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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日通
작성일 2015/03/10 (화) 20:00
ㆍ조회: 1143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재평가

1. 대원군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는

  •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은, 아들 고종의 즉위로 인하여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살아 있는 왕의 아버지로서 “대원군”에 봉해지고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섭정(攝政)자가 되었는데, 일면으로 당시 왕권이 허약하여 여 우 같은 대신(大臣)들에 의하여 국정이 좌지우지되는 정황에서, 왕권을 완전히 회복한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 그가 정치를 주도했던 19세기 후반에 조선민족은, 서양(西洋)의 정치적인 성향과 문물이 어떤 것인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따 라 잡지는 못했으며, 일본의 조선을 먹으려는 야욕은 알만한 것인데도 며느리 민비가 왕권다툼에 치중하였기 때문에, 더욱 어려워 졌다.
  • 하지만, “대원군이” 조선 역사상 유래 없는 대군(大軍)을 창설했다는 점은, 앞날을 내다보고 일본 침략을 대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가 창설한 대군(大軍)을 그대로 유지 했다면, 일본이 조선을 쉽게 침탈(侵奪)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바이다.
  • 이건, 민비가 국제정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신식무기로 강력하게 무 장한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기 직전의 상황을 모르고 “대원군”을 왕권에서 몰 아내고 고종이 왕권을 잡는 데에만 집착하여, 대원군이 양성한 대군을 해산하 고 조선군에게 신식훈련을 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일본군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호랑이 아가리에 개를 구어서 바친 처참한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이다.
  • 훗날 대원왕으로 봉해진 “대원군은” 조선의 역사상 처음으로 왕권을 온전 하게 회복하였던 사례이고, 여우처럼 사리를 채우려는 간사한 대신들의 못된 세도정치를 여지없이 제압하여 개선하고, 오로지 국가재건에 전념한 왕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사려(思慮)되는 바이다.
     

2. 파락호(破落戶)로 행세하며 왕권을 노리다

  • “이하응”은 혈통으로 보면 인조의 셋째아들 인평대군의 8세손으로 왕권과 가까운 왕족은 아니지만, 그의 아버지 남연군이 정조의 이복형제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감으로써 영조로부터 이어지는 왕가에 편입되어 왕위와 가까워진 것인데, 그러나 당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상황에서 왕위와 멀지않은 왕족이 라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 헌종 이후 끊어진 정조의 직계는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손자인 철종으 로 이어졌고 철종마저도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왕위와 가까운 왕족들은 모두 왕이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왕족들은 안동 김씨들로 부터 끊임없는 견제를 받아야 했다.
  • 안동 김씨는, 세도를 이어가기 위해 자신들이 골라서 강화도에서 데려온 철종처럼 정치 문외한인 왕을 원했기 때문에, 조금만 왕의 자질이 있어 보이는 왕족은 억울하게도 역모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멀리 귀양 가서 죽임을 당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혈통은 왕과 멀지만, 왕권과 가까운 “이하응”이 목숨을 부지하는 방법으로 건달(乾達) 행세를 아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당시, 조대비는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세자비로,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대비가 되었지만, 안동 김씨가 친정인 시어머니 순원왕후에 밀려 한 많은 궁중 생활을 하다가, 순원왕후 사망 이후 궁중 최고 어른이 되어 안동 김씨에게 친정의 원한을 갚을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간파한 “이하응”은, 조대비의 조카 조성하와 친교를 맺어 조대비에게 접근하였고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을 경우엔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을 철종의 왕위계승자로 지명하도록 설득하였다.
  • 그는, 야심 없는 파락호(破落戶)를 자처하고 “궁도령” 혹은 “상갓집 개”란 치욕적인 별명까지 얻으면서 세도가들의 눈을 피한 “이하응”은 아무도 모르게 조대비와 연줄을 대어 야망을 이룰 기반을 차근하게 마련했던 것이다. 이러한 먼 훗날을 대비하는 고차원적인 정략을 “대원군”에게 철저하게 교육한 사람은 그 유명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인데 “대원군”은 정치 경험이 많은 김정희에게 배운 방법을 동원하여 야망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3. 관복을 입은 “흥선대원군”은 어린 아들을 앞세워 10년간 섭정

  • 1863년 12월 초, 철종이 사망하자 조대비는 이하응과 맺은 묵계대로 그의 둘째 아들 명복을 철종 후사로 지명하였으매, 12살 고종은 아버지 “이하응”의 노력과 덕분으로 왕위에 올랐고, “이하응”은 왕의 아버지로 대원군이 되었다. 조선역사상 “대원군” 칭호는,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과, 철종 의 아버지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과,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등 3명 이었지만, 왕의 아버지로 왕이 즉위 때 생존했던 사람은 “흥선대원군” 한 사람 뿐이었다.
  • 그 당시 19세기 후반, 일찌감치 산업혁명으로 발달한 기술문명으로 제국주 의가 된 서양 국가들은, 식민지 확보를 위해 거침없이 동양으로 진출해오고 있 는 위기 속에서 “대원군”의 왕권강화는 시대착오적인 면이 있어 보였지만, 대신 들의 세력 다툼에 휘말린 상태 보다는 훨씬 좋았다고 봐야 한다.
  • 그는 무리하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당백전과 원납전으로 경제구조를 흐려 백성의 삶을 다시금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서구의 새로운 사상이 유교사상을 교란시킬 것을 염려하여 천주교(天主敎) 신자들을 박해하고 쇄국정치를 폈기 때 문에, 국제관계를 악화시켰으므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기회를 놓쳤다고 보 는 시각도 있지만, 이러한 판단이 옳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 한편, 기독교가 조선 땅에 들어 와서 무었을 했느냐 하는 것을 살펴보자면, 우리의 전래문화가 나쁜 것도 아닌데 이를 살피지 않고, 야만인의 것으로 오해 하여 모조리 말살하고, 오로지 자기들이 섬기는 종교의 교리 일색으로 바꾸려 했었기 때문에, 우리의 전래된 기존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천주교를 박해 했다고도 볼 수 있다.
  • 그가 집권 초기에 막아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개혁정치로 강해진 국방력의 결과이지만, 역사학자들은 서구와 평화롭게 수교할 기회를 놓친 사건 이라고 했는데, 당시 서양은 식민지 확장 목적으로 수교(修交)를 이용했으므로, 후세에 들어서 이러한 사건을 재평가(再評價) 해 볼 때, 역사학자들이 겉만 보 고 평가한 것을,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4. 권좌에서 물러난 후

  • 12살에 왕좌에 오른 고종은 22세가 되면서, 나라를 직접 다스리고 싶어서 강력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대원군”은 성인이 된 아들에게 자신이 10년간 휘두르던 권력을 넘겨주지 않으려 했는데, 이는 능수(能手) 능란 (能爛)한 수완가 “대원군”과 햇병아리 같은 고종이 한일합방 전에 혼란했던 위 기의 국정을 누가 더 잘할 것인가를 비교해 보면, 알만도 하다.
  • 고종과 민비는 권력을 찾으려는 욕심으로 “대원군”에게 악감정이 있는 최 익현을 동부승지로 기용하여 반대 세력을 만들어 “대원군”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고 민비는 이를 이용해 “대원군”의 실각에 결정적 원인을 만들고, 1873년 똑똑치 못한 고종은 친정(親政)을 선포하여 “대원군”은 정계를 은퇴를 했는데, 이건, 못된 며느리가 들어오면 집안을 망친다는 말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5. 정권은 민씨일가로 넘어 갔다
  • 타의로 물러난 “흥선대원군”은 정계복귀 기회를 노렸는데, 그로서 민비와 갈등으로 이어졌다. 외척의 정치참여를 막으려는 섭정기간 과 상반되게, 그가 권력을 잃은 후, 정국은 완전히 민비의 친정 민씨 일가가 주도하였다.
  • “대원군”은 고종을 폐립하고 자신의 다른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역모에 연루되었으며, 1882년 임오군란 때 난도를 이끌고 궁궐에 들어가 피신한 민비 사망을 공포하고 잠시 정권을 잡기도 했지만, 민비가 청나라에 부탁하여 그를 납치하도록 하였음으로, 그의 재집권은 물거품이 되었다.
  • 대원군이 재집권하기 위해 어떤 세력과도 제휴하고자 했고, 한때 위안스카 이(원세개)와 손을 잡기도 했으며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땐 동학세력에 손을 뻗 었으며, 갑오경장 땐 일본과 줄을 대 재집권기회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 “대원군”이 이렇게 나가자, 1895년 고종은 대원군의 정치활동을 제한조치 를 취해 외부 활동을 막았으므로, 유폐나 다름없는 “대원군”은, 민비 시해사건 (乙未事變) 이후 잠시 정권을 잡았지만, 신변 위험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 관으로 피신(俄館播遷)하여 친러파가 대두하면서 축출되었던 것이다.
  • 그로부터 3년 후 1898년 “대원군”은 78세로 사망했는데, 한일합방 3년 전 1907년(광무11) 그는 대원왕(大院王)에 추봉(追封)되었다. 19세기 후반에 격변 하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조선(祖先)의 정치사를 관통했던 그는 참으로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끝.

2011년 퍼옴 감사 합니다 뜻이 통하는 날 - 日 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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