18판문점 만행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꾸준히 국력을 신장시켜 왔고 주변정세의 격변과 북한 침략집단의 집요한 도발과 위협에 미동도 하지 않고 우리의 안보태세를 훨씬 더 튼튼하게 다져 놓았다. 우리의 방위산업도 괄목할 만큼 발전 성장하였다. 우리의 경제발전은 국제사회에서 경이의 대상이 되고 개발도상국 중의 모범국가로서 선전이 되고 있다. 그 원인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대 자각과 단결과 땀흘려 일한 노력의 대가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의 이 건설의, 성장의 결과는 값진 것이고 보람있는 것이다.   

하늘은 한 민족이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 개척하겠다는 결의와 노력을 경주할 때는 반드시 거기에 응분한 보상을 준다는 것으로 우리는 믿어야 한다. 농촌사회에서 5천년의 유산인 가난이 하나하나 벗겨져 나가고 새로운 생기 약동하는 농촌 모습으로 달라져 가는 것은 새마을운동의 성과이다.   

농민들이 의지와 의욕과 노력의 대가가 농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0월 유신은 구국의 결단이었다. 우리 국민 전체의 결단이었다. 새 역사의 출범이었다. 근면, 자조, 협동하는 데에서 새 역사가 하루하루 창조되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단해서는 안 된다. 계속해야 한다. 밝은 내일은 반드시 도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1977년 12월 22일 (목)   

음력 11월 12일 동지(冬至), 백 억불 수출의 날. 백 억불 수출목표 달성 기념행사 거행, 오전 10시 장충체육관에서 각계인사 7천여 명이 참석, 성대한 행사를 거행하였다. 1962년 제 1차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던 해 연간 수출액이 5천여만 불이었다. 그후 1964년 11월말에 1억불이 달성되었고 거국적인 축제가 있었고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정했다.   

1970년에는 10억불, 7년 후인 금년에 드디어 백 억불 목표를 달성했다. 그 동안 정부와 우리 국민들이 피땀 어린 노력과 의지의 결정이요 승리다. 서독은 1961년에, 일본과 프랑스는 1967년에, 네덜란드는 1970년에 백 억불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러나 10억불에서 백 억불이 되는 데 서독은 11년, 일본은 16년(1951-1967)이 걸렸다. 우리 한국은 불과 7년이 걸렸다. 모든 여건이 우리가 더 불리한 여건 속에 이룩한 성과라는 데서 우리는 크게 자부를 느낀다.   

1981년에 가면 2백 억불을 훨씬 넘을 것이다. 1986년경에 가면 5-6백 억불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무서운 저력이 이제야 폭발적으로 발산될 때가 왔다.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분발해야 한다. 오늘 이 날은 우리 한국경제사상 길이 기록될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족중흥의 역사적 과업수행에 있어서도 길이 부각될 이정표가 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백 억불, 이것은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자. 새로운 각오와 의욕과 자신을 가지고 힘차게 새 전진을 굳게 다짐하자.   

1978년 1월 18일 (수) 눈   

1978년도 연두기자 회견을 10시 정각 중앙청 회의실에서 가졌다. 목감기가 아직 완전 회복되지 않아서 음성이 약간 탁하고 맑지 못하였으나 강행을 하다. 2시간 50분이 걸렸다. 희망과 자신과 의욕에 가득 찬 새해다.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그날이 눈앞에 다가선 것 같다. 국제정치의 격랑속에서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이 긴박한 한반도 정세. 나날이 각박해 가는 세계경제의 추세. 외교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하는 속담처럼 제각기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의리도 신의고 없는 냉혹한 작금의 국제정세.   

오직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힘뿐이다. 힘, 힘이 없고 힘을 기르는 데 힘쓰지 않는 민족은 살아남을 땅이 없다. 이것은 진리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곁에 있다. 먼 곳에서 구하려 하지 말자. 오천년 동안 이 땅을 지키며 살아온 겨레.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민족의 이상을 간직하고 착하고 어질게 살려고 자자손손 가꾸어 왔는데, 한 번도 남을 해치거나 악하게 하지도 않았는데, 항시 외적의 침입을 받고 어깨 펴고 살지도 못했거늘 가난과 침체와 무기력과 쇠잔의 역사를 걸어왔건만.   

이제 우리에게도 어두운, 지루한 밤은 가고 밝은 새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밝아온 새 아침에 지금 살고 있다. 이 밝은 새날은 우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대웅비를 기약 받은 새 역사의 출발점이다. 금년은 그 중의 한 해다. 물질문명의 풍요와 발맞추어서 정신문화에도 꽃을 피우기 위하여, 전통문화도 꽃을 피우기 위하여 전통문화 속에 조상들의 얼과 슬기가 맥박치는 문화적인 자주성도 정립해 나가야 하겠다.   

1979년 5월 16일  

5.16혁명 제 18 회 기념일이다. 1961년 5월 16일 누란의 위기에 직면한 조국을 구하려, 아니 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가만히 좌시만을 할 수 없다는 우국의 일념으로 젊은 군인들이 궐기한 것이 5.16이다. 뚜렷한 경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난마와 같이 헝클어지고 부패부정 무질서 부조리 정체 무기력 이러한 단어들이 5.16 당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단적으로 표시한 표현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회악과 부조리를 과감하게 척결하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신풍을 흡입하기 위해서도 5.16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혁명을 단행하고 구 정치인들로부터 정권을 인수한 혁명정부는 너무나 막중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민간정부를 전복하고, 구악에 물든 대표적인 인사들을 구속하며 쾌도처럼 산적된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혁명정부에 대하여 다수 국민들은 쾌재를 부르고 박수를 보내주기도 했으나 구정치세력들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은 외세를 빌려서 혁명정부를 빨리 종식시키고 다시 자기들이 정권을 장악하겠다는 집념에 차 있었다. 혁명정부의 과감한 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 혁명주체세력 내부에도 다소의 내분이 없지 않아서 고민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1963년 12월 17일 민정이양을 위한 선거로써 제 5 대 민선 대통령으로 당선된 나의 취임식이 중앙청 광장에서 거행되고 군정은 완전히 민정으로 이양되었다.   

5.16혁명 18주년을 맞이하여 지나온 18년간을 회고하니 감회가 무량하다. 조국근대화 과업도 이제 결실기에 들어섰다. 1,2,3차 5개년 계획이 대체로 순조로이 진행되어 우리의 국력도 괄목하리 만큼 크게 신장되었고 공업화도 착착 추진되어 5.16 당시와는 비교하기 어려우리 만큼 나라의 모습이 변모하였다. 남들은 한국의 기적이니 한강이 기적이니 하고 우리가 걸어온 도정과 결과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 민족적이니 긍지와 자주정신, 그리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들이 과거 어느 때 보다도 고조되어 있다. 자신들의 스스로의 피땀으로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보람과 자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초에 시작된 새마을운동과 1972년 가을에 단행된 10월 유신은 우리의 과업을 촉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 작업이 열매를 맺으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더욱 분발하고 총화로써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이 과업수행 도중에 나의 인생의 반려인 내자를 잃게 된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손실이요 불행이었다.   

1979년 5월 12일 (토) 맑음  

전 미 국무장관 키신저 박사가 내방하여 장시간 환담하고 오찬을 같이하다. 키신저 박사의 국제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은 오늘의 세계에서 최고 수준급의 인사라는 것을 실감케 하였다. 특히 한반도 정세에 관한 깊은 이해와 대단한 판단 및 평가에도 감명을 받았다. 5월 7일자 <로스엔젤레스 타임스> 지 보도에 한국기사, 조지어 앤 게이어 씨가 쓴 칼럼에 "한국의 현 정치체제는 켄센서스 소사이어티로 급속히 발전해 가고 있다. 정치발전 속에서 개발도상국에서는 가장 소득분배가 잘된 나라다. 직접적인 정치분야를 빼고는 모든 분야에 자유가 만개한 나라" 운운.   

1979년 10월 17일 (박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일기)   

7년 전을 회고하니 감회가 깊으나 지나간 7년간은 우리 나라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일부 반체제 인사들은 현 체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사가(史家)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

  0
1000
윗글 그 때 그 시절 - 1908~ 1920년
아래글 김진명 작가 강연 영상

역사의 현장

게시판은 건전한 사회문화의 흐름입니다. 본 사이트와 관련없는 글, 또는 타인을 비방, 욕설은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으며
또 이곳은 젊은 학생들이 학습자료 수집을 위해 많이 찾고있음을 유념하시기 비랍니다.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461 ♠경부 고속도로 건설의 비화(秘話) wonyoung 2015-07-04 20:00
460 아 박정희 대통령!<모셔온 글> 송영인 2015-07-03 16:56
459 미국 CIA “바지 속 90만 달러 내놔라” 송영인 2015-06-17 22:13
458 5 16 군사혁명 운영자 2015-06-17 21:59
457 <그때 그시절>대한민국 건국일 재건사업 발대식 운영자 2015-06-13 10:34
456 박정희대통령 핵개발 1 운영자 2015-05-08 21:18
455 박정희와 노무현家의 100만$ 사용처 비교<역사의 현장> 1 송영인 2015-05-15 14:22
454 파락호 (破 落 戶)<역사의 현장> 1 박민식 2015-05-13 22:05
453 우리나라 옛다리를 찾아서 운영자 2015-06-05 09:39
452 고요한 아침의나라에서 서현식 2015-01-19 13:35
451 그 때 그 시절 - 1908~ 1920년 김정식 2015-05-24 20:52
450 성공한 5.16혁명!↔실패할 공포정치! 운영자 2015-05-16 16:23
449 김진명 작가 강연 영상 운영자 2015-05-08 22:28
448 전원책 "박정희는 과보다 공이 훨씬 매우 크다. 그분은 위대합니다!" 2 노블 2015-05-07 11:23
447 북한 교과서에 나오는 명동의 흔한 안구파는소녀 1 운영자 2015-05-07 03:03
446 임진왜란-1.2부- 운영자 2015-05-06 07:24
445 '한국과의 기막힌 인연' <린튼네 사람들> 박민식 2015-05-03 00:20
444 70대를 위한 頌歌 유공자 2015-04-20 21:14
443 決定版 太平洋戰爭全史 운영자 2015-04-23 02:27
442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운영자 2015-04-22 01:46
441 그는 누구인가 운영자 2013-02-28 00:28
440 그때 그 시절 운영자 2015-04-17 14:59
439 전투수당 하루 1달러 5 김경만 2014-04-04 20:16
438 白頭山(長白山)과.한(조선).중 국경선문제 운영자 2015-04-13 09:15
437 두 얼굴의 이승만- 권해효 나레이션(풀버전) 운영자 2015-04-10 05:45
436 참전용사 외면하는 대한민국 21 박경석 2007-06-08 15:34
435 중앙집권국가 조선에도 지방관청 서울사무소 성행 운영자 2015-03-31 18:35
434 "'慰安所' 앞에 일본군들이 차례 기다리며 줄 서 있었다" 최보식 칼럼 2015-03-27 10:29
433 <必讀>자국 이익 위해서는 냉정한 국제사회(731부대) 운영자 2015-03-27 06:09
432 The President to be God(Park Chung-hee) 신이 된 대통령 1 운영자 2014-02-17 20:14
431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재평가 日通 2015-03-10 20:00
430 “흥선대원군”과 “이장렴” 日通 2015-03-09 18:38
429 설민석의 역사이야기 박민식 2015-03-10 18:01
428 육영수 여사 장례식 1 운영자 2015-02-22 14:59
427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육영수와 문세광 1 운영자 2015-02-22 14:46
12345678910,,,17

mailbox_red.gif

vietnamwar@naver.com

Copyright (c) 2002 www.vietnamwar.co.kr All rights reserved.
 
Contact vietnamwar@naver.com for more information .

cellularphone03.gif

010-3720-8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