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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은 건전한 사회문화의 흐름입니다. 본 사이트와 관련없는 글, 또는 타인을 비방, 욕설은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으며
또 이곳은 젊은 학생들이 학습자료 수집을 위해 많이 찾고있음을 유념하시기 비랍니다.

작성자 강성광
작성일 2005/08/03 (수) 18:42
ㆍ조회: 4281   
전쟁 영웅들께 보내는 위문편지
위문편지

저는 1970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위문편지를 쓴 것은 그 다음해인 1971년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입니다. 편지 봉투에 “국군 장병 아저씨께”라고 써서 보내면 전방에 있는 군인 아저씨들께로 가고, “파월 장병 아저씨께”라고 적어 보내면 월남에 있는 군인 아저씨들께로 갑니다.

나는 누구나가 그러했듯이 축구와 김일 선수의 레슬링과 국군 아저씨들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사내아이였습니다. 자주 보던 잡지에는 항상 베트콩을 무찌르는 용감한 국군 아저씨들의 만화가 나왔고, 영화관에 가면 “대한뉘우스”에서 이곳 사이트의 동영상에서 보던 그런 전투 장면들을 볼 수 있어 무척이나 좋아했었습니다. 그 당시 저와 같은 모든 꼬마들에게 있어서 김일 선수와 국군 아저씨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모두 영웅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위문편지를 보내야 한다기에 누이들과 어머님께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물어 가며 편지를 썼습니다. 베트콩을 무찌르는 파월 장병 아저씨들께만 보내면 전방에 있는 군인 아저씨들이 섭섭해 할까 봐 두 곳에 모두 보내기로 했습니다. 글씨를 잘 써 보려고 애를 쓰면서 지우고 다시 쓰는 것을 반복하여 쓴 것을 붙이고 난 후 위문편지에 대한 것은 한동안 잊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난생 처음 제 앞으로 편지가 왔는데 월남에서 온 것입니다. 부모님들께 오는 편지와는 달리 내게로 온 그것은 우표도 없이 “군사우편”이라는 도장만 찍혀 있습니다.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휴전선에 있는 군인 아저씨들은 답장도 안 해주는데 그 멀리 있는 월남에서, 그것도 내가 빠짐없이 보는 잡지의 만화 속에 나오고 “대한뉘우스“에 나오는 베트콩을 무찌르는 국군 아저씨가 내게 답장을 보내온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월남에서 근무하는 국군 아저씨에게서 편지를 받은 것은 유일하게 저 혼자입니다. 온통 자랑을 해야 합니다. 저는 1년 남짓을 그분과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분은 까맣게 그을린 피부로 야자수 나무 밑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 주곤 했습니다. 그분의 계급은 상병이었는데 이름과 부대는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그 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그분은 답장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 국군 아저씨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꼬마인 나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더 이상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한동안 저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분은 소위 계급의 국군 아저씨였는데,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또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분 역시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하면서 국군 아저씨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국군 아저씨들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지 않았고, 다음해인가 어느 날 선생님은 글짓기 시간에 “월남 패망”과 관련한 글을 쓰라고 하셔서 국군 아저씨들이 모두 한국에 돌아온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위문편지와 최초로 편지를 주고받은 것은 파월 장병이었습니다. 그 부대가 맹호 부대인지 청룡 부대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훗날 입대하여 기갑 학교를 거쳐 배치된 곳은 맹호 부대인 수기사 기갑여단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장갑차 조종수로 근무하면서 진주에 사는 초등학교 여학생과 위문편지를 주고받았고, 훈련이 많았던 관계로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뜸해졌을 무렵 나는 제대를 하였습니다. 아마 그 소녀도 그런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30여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다시 “파월 장병 아저씨들께“ 위문편지를 보냅니다.

영웅

올해로 마흔 세 살이 됩니다. 칭찬에 인색해서인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최상급의 찬사를 좀 체하지 못합니다. 일반인들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는, 특히 뉴스와 TV에 자주 나올수록, 천하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잘나고 훌륭한(?) 그런 사람들일수록, 나는 “산자에 대한 존경”을 좀체 표현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것은 43년이라는 어중간한 인생의 경험이 제게 학습시킨 결과이기도 합니다.

또 그러한 “산자에 대한 존경”이 얼마나 배신감과 허탈함을 느끼게 하고 더불어 내 자신의 단순함을 탓하게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최고의 수식어인 “영웅”이라는 단어를 기꺼이 씁니다.

저는 “사랑과 역사와 영웅은 나를 기준으로 판단된다”고 가끔 주변에 말하곤 합니다. 사랑은 누가 뭐라고 하여도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한정되는 것이며 그 가치와 비중은 오로지 나만이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역사는 어떤 나라가 뭐라고 하여도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그 역사 속에서 일반인들이 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훌륭하게 해낸 사람들을 우리는 영웅이라고 합니다. 두 나라의 역사가 충돌된 경우에는 각각의 해석이 달라지고 한쪽에서는 영웅이지만 한쪽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에서는 영웅 중의 영웅이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양만춘, 강감찬, 을지문덕.... 모두가 그러합니다.


6.25도 마찬가지지만 대한민국 국군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모든 분들은 영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 부류들은 “영웅”들이 목숨 걸고 싸웠던 “적”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 우리들의 적임에 또한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와 영웅을 나와 우리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적의 기준에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의 위문편지가 계기가 되어 월남전에 대하여 좀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수많은 월남전 영화(미국적 시각이긴 하지만)와 나름대로 국내의 관련 책자들을 읽어보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사실적인 전투 경험에 대한 글들은 대단히 현장감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 올려진 영상물과 글들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거의 빠짐없이 탐독하였습니다.

월남전 전체를 아울러는 일반적인 내용에서부터 특히나 “중대전술기지”에 대한 전략 수립과 실질적인 전투 경험담은 물론 동굴 탐색과 매복 그리고 교전 등에서 상당히 많은 느낌과 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속에서 마치 영화보다도 더욱 극적인 전투 과정을 읽으면서 수없이 생각한 것은, 이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들이며 최고의 찬사가 아깝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개는 영웅(英雄)도 군자(君子)도 모른다. 다만 밥 주는 사람만 안다.
오래 살지 않은 인생인데도 해괴한 것을 더러 보게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가당치 않은 것은 가치관과 상식을 뒤집는 논리를 들고 나오면, 세상의 이목을 단 순간에 받게 된다는 대중심리를 역이용하는 발상과 그것을 가히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과 부류들 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월남전을 폄하하고 참전 용사들을 “용병”이라고 비난하는 행위입니다.
어느 가난한 동네를 참으로 피땀으로 일구고 가꾸어서 잘살게 해 놓았더니, 그러한 고통에는 조금도 동참하지 않고 누리는 것에만 동참하는 사람이 기르는 개가, 피땀 흘려 일으켜 세운 노고와 공(功)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개가 사납게 짖으며 달려드는 것은 개 주인의 잘못입니다. 개는 영웅도 군자도 알 수가 없으며 다만 밥 주는 사람만 알고 그가 원하는 바를 충실히 할 뿐입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관심과 이목 그리고 인기만을 끌려고 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해괴한 논리나 억지 주장으로 가끔은 일시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언론 매체나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열외적인 위치에 있고 마이너리그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였지만 오래전에 “어린 여자아이”가 베트남 현지를 취재하였다며 어떤 신문에 보도했던 “월남전은 용병에 의한 대리전이었다“거나 ”양민을 학살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저 역시 들어서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왜 그런 주장을 해야 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도 있었으며, 일말의 연민의 정을 느끼게 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개가 사람에게 달려들 때는 개 주인을 혼내야 합니다. 개를 제압하고자 한다면 영웅도 군자도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데 이는 개 주인이 바라는 바입니다. 그리고 심히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될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런 문제를 일으킴으로써 세상의 관심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코 본질이 그러하지 않다는 것은 그들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그리 멀지 않은 언제인가부터 이 나라에는 가치관이 전도되고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고, 이상한 방향으로의 논리의 비약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박정희.

총 한 자루만 쥐고 사지(死地)로 떠났던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 돌아온 사람, 돌아왔으나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지도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찢어지게 가난한 이 나라의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거나 동참하지도 않고 그 열매만을 향유하는 자들은 그토록 저주에 가까운 증오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맥아더와 김일성.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 400만 명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원흉인 김일성에게는 일언반구도 없는데, 그 전쟁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게 한 맥아더에 대해서는 도리어 전쟁 원흉이라고 비난하며 동상을 없애자며 아우성들입니다.

양민 학살.
인민군이 6.25에 저지른 헤아릴 수 없는 양민 학살과 월남전의 베트콩에 의한 양민 학살은 아예 덮어두고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두고 양민 학살이라는 억지 주장을 일삼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들은 사실은 국민과 역사를 상대로 한 사기 행각이며 어떤 사상적 선동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너무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면 숫제 대꾸를 않게 되는데 이 경우가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영웅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영웅에게 국가는 없다.


나라를 잃은 시기의 독립운동이나, 북괴의 침공으로 온 나라가 파괴되는 전쟁에서, 그리고 국가의 명령으로 자유 수호를 위한 월남전에서나,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공을 세웠거나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 대하여 대한민국은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철저히 잊고 돌아보지 않습니다.

전범 국가이거나 주변국을 침범한 국가일수록 유공자들에게 공식적인 영웅 칭호까지 부여하고 신사(神祠)에 모시기까지 하는데, 평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대한민국 국군은 충성을 다짐하고 있는데 국가는 그 충성에 대한 결과에는 무관심합니다.


독립투사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 단칸방에서 살고, 6.25전상자라는 사실을 후손이나 가족들이 수년간을 조사하여 입증하여야만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거나, 고엽제 후유증으로 자신과 후손들이 죽어 가는 상황에도 국가는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며칠만 앓으면 분명하게 개운해지는 감기 몸살에도 우리는 참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완치를 기약할 수도 없이 생명이 사그라져 가고 후세에 전해지기도 하며, 그 치료마저 충분히 받을 수가 없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회사에서 퇴근하던 사람이 자신의 집 무턱을 넘기 전에 넘어져서 다칠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 보상과 치료를 받을 수 있고, 회식으로 술을 마시고 가다가 넘어져 다칠 경우에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국가의 명령으로 군 복무 중에 생긴 원인 때문에 고통을 받는데 그 충분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고도 어떻게 군대의 충성을 요구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많아서 그러한지 알 수는 없으나 국가가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사안에 대하여 필부가 묘안을 내놓기는 더욱 어렵지만 단지 몇 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있습니다.


고엽제에 대한 충분한 해법이 나오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에서의 월남전은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지휘관들도 꼭 같이 전투에 참여하였고 더러는 부하를 잃은 심리적 고통도 적지 않겠지만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상 지휘도 끝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고엽제에 대한 여론 형성에 있어 대외적인 상징성이나 지명도를 통한 대중에게로의 전달 등에서 훨씬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그리고 재향군인회나 군인공제회 월남 참전모임은 물론 해병전우회 등등의 유관 단체들과 협력하여 집중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으로 여론을 조성하고 법제화 등을 해 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문외한이 단순하게 제안하는 것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또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서 단순하게 “고엽제”라는 고식적인 단어의 단순 전달보다는, 좀 더 응용된 방법으로 일반인들이 궁금증과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와 방법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안이 아무리 중대한 것일지라도 일반 대중은 몇 번만 듣게 되면, 자세한 내용은 전혀 모르면서 마치 다 아는 듯이 넘겨 버립니다.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없고, 궁금하거나 호기심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큰물은 소리 없이 흐르고 대중은 말이 없다.
오늘도 고엽제로 인한 고통 속에서 투병 중인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결코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단지 말이 없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참전 용사 여러분들께도 깊은 찬사를 보냅니다. 더러 폄하하는 억지 주장에도 굴하거나 안타까워 마십시오. 큰물은 소리 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큰물은 소리 없이 흐르지만 모든 것을 쓸어버릴 수 있고, 수많은 대중들은 말이 없지만 진실과 올바른 것과 그 가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 두 분의 성함과 부대조차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분들이 어디에선가 항상 건강하게 생활하시길 빌고, 이역만리 월남 땅에서 산화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모든 파월 용사들께 위문편지를 보냅니다.


211.226.168.173 운영자: 이 위문편지를 읽으면서 노병은 손수건으로 수없이 눈언저리를 닦아야했습니다. 이 홈페이지는 한걸래신문의 오도된 양민학살 보도이후 우리의 후세들이 들어와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바로 알게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운영자는 이 글을 톨해서 감격스럽게! 눈물겹게! 가슴벅차게!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그 보람을 느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07/19-15:42]-
219.249.69.22 최상영: 달마님 이글을 읽고있으려니 월남에서 팬팔하던 그때 그아가씨가 생각나네요 그리고 고사리같은 어린손으로 보내준 위문편지를 받아보면서 향수을 달래던그때가 그립군요.달마님 어느세 우리가 노병이 되었고 그 고사리같은 어린 손을 가진 그소녀도 지금은 세월 따라 많이 늙었겠지요... -[07/19-22:10]-
쓴소리: 전방을 지키는 현역군인보다 믿음직스럽군요. 이런 사람이야 말로 이나라의 미래입니다. -[07/22-01:14]-
부자해병: 이 아침 가슴찡한 글을 봅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영웅의 눈물은 빗 줄기처럼 오늘도 통곡 합니다. -[07/25-13:28]
이름아이콘 진명사해
2007-06-14 21:32
월남 참전 용사 여러분들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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