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ung1.gif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베트남참전 유공자회

그리운 전우 찾기

베트남전쟁 참전수기

베트남전쟁의 영웅들

침묵의 살인마

STOP THE WAR

6·25참상

國會인터넷生放送 

國會議員홈페이지 

고 엽 제 란? 

고엽제 보고서 

  고엽제 후유(의)증 

  고엽제 등록절차 

  전국보훈병원안내 

  전국호국묘원안내 

tmp3512.bmp

dalma01.gif

역사의 현장

게시판은 건전한 사회문화의 흐름입니다. 본 사이트와 관련없는 글, 또는 타인을 비방, 욕설은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으며
또 이곳은 젊은 학생들이 학습자료 수집을 위해 많이 찾고있음을 유념하시기 비랍니다.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9/08/30 (일) 00:32
ㆍ조회: 1874   
10.26 그 살육의 현장

10월 26일, 박대통령이 삽교호 방조제 준공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후 4시, 경호실장 차지철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전화를 했다.“오늘 저녁 6시, 각하께서 궁정동 안가에서 만찬을 하실 것이니 준비를 해주시오. 참석인원은 김계원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 그리고 나요.” 궁정동 안가는 담장이 드높은 청와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담장 밖에 별도로 위치한 조그만‘안전가옥’이였으며, 주로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이 식사모임이나 작은 연회를 가질 때 사용되는 은밀한 사랑방이었다. 이 안가는 은밀하다는 것 말고는 초라할 정도로 지어진 가옥에 불과했다. 박대통령은 낡은 허리띠를 매고, 화장실 물을 아끼기 위해 벽돌을 집어넣을 정도로 검소한 지도자였다. 그런 그가 늘 사용하는 안가식당이 화려할 리 없었다. 아래 사진은 박대통령이 시해 당했던 바로 그 안가식당이다. 방의 크기로 보나 식탁, 문갑, TV로 보나 그 안가의 식당은 일반 서민의 안방정도로 초라해 보인다.

차지철로부터 전화를 받은 김재규는 “바로 오늘”이라는 생각에 즉시 평소에 공을 들여온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후 4시 15분이었다.

정총장, 오늘 저녁 좀 만났으면 하오. 궁정동 안가 알지요. 18시 30분까지 궁정동 본관으로 좀 와 주시오.

오후 4시 30분, 김재규는 곧바로 궁정동 안가, 별채 연회장에 가서 김계원 비서실장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김계원은 오후 5시 40분경에야 나타났다. 두 사람은 안가 정원에 쪼그려 앉았다. 김계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차지철 그 사람 월권을 해서 야단이야, 야당 친구 몇 사람의 말만 듣고 각하에게 보고하여 각하를 강경하게 몰아가고 있단 말야.

기다렸다는 듯이 김재규가 내심을 털어놓았다.

형님, 오늘 저녁 이놈을 해치우겠습니다. 뒷일은 형님이 책임져 주시오.

김계원이 고개를 끄덕여 이에 동의를 표시했다. 김재규는 차지철로부터 늘 인격이하의 대우를 받아왔으며 대통령이 있는 앞에서 면박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차지철에 대한 분노는 뼈에 사무쳐 있었다. 차지철의 오만과 월권에 대한 소문은 당시 사회 전반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차지철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김계원 역시 그를 눈엣가시로 생각해 왔다. 김계원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던 사람이었고, 차지철은 5.16군사혁명 당시의 계급인 대위로 군생활을 마감한 사람이었지만, 당시의 차지철은 대통령 말고는 안하무인 식으로 행동했다. 김계원이 김재규에게 던진 이 말은, 김재규의 가슴속에 불타고 있는 차지철에 대한 증오심에 불을 질렀을지 모른다.“오늘 해치우겠습니다. 뒷일을 책임져 주시오.” 이 엄청난 말에 김계원이 선뜻 동의한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차지철만이 아니라 박대통령까지도 해치우겠다는 의도에 동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재규가 언젠가는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는 데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김계원은 “여보, 당신 그게 무슨 소리요?” 하고 놀랐을 것이다. “차지철만 죽이고 대통령을 살려두면 당신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요” “뒷일이라는 게 뭐요?” 이렇게 연속해서 물었을 것이다. 오후 6시 05분, 대통령과 차지철이 현관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만찬 방으로 안내됐다.

대통령: 오늘 가보니 삽교천 공기는 좋고 공해도 없는데 신민당은 왜 그 모양이요. 오늘 삽교천 준공식 광경을 왜 KBS TV에 보도하지 않지? 정보부장, 신민당 상황은 어떻소?

김재규: 공화당 발표 때문에 다 틀렸습니다. 사표 내겠다고 한 친구들이 다 강경으로 돌아섰습니다. 아무래도 당분간 정 대행체제의 출범은 어렵겠습니다. 그리고 주류가 강해져서 다소 시끄럽겠습니다.

차지철:  그까짓 새끼들 까불면 신민당이고 학생이고 전차로 싹 깔아뭉개 버리겠습니다.   

여기에서 정 대행체제라는 것은 9월 7일, 서울민사지방법원이,‘김영삼이 불법으로 총재가 되었다’며 신민당 조일환씨 등 3명의 신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 낸 “총재단집무집행정지가처분신청”을 이유 있다고 받아들인 결과 김영삼으로부터 총재직을 박탈하고 그 대신 정운갑을 총재로 하는 대행체제를 출범시키라고 판결한 것을 의미했다. 차지철은 “깔아뭉개 버리겠다”는 말을 던져 놓고 옆 대기실로 가서 기다리고 있던 두 여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한 여인은 24세의 여가수 심수봉(명지대 경영학과)이었고, 다른 한 여인은 22세의 광고모델 신재순(한양대학교 재학중)이었다. 박대통령 오른 쪽에는 신재순이, 왼쪽에는 심수봉이 앉았고, 심수봉은 그녀의 기타를 옆 문갑에 기대어 세워놓았다. 술잔이 돌고 잡담이 오가는 등 주석 분위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만찬을 시작한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7시 뉴스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김재규는 정승화가 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만찬장을 빠져나와 작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50m 가량 떨어진 본관(김재규 집무실) 1층 식당 문을 열었다. 정승화는 오후 6시 35분에 안가 별채에 도착하여 중앙정보부 2차장보 김정섭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총장, 미안하오. 내가 저쪽 행사를 마치고 올 터이니 두 분이 식사를 하고 계시오.  

그리고 같은 건물 2층 직무실로 올라가 책장 뒤에 숨겨 두었던 소형 권총을 하의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이 때 해병대령 출신 박선호와  현역 육군대령 박흥주(육사18기)가 뒤를 따랐다. 김재규는 식당 문 어두운 곳에서, 두 사람에게 손짓을 하여 그에게 바짝 다가오라 손짓을 하고는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김재규: 박실장(박선호), 본관에 육군 총장과 2차장보가 와있다. 오늘 해치운다. 너희들은 경호원들을 처치해라.

이어서 주머니의 권총을 보여주며 결의를 확인시켜 주었다.  

김재규:  자네들 각오가 돼 있겠지?

박선호: 각오가 돼 있습니다.  

박흥주: 예

박선호: 각하도 하실 겁니까?

김재규: 응

박선호: 오늘은 좋지 않습니다. 경호관이 7명이나 됩니다.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김재규: 안 돼. 오늘 해치우지 않으면 보안이 누설돼, 나는 지금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 똑똑한 놈 세 놈만 골라 다 해치워.

박선호: 30분만 여유를 주십시오.

김재규: 알았네.  

김재규는 주머니에 권총을 넣은 채 만찬장으로 돌아왔다. 7시가 가까워지자 대통령이 시계를 자주 보았다. 이에 차지철이 “각하 시간이 되면 TV를 켜 드리겠습니다” 하고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자동스위치로 TV를 켜서 KBS를 시청했다. 삽교천 제방 준공식 장면이 나왔고, 김영삼과 미 대사가 만난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뉴스에 대통령은 심기가 상한 듯 “총재 아닌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8군 뉴스를 보면서 카터 이야기도 했다. 헬기를 타고 오면서 보니까 한강에 다리가 많더라는 말도 했다. 이 때 김재규가 들어와 TV를 끄자고 제의해서 차지철이 TV를 껐다. 대통령은 김재규에게 부산사태 사진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고, 김재규는 “예” 하고 대답했다. 대통령은 “김부장이 술을 좋아하니 많이 권하라” 했지만 김재규의 얼굴은 시종 굳어져 있었다.(심수봉, 신재순의 진술) 대통령이 노래나 한 곡 들어볼까 하자 심수봉이 기타를 연주하면서 ‘그 때 그 사람’을 불렀다. 앙코르가 요청됐고, 이에 심수봉은 ‘두만강’을 부른 후 차지철을 지명했다. 차지철은 ‘도라지’를 부른 후 신재순을 지명했다. 7시 35분이었다. 연회장에서 심부름을 하던 남효주가 들어와 “부장님, 전화입니다” 하고 암호를 전했다. 김재규가 박선호가 있는 부속실로 들어가니 박선호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재규: 준비되었는가?

박선호: 완료됐습니다.

7시 38분, 김재규가 연회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신재순이 심수봉의 기타반주로 ‘사랑해’를 부르고 있었고, 대통령은 간간히 흥얼거리며 신재순의 가락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바로 이 때 김재규가 권총을 하의 주머니에 넣고 들어온 것이다. 앉자마자 김계원을 향해 “각하를 똑바로 모시시오”하고 툭 친 후, 차지철을 쏘아보았다.“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새끼를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하면서 차지철의 팔뚝을 향해 권총을 쏘았다. 이에 놀란 대통령은 “무엇들 하는 짓이야” 하고 나무랐지만, 김재규는 그런 대통령의 가슴을 향해 권총을 쏘아 버렸다. 7시 40분이었다. 식당에 들어간 지 1시간 35분 만에 대통령이 총을 맞은 것이다.  

“각하를 똑바로 모시시오” 하고 김계원을 툭 친 이유에 대해 1979년 11월 17일 제1차 심문조서에서 김재규는 기선을 잡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고 진술했지만 이는 김계원에게 던지는 신호였던 것으로 보인다.“아까 말했던 대로 시행할 것이니 밖으로 나가 밖의 일을 도우라.”김재규가 몸을 툭 치는 것을 신호로 김계원은 곧바로 문 밖 입구로 나와 사태가 진전되는 것을 감시하고 있었다. 박대통령은 곧바로 쓰러져 얼굴을 식탁에 묻었고, 차지철은 대통령을 팽개친 채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차지철이 총을 팔뚝에 맞은 것은 김재규의 옆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고, 박정희가 가슴에 맞은 것은 마주보고 앉았기 때문이었다.

김재규는 아직 살아있는 두 사람에게 다시 총을 쏘려 했으나 장전이 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뛰어나가자 마루에는 박선호가 권총을 들고 지켜 서 있었다. 김재규는 그 총을 빼앗아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바로 이때 차지철이 문 쪽으로 문갑을 밀고 나왔다. 김재규는 이런 차지철의 복부를 향해 한발을 더 쏘았고, 이어서 식탁에 머리를 기댄 채 심수봉과 신재순의 부축을 받고 있던 대통령의 등 뒤로 가서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대고 한발 더 쏘아 확인사살을 했다. 이 장면을 심수봉은 이렇게 진술했다.

가슴에 총을 맞은 각하를 보니 호흡이 이상하여 ‘각하 괜찮으십니까’하고 묻자 ‘응, 괜찮아’하셨지만 등에서는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상체를 부축하고 있었고, 신재순양은 손으로 피를 막고 있었다. 내가 무릎 가까이 각하를 부축하고 있을 때 김재규 부장이 각하 뒤로 와서 총을 더 쏘고 나갔다. 공포에 질린 두 사람은 무서워서 마루로 나와 관리인 사무실로 들어가 숨어있었다. 그 동안 밖에서는 총소리가 5-6발정도 더 났다.

<차지철이 쓰러져있다>  

“나는 괜찮다”를 끝으로 대통령은 63년의 복잡한 세상을 마감했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설치던 차지철은 대통령을 경호할 생각을 버리고 화장실로 도망갔고, 그런 차지철을 대통령은 편애했다. 그리고 박대통령의 덕을 과분하게 입었던 김재규는 자기를 믿고 아무런 경계 없이 피곤한 몸을 쉬러 온 9년 연상의 대통령을 등 뒤에서 쏜 패륜아가 되었다. 만찬장 밖에 대기하고 있던 박선호는 김재규의 총성을 신호로 만찬장 옆 대기실에 있던 경호처장 정인형과 부처장 안재송에게 권총 1발씩을 쏘았다. 현관 옆에 있던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은 각기 권총으로 주방에 있던 대통령 운전기사 김용태, 경호원 김용섭, 박상범 그리고 식당 종업원 이정오, 식당운전기사 김용남을 향해 도합 15발을 쏘았다. 중정요원 김태원은 M-16을 가지고 이미 쓰러져 있는 정인형에게 2발, 안재송에게 1발, 김용섭에게 1발, 차지철에게 2발을 발사하여 확인사살을 했다. 궁정동 좁은 담 안에서 40여발(명중된 것만 27발)에 이르는 총성이 울렸고, 대통령과 그의 경호원 9명이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그리고 후에 박상범만이 천운으로 다시 깨어나 살아남았다.

<주방에서 경호관 김용섭씨와 운전기사 김용태씨가 쓰러져 있다>

만찬장 밖으로 나온 김재규는 마루에 서있는 김계원과 아주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김재규: 나는 한다면 합니다. 이젠 다 끝났습니다. 보안을 유지하십시오.

김계원: 뭐라고 하지?

김재규:  각하께서 과로로 졸도했다고 하던지 적당히 하십시오.

김계원: 하여튼 알았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한 것은 김계원에게 확고한 결의를 보여주고 믿음을 주기 위해 했던 의미 있는 말인 것으로 생각된다. 김계원으로부터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김재규는 현장수습을 김계원에 맡기고 맨발로 정승화에게 달려갔다. 불과 50m의 거리를 달려가는 데는 불과 몇 초 정도만 걸렸을 것이다. 그의 와이셔츠 자락은 밖으로 나와 있었고, 와이셔츠의 허리와 목 부분 여기저기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그리고 허리에 찔러진 총에서는 화약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물, 물” 김재규는 본관 1층의 식당으로 뛰어들자마자 비서에게 이렇게 외쳤다. 비서가 컵과 물주전자를 가져오자 주전자를 낚아채 벌컥 벌컥 마시고는 “차량 차량, 손님 나오라고 해” 이렇게 외쳤다. 이 순간을 정승화는 1979년 12월 15일에 이렇게 묘사했다.

19시 45분경 김정섭과 본인은 총소리를 듣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김재규의 비서가 급히 식당 안으로 들어와 그 옆에 있는 주방에서 물을 가지고 나가서 김정섭도 따라 나가므로 본인도 궁금하여 따라 나가니 식당 문 앞에 있는 복도에 김재규가 숨을 헐떡이며 물을 마시고 당황한 표정으로 본인을 보고 본인의 팔을 붙들고 ‘총장 큰일 났습니다.’ 라고 3회 가량 되풀이 하므로 본인은 무슨 일입니까? 라고 수차 물었으나 김재규는 거기에는 답변치 않고 빨리 차에 타고 차안에서 이야기 합시다  라고 하여 본인은 만찬회 장소에서 무슨 긴박한 사태가 발생되었다고 생각하고 우선 김재규가 하자는 대로 따르기로 하고 19시 50분경 현관 앞에 대기한 김재규 차에 타자 우측에 있는 김정섭에게 김재규가 차에 타라고 하여 김정섭이가 좌측으로 탐으로서 우측에는 김재규 중간에 본인이, 앞 운전석 옆에는 김재규의 비서인 박흥주 대령이 타고 차가 출발하였다.  

김재규가 궁정동을 떠난 후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은 김재규가 시킨 대로 뒤처리를 했다. 7시 55분, 김계원은 대통령 시체를 보안사 영내에 있는 국군서울지구병원에 옮기고, 당직군의관에게 대통령 용태를 물어‘사망’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시신은 중정 요원들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대통령 사망을 확인한 김계원은 곧바로 청와대에 돌아와 비상소집을 했다. 최규하 국무총리, 장관들, 경호실이 그 대상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입니다. 각하께서 유고이십니다. 속히 청와대로 와 주십시오”   

시바스리갈! 당시 언론들은 박대통령이 시바스리갈을 마셨다고 대서특필했다. 시바스리갈은  미국인들의 소주, 가장 싼 술에 속한다. 1국의 대통령이 이 정도의 술을 마신다 해서 흉이 될 건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박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담당 군의관이었던 정규형 대위는 시신이 대통령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합수부에 증언했다.“당시 박대통령이 차고 있던 시계는 평범한 제품이었고, 넥타이핀은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헤어져 있어 대통령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김정렴 비서실장의 증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근무할 때 양주를 마신 적이 한 번도 없고 막걸리를 즐겨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을 검증한 장경삼 검찰관(판사를 지내고 현재 변호사)는 서거 당시 대통령이 마신 술이 시바스리갈이 아니었고 국산양주였는데 이를 주전자에 담아 마셨다고 한다. 아마도 현장접근이 금지됐던 기자들이 현장 사진에 나타난 술병의 모양만 보고 추측성 기사를 쓴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는 국산품 애용시대였고, 양주와 양담배는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배척됐던 시기였으며, 외화에 대한 통제가 각별했던 시대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양주를 마셨다는 것은 납득가지 않는 대목이다. 대통령 전속이발사는 대통령이 입은 러닝셔츠에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나 있었고 물을 아끼려고 화장실 물통에 벽돌을 넣었다고 밝혔다. 그가 가장 아끼던 사람들은 공돌이와 공순이였다. 그는 이들에게 야간학교를 다니도록 해달라며 고용주들에게 절을 하는 자세로 편지를 썼다. 서거한 다음, 그가 단돈 몇 푼이라도 감추어 놓았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3. 대통령 비서실

김계원 비서실장의 비상소집에 따라 고관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후 8시 25분부터 8시 40분 사이에 최광수, 고건, 유혁인 등이 나왔고, 이어서 다른 수석비서관들이 줄을 이었다. 8시40분, 최규하 국무총리가 나오자 김계원은 다른 사람들을 부속실로 내보낸 후, 총리에게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만찬장에서 김재규와 차지철이 싸우다가 김재규가 잘못 쏜 총에 각하가 맞아 서거하셨습니다.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

최규하를 물렁하게 보고 하는 말이었다. 행여 최규하의 입에서 조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봐 미리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며 입막음을 한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최규하 총리는 박대통령과 차지철이 함께 김재규의 총에 사살됐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국무총리는 대통령 유고시에 자동적으로 권한을 대행한다. 그런데도 최규하는 김계원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캐묻지 않았고, 조사를 시키지도 않았다. 대통령과 경호실장이 중정부장의 총에 사살됐고, 이를 김계원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김계원과 김재규가 한 통이 되어 새 세상을 열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를 직감했기에 최규하는 입을 닫은 것이다. 같은 시각인 오후 8시 40분경, 경호실 차장 이재전 중장이 비서실장실로 달려 왔다. 김계원이 달려온 이재전 차장에게 차디찬 음성으로 말했다.

각하가 유고다. 지구병원에 모셔놓고 오는 길이다. 차지철 실장은 부대를 지휘할 처지가 아니다. 경호실장 직무를 대행하라.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마라. 경거망동 하지 마라. 경호실 병력 출동을 금한다.

대통령과 차지철이 사고를 당했다면 이재전 경호실차장은 당연히 청와대 경호비상 제1호인 “호랑이1호”를 발령하여 경호실 병력을 사고현장으로 출동시켜 대통령과 차지철의 신원을 확보해야 했다. 이런 입장에 있었던 그가 김계원으로부터 “경거망동하지 말고 병력출동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이는 “나도 관련돼 있으니 너는 더 이상 알려하지 말고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명령이었다. 이재전은 8시 40분, 제22특경대에게 안가접근을 금지시켰고, 이에 따라 안가로 출동하던 태양요원들이 즉시 발길을 돌려 되돌아 왔다. 여기까지의 행위로 인해 김계원은 10월 29일 구속됐고, 12월 20일 계엄보통 군법회의에서 김재규 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날 재판장은 사형선고를 일곱 번이나 내렸다. 죄명은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 중요임무 종사 미수죄였다. 그러나 며칠 뒤 김계원의 사형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82년 5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경호실 병력의 출동을 금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경호실 병력이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여 진실을 밝혀내는 것을 방해하고, 범인을 체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계엄을 선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쿠데타 또는 혁명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초비상조치인 것이다. 당시 청와대에서 이런 김계원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김계원이 쿠데타의 중심축에 서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재전 경호실차장에게 “경호실 병력 출동금지”를 지시한 것은 김계원만 취한 조치가 아니었다. 8시 5분경에 육군 B-2 벙커에 도착한 정승화 역시 거의 같은 시각에 이재전에게 전화를 걸어 경호병력 출동을 금지시킨 것이다. 김계원과 정승화는 서로 공모한 사이가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공모라도 한 것처럼 똑 같은 사람에게 똑 같은 지시를 내렸다. 이것이 육군참모총장 정도를 지낸 사람들의 상황조치 수준이요 일종의 상황처리 공식인 것이다. 정승화(1926년생)는 현역 참모총장이었고, 김계원(1923년생)은 그로부터 10년 전인 1969년경에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똑같은 사람에게 취한 조치가 똑같다면 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을까? 김재규가 있는 것이다.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오후 9시5분, 구자춘 내부, 김치열 법무가 비서실 직원으로부터 ‘각하가 변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달려와 김계원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다그쳐 물었지만 김계원은 “간신배를 제거한다는 것이 각하가 다치셨다”라고만 말했다. 법무장관이 “차지철이 그 새끼 무엇을 했어”하고 흥분하자 김계원은 “죽었을지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여기까지 김계원이 한 발언들을 통해 그 자리에 있었던 국무총리, 장관들 그리고 청와대 수석들은 박대통령과 차지철이 동시에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누군가가 대통령과 차지철을 쏘았고, 그 사실을 김계원이 알고 있다는 것까지 안 것이다.

대통령과 차지철을 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직감적으로 김재규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차지철은 이들 누구나 싫어했고, 김계원도 싫어했으며, 특히 김재규와 차지철과는 앙숙관계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김계원이 사고에 관련되지 않았다면 김계원은 누구보다 더 큰 음성으로 흥분하며 진상을 밝히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계원은 사고의 공론화를 막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던지는 어두운 그림자에서 나오는 무성의 언어는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했을 것이다.

대통령과 차지철이 동시에 살해됐다는 사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다. 각료들이라면 김계원에게 자초지종을 캐물었어야 했다. 그런데 매우 기이하게도 이들 중에 이를 채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 각료들이 침묵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김계원이 살해사건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김계원은 김재규가 요청한 바와 같이 비밀을 지키며, 대통령 시신을 수도병원에 옮겨 사망했음을 확인한 후 비서실장실로 돌아와 계엄선포를 위한 비상국무회의를 준비하고, 국무총리에게는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경호실 차장에게는 경호실 병력이 살해현장으로 출동하지 못하도록 지시하는 등 뒷일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이 정도의 뒷일은 김계원이 충분히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김재규는 대통령에게 마지막 실탄을 발사하자마자 대기 중이던 정승화에게로 달려갔을 것이다.        

             4. 차 속에서(7시 50분부터 8시 05분까지)  

7시 50분, 안가의 정문을 빠져나온 차는 남산에 있는 중정으로 가기 위해 적선동, 중앙청, 세종로를 통과했다. 차안에서 정승화가 “무슨 일입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김재규는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대통령임을 표시하면서 바른손인지로 X자를 그리면서 서거하셨다고 표시했다.

정승화: 각하께서 돌아 가셨습니까?

김재규: 보안유지를 해야 합니다. 적이 알면 큰일입니다.

정승화:  외부의 침입입니까. 내부의 일입니까?

김재규: 나도 모르겠습니다.

정승화: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겠지요?

김재규: 김일성이가 알면 큰일 납니다. 보안을 유지해야 됩니다. 빨리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 계엄을 선포하면 어떤 부대를 뺄 수 있습니까?

정승화: 계엄을 빨리 선포해야 합니다. 동원될 수 있는 부대는 20사단, 30사단, 9공수여단이 동원 될 수 있습니다.  

김재규: 앞으로 총장께서는 계엄사령관으로 이 나라의 운명을 걸머진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총장의 양어깨에 국가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잘해 주셔야겠습니다.

차가 3.1고가도로 올라서자 김재규가 당황한 어조로 “어데로 갈까. 부(정보부)? 육본?” 하고 말했다. 이에 정승화가 육본 B-2 방카로 가자고 했고, 박흥주가 여기에 찬동했다. “육본방카로 가세” 김재규가 결심을 했다. 피 묻은 와이셔츠 바람으로 차에 오른 김재규는 박흥주에게 입고 있는 양복 상의를 벗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박흥주는 늘 예비해 다니던 별도의 상의를 김재규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박흥주는 그가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김재규에게 주었다. 차내에서 정승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1979년 12월 15일 진술서에서, 정승화는 그의 마음을 털어놨다.

만찬 현장에 같이 있던 차실장이 시해하였다면 자기의 주장을 밝히기 위해서도 사고내용을 세밀히 설명하고 차실장이 하였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인간본능인데 이를 밝히지 않고 보안유지를 해야 된다, 계엄을 빨리 선포하여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출동병력은 어느 부대인가를 알고자 하고 앞으로 총장께서는 계엄사령관으로 이 나라의 운명을 걸머진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고 본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를 하는 등을 볼 때 김재규가 각하를 시해하고 우선 군부를 장악하기 위하여 본인을 이용코자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가지면서 김재규는 중정부장으로 막강한 조직과 권력이 있고 각하를 시해하는 데는 상당한 계획 하에 조직적인 행동으로 상당한 세력의 배후가 전재되어 있다고 봄으로 본인은 김재규 하는 일에 따르면서 행동을 보면서 행동을 하여야 되겠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후암동 병무청 앞을 지나가는데 김재규가 갑자기 엎드려서 무엇을 꺼내고 있더니 종이에 포장 된 조그마한 사탕 3~4개를 꺼내 본인과 김정섭에게 주며 먹으라고 하면서 자기도 한 개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사탕을 받아들고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김재규가 본인을 차로 가는 도중에 목적대로 행동시킬 계획에서 이상한 약물을 혼합한 사탕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 갑자기 무서워지므로 사탕을 먹는 척 하면서 슬그머니 밑에다 버렸다.

위의 진술은 사실로 보인다. 두뇌회전이 빠르기로 이름나 있던 정승화는 차 속에서 이미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알아차린 이유를 논리적으로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도록 진술서를 통해 설명한 것이다. 김재규가 계엄선포에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의심을  했고, 그래서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경계를 하면서도 김재규가 배후 세력을 뒤에 업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일단은 따르기로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승화는 참으로 간지러운 질문을 했다. 김재규를 범인으로 의심하지 않았다면 참모총징인 정승화는 곧바로“어느 놈입니까? 그 놈이”이렇게 물었어야 어울린다. 그런데 정승화는 아주 조심스럽게 “외부의 침입니까, 내부의 일입니까?” 이렇게 간지럽게  물었다.“배후세력을 업고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일단은 따르기로 했다”는 정승화의 마음은 박흥주의 마음과 일치했다. 박흥주의 진술(79.10.28)은 이러했다.

육군총장과 2차장보를 식당 집무실에 대기시켜 놓고, 결심한 듯 아주 강력한 태도로 경호원 살해를 지시하는 것으로 보아, 나 모르게 육군총장 등과 모든 결탁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았다. 각하를 살해하면 변란이 되고, 김재규 세상이 된다. 그가 성공했을 때, 만일 내가 가담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반역으로 몰려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고, 공을 세우면 출세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범행에 가담키로 작정했다.

박흥주가 김재규에 동조한 마음과 정승화가 김재규에 동조한 마음은 이렇게 같았을 것이다. 이것이 통상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정승화는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 위 진술의 해석부분을 전면 부인했다.“12월 26일 밤 11시 40분경, 김계원이 노재현과 정승화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순간까지 차지철이 범인이라고 의심했다”는 것이다. 과연 정승화의 이 진술이 맞는 말일까?

                         5. B-2 벙커

육군본부 B-2벙커는 국방부 청사 지하에 구축돼 있다. 8시 05분, B-2벙커 상황실에 도착한 정승화는 당직사령에게 김재규와 김정섭을 총장실로 안내하고, 스스로는 쏜살같이 상황실로 들어갔다. 그는 상황장교를 부릴 틈도 없이 그 스스로가 전화기를 들고 전광석화의 속도로 계엄선포를 위한 예비조치들을 취했다. 국방장관, 합참의장, 연합사부사령관, 각군총장, 참모차장, 정보참모, 작전참모, 본부사령, 헌병감, 그리고 수경사령관을 호출했다. 이들을 비상 호출하려면 먼저 노재현 국방장관으로부터 허락을 득해야 했다. 그러나 정승화는 계통을 무시했고, 국방장관을 무시했다.

 8시 10분경, 정승화는 수도권의 주요 부대들(4개)의 동정을 체크하는 일이었다. 체크하는 부대마다 다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핵심을 체크하기 전에 외곽부터 조심스럽게 체크한 것이다. 외곽부대들에 이상 징후가 없자 그는 드디어 차지철만이 지휘할 수 있는 핵심부대인 수경사의 사령관 전성각에 전화를 걸어 “부대 이상 없느냐, 병력은 장악하고 있느냐”하고 물었고, 이상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정승화는 곧바로  3가지 지시를 내렸다. 1)앞으로 총장의 명령만 받을 것, 2)지금 즉시 출동준비를 할 것, 3)사령관은 즉시 B-2벙커로 올 것 들이었다. 치지철이 지휘하는 수경사를 장악했던 것이다. 이는 차지철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월권적 행위였다.

부대에 ‘이상이 없다’는 것은 차지철이 쿠데타를 위해 대통령을 살해한 범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일 차지철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맨 먼저 수경사 병력이 쿠데타 주도세력이 되어 비상목표들에 출동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승화가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진술한 부분 즉 “12월 26일 밤 11시 40분경, 김계원이 노재현과 정승화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순간까지 차지철이 범인이라고 의심했다”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거짓말인 것이고, 이 말이 옳다고 판시한 판사들은 이상한 오판을 한 것이 된다. 정승화는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차 안에서 간지러운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알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8시 20분‘차지철만이 지휘할 수 있는 근위대 수경사’를 장악하기 직전에는 100% 알았을 것이다. 8시 30분, 노재현 국방장관이 벙커로 달려왔다. 그런데도 정승화는 노재현을 무시하고 오직 김재규가 요청한 계엄선포 준비 작업에만 몰두했다. 1980년 3월 7일 정승화내란방조사건 제2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노재현은 그 순간을 이렇게 진술했다.

변호인: 전화로 비상소집 연락을 받을 때 무슨 이유인지 들었습니까?

노재현: 못 들었습니다. 총장의 음성이 보통 때와는 달리 상당히 당황한 음성이었습니다. “장관님 빨리 나오십시오”해서 “어디요”했더니 “육본 벙커로 나오셔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변호인: 총장실로는 정총장이 안내했습니까?

노재현: 정총장이 안내해서 바로 옆방으로 갔는데 총장실이 아니어서 다시 나와 총장실로 갔습니다.(주: 총장실이 아닌 옆방으로 안내한 것은 정승화가 노재현과 김재규를 한방에 넣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마도 김재규의 말실수가 염려됐을 것이다.)  

변호인: 총장실에 김정섭이 있었습니까?

노재현: 김정섭과 김재규가 앉아 있었습니다.

변호인: 그때 각하가 청와대 만찬석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은 없었습니까?

노재현: 그냥 “돌아가셨다”고만 했습니다.

변호인: “어떻게 돌아가셨나”고 자세히 물은 적은 있습니까?

노재현: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어떻게 된거요?” 물었더니 정승화 총장은 아무 말이 없었고, 옆에 있던 김재규가 나서서 “차차 알게 된다, 우선 보안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위성 측면에서 보면 정승화는 바로 이때 국방장관에게, 김재규로부터 전화를 받고 궁정동에 가서 식사를 했던 사실, 김재규와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있었던 행동들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승화는 그런 사실을 숨겼다.

위 사실을 상급자인 국방장관에게 보고하는 것은, 군에서 일생을 보낸 육군총장으로서는 생리와 같은 의무였다. 생리를 자제하면서까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으로 속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위직에 있을수록 그래서 행동은 투명해야 하며, 투명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억울하더라도 의심과 의혹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8시 40분, 합참의장, 연합사 부사령관, 공군총장, 해군총장 등이 도착하자 김재규가 나섰다. “대통령이 유고이니 이 사실을 3일간 비밀에 부치고 즉각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정승화는 이들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상황처리에만 몰두했다. 군 수뇌들을 호출한 것은 육군총장이고, 수뇌들에게 “비밀을 지키고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는 지시를 한 사람은 김재규인 것이다. 이때의 정승화의 얼굴 표정은 어떠했을까? 어둡고 무거워 보였을 것이다.

정승화와 김재규의 모습들을 지켜본 군 수뇌들은 무엇을 직감했을까? “아니, 웬 중앙정보부장이?” 이런 의문과 함께 아마도 정승화와 김재규가 콤비가 되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9시경, 김재규는 박흥주를 시켜 김계원에게 전화를 대라고 하였다. 박흥주가 여러 가지 통로로 전화연결을 시도하여 김계원과 통화를 했다.

김계원: 큰 영애가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고 묻기에 다른데 계신다고 얼버무렸는데 또 물으면 뭐라고 하지?

김재규: 잘했오

평소와는 다른 고압적인 말투였다.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하는 이 반말은 청와대에서 전화를 받는 김계원에게나 총장실에 있는 군수뇌들에게나 다 같이 강한 메시지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얼마 후에 김재규는 정승화를 시켜 김계원과 다시 통화를 했다.

김재규: 여기 국방장관과 각군 총장이 다 모여 있으니 이리로 오시오.

김계원: 총리께서도 여기 계시니 이리로 오시오.

김재규: 안됩니다. 국무총리를 모시고 실장께서 이리로 오시오.

김계원이 잠깐 멈칫하는 것 같더니 “알겠오 내가 그곳으로 가겠오” 하고 결심을 했다. 김재규의 승리였다. 김계원이 “김재규가 국방부로 오라 합니다” 하고 말하자 최규하 총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말 없는 총리에게 김계원이 또 이렇게 말했다. “김재규가 청와대 경호실이 무서워 못 오는 것 같습니다. 빨리 계엄부터 선포하여 치안을 유지해야 하니 그리로 가시지요” 이 말에 총리와 장관들이 따라 나섰다.“김재규가 청와대 경호실이 무서워 못 오는 것 같습니다.”

이 말 속에는 무슨 의미가 들어 있는가?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 범인’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살해했기에 청와대 경호실이 무섭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점에서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김재규가 대통령과 차지철을 모두 살해했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을 것이다.    

이때 정승화는 1군 및 3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진돗개2를 발령했다. 20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육사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9공수여단장에게는 육군본부로 출동하라 명령했다. 이렇게 해놓고 그는 상황실을 나와 김재규가 있는 총장실로 가서 그가 취한 조치들을 설명해주고 계엄군이 점령해야 할 특별한 목표라도 따로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계엄군이 점령해야 할 목표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정섭이 방송국, 변전소, 상수도, 은행 등이라고 불러주자 이를 메모했다. 김재규는 군통수권 선상에 있는 사람이 아니며 따라서 정승화의 직속상관이 아니다. 정승화의 직속상관은 노재현 장관이며 노재현은 그때 정승화 옆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국방장관은 무시한 채 김재규의 지시에 따라 병력을 동원해 놓고, 다른 방으로 건너가 그가 취한 조치내용을 보고하면서 계엄군 배치에 대한 지시를 내려달라 했다. 이는 정승화가 이미 국방장관을 돌려놓고 김재규를 군통수권자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9시 10분, 정승화의 호출을 받은 수경사 사령관 전성각 소장이 벙커로 들어왔다. 정승화가 호출한지 한 시간이 경과한 시각이었다. 정승화는 전성각 사령관에게 청와대 외곽을 포위하라고 지시했다. 이어서 청와대 경호실차장 이재전 중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경사 병력이 청와대 외곽을 포위할 것이니, 일체의 경호실 병력을 동결하라, 앞으로는 내 지시만 따르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으로 청와대 밖인 궁정동 안가의 총성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출동했던 경호실 요원들이 철수하고 말았다.

궁정동 안가는 청와대 울타리 밖에 있었다. 이 포위명령은 청와대 내의 경호실 병력이 청와대 외부에 위치한 궁정동 안가 현장으로 접근하는 것을 2중으로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재전 경호실차장에게‘경호병력 동결’을 지시할 때의 정승화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혹시나 이재전이 ‘경호병력 동결’ 지시에 불복할 수도 있겠다 하는 의심을 했을 것이다. 이런 그에게 ‘수경사 병력이 청와대 외곽을 포위할 것’이라고 알려준 것은‘경호병력이 이미 포위되어 있으니 다른 마음을 먹지 말라’는 묵시적 압력이었을 것이다. 안전조치를 2중으로 취한 것이다. 이에 이재전은 총장이 이미 수경사 병력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정승화가 실세라는 뜻이다.

정승화는 청와대에 있는 김계원과 아주 똑같은 조치를 취했다. 첫째는 경호실 병력이 범죄 현장으로 가는 것을 막아 진실규명의 길을 차단한 것이고, 둘째는 범인 김재규를 은닉시킨 것이다. 만일 정승화가 청와대 경호병력을 동결시키지 않았다면? 시해현장을 향해 출동했던 경호실 병력이 현장으로 갔을 것이고, 거기에 남아 있던 중정(중앙정보부) 총잡이들과 한판 전투를 벌였을 것이다. 중정 총잡이들이 사살됐거나 또는 체포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김재규와 정승화의 행적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김재규-김계원-정승화가 번개 같은 속도로 체포됐을 것이다. 수경사는 총장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차지철만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경호실 병력 역시 차지철만이 지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정승화는 수경사령관과 경호실 차장 모두에게 총장의 지시 이외에는 그 어떤 지시도 받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서슬 퍼런 차지철이 살아있다면 언감 생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월권행위였던 것이다. 이때의 정승화 마음속엔 차지철이 이미 죽고 없었던 것이다.

차지철과 대통령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대통령이 살해됐다면 차지철도 살해됐을 것이라고 믿는 게 상식이다. 그렇다면 맨 먼저 의심이 가는 대상이 대통령과 함께 식사를 했던 김재규일 것이다. 이런 의심이 수경사령관과 경호실차장으로부터‘부대 이상 없음’이라는 말로 확인됐고, 이를 확인한 정승화는 차지철이 지휘하는 두 사람, 즉 경호실차장과 수경사령관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은 김재규를 보호하는 명령이었다. 정승화는 아마도 김재규와 “한 배”를 탔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의리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김재규를 살려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면 정승화가 감히 그렇게 빨리 경호실 병력을 동결하는 조치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1979년 12월 22일자 전성각의 진술조서에는 정승화 총장의 월권행위가 잘 드러나 있다.

정승화의 명령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수경사 상황실에 알아보니 안가 쪽에서 총성이 났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상하다 직감하면서 벙커로 갔다. 정총장의 모습이 초조하고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수경사의 지휘는 경호실장이 한다. 갑자기 총장이 지휘하는 것이 이상했다.  

병력출동에 대한 상황처리에서 정승화는 최초에 20사단과 9공수여단에게는 출동명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하기를 그렇게 하면 사회가 소란스러워지게 되고 사회가 소란스러우면 김재규에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출동 명령을 취소시켰다.

이 역시 정승화가 김재규 편에 서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승화가 김재규와 한 편이 될 마음이 없었다면 그는 가장 먼저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보고를 했어야 했다.“장관님, 금방 각하께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만나 뵙고 보고 올리겠습니다. 우선 제 생각으로는 1.3군에 진돗개2를 발령하고 군 핵심 수뇌들을 소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어려운 일, 복잡한 일, 민감한 일을 할 때에는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여 공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고위직들의 생리다.

그런데 정승화는 모두를 따돌리고 혼자서 비밀스럽게 상황을 처리했다. 국방장관이 도착했을 때 그동안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소상히 이야기 하고 처분을 기다렸어야 했다. 만일 이렇게 했다면 국방장관은 즉시 보안사령관을 불러 김재규-김계원-정승화를 모두 데려다 조사하라고 지시했을지 모른다. 아마도 정승화는 ‘비상국무회의’가 끝날 때까지만 잘 넘기면 막강한 계엄사령관이 될 텐데 여기에서 체포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계엄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맞이하여 군 병력의 동원이 없으면 공공의 질서가 유지될 수 없을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이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선포하는 것이다. 정승화는 육해공군 3개 군 총장들 중에서 육군참모총장일 뿐이었다.

대통령 유고에 대한 상황처리의 주체는 국방장관과 최규하 총리였다. 국방장관이 핵심수뇌들 및 참모들과 함께 의논하고 의논한 결과를 비상국무회의에 반영시킨 후에 처리했어야 할 그런 중대한 사안을 정승화는 비상국무회의도 열리기 전에 그리고 국방장관과 총리를 배제한 채 불법적인 월권을 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아마도 정승화는 김재규가 차에서 그를 치켜 올릴 때 이미 계엄사령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는 김재규가 차에서 시킨 대로 비밀을 지키면서 묵묵히 그리고 재빠른 속도로 계엄을 선포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이에 더해 정승화는 벙커에 오자마자 경호실 병력을 동결시키는 명령을 내려 결과적으로 김재규가 저지른 사고현장을 보호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규명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모두가 고위급 장군들에게는 합치된 상식이요 상황처리 공식에 속했던 것이다. 마치 농구나 축구선수들이 일일이 말로 하지 않고 순간순간의 눈치로 팀워크를 이루어 내듯이! 김재규, 김계원, 정승화 이 세 사람이 일치된 행위를 보인 것은 이 세 사람이 한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재규가 추진하고 있는 유혈혁명에 공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목적이 같기에 두 사람이 취한 조치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을 주도한 법관들은 이러한 장군 세계의 상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승화가 이재전에게 경호병력을 동결하라 지시한 것이 김재규를 감싼 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6. 국방부

반면 일찍(8시 40분)부터 대통령과 차지철이 살해되었고, 그 범인이 김재규라는 사실을 인지한 최규하 총리의 행동도 상당히 수상해보였다. 밤 9시 30분경, 국방장관실에는 총리, 국방, 내무, 외무, 법무, 문공, 서종철 특보, 유혁인 정무, 김재규, 김계원, 정승화, 신현학 부총리가 있었다.

김계원이 총리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를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리: 물론이지요. 계엄 사유를 무엇으로 할까요, 유고로 할까요, 서거로 할까요?

김계원: 대통령각하 유고로 인하여 27일 00:00부로 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총리: 유고만 가지고 납득하겠습니까? 무언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무위원들도 내용을 알아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지요.

김재규: 유고는 안 됩니다. 국내치안이 좋지 않아서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총리: 국내에 데모가 난 것도 아니고, 계엄이 선포돼 있는 부산도 조용한데 그건 이유가 안 됩니다. 대통령 유고를 어떻게 국민에 안 알리겠습니까? 계속 보안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며 우선은 국무위원들도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김재규: 왜 안 됩니까? 소련은 1주일 이상이나 브레즈네프의 행적을 발표하지 않고 있었는데 2-3일 동안 왜 보안유지가 안 됩니까?

총리: 그러면 김부장이 국무회의에서 사유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김재규: 예, 하지요

법무장관: 비상계엄과 국장문제 등을 검토해야 합니다.

김재규: 지금 보안을 지켜야지 국장문제를 앞세울 수는 없습니다.

문공장관: 비상계엄의 사유를 명백히 해야 합니다.

김재규: 소련의 브레즈네프는 1주일간이나 그 행적을 보안유지 했는데 우리는 왜 며칠간 보안유지를 못합니까? 국가에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계엄선포 한다 하면 되지 사유를 자세히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 서거를 3일간만 보안에 붙이자고 그토록 강경하게 주장한 것은 유고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가 3일 후 곧바로 ‘혁명이 완료되었음’을 선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눈치 보기에 급급한 수뇌부’를 3일에 걸쳐, 자기 체제로 흡수시킨 후 곧바로 김재규 자신이 ‘반민주적인 유신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다’는 취지의 발표를 하려 했을 것이다. 10시 25분경, 김재규가 중요한 말을 하기 위해 김계원을 밖으로 불러냈다. 김재규가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김계원이 먼저 입을 열어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던졌다.

김계원: 이 사람아 어떻게 하려고 각하까지 그렇게 했어.

김재규: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시오. 사태수습이 더 급선무입니다. 보안유지를 해야 됩니다. 최단 시일 내에 계엄사령부 간판을 내리고 혁명위원회로 간판을 바꾸어 달아야 합니다.

김계원:  알겠소.

“이 사람아 어떻게 하려고 각하까지 그렇게 했어” 김계원의 이 말에는 이미  마음이 김재규로부터 떠나기 시작했다는 뜻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서 두 사람은 지하 벙커에서 국방부 청사 2층에 있는 국방장관실로 올라갔다. 장관실 회의용 탁자의 제일상석에는 국무총리가 앉았고, 왼쪽 첫 번째로 김재규, 다음 서종철 특보, 그 다음 유혁인 정무제1수석, 국무총리의 오른 편에는 김계원실장, 두 번째로 부총리, 그다음 문화공보부장관이 앉았다. 이 때 다른 국무위원들은 국방부 회의실에 들어가 있었다.

밤 11시 30분, 국방부 회의실에서 국무회의가 열렸다. 신현학 부총리를 포함한 일부 국무위원들이 반발을 했다. “대통령 사망여부 부터 확인해야겠다.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면 그 사실을 숨길 이유가 없다. 계엄을 선포하기 전에 병원부터 가봐야겠다.”국무위원들이 이렇게 반발하자 대통령 시해 사실을 숨긴 채,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던 김재규의 의도가 좌절됐다. 김계원은 국무위원들이 반발하는 것을 보면서 김재규 배후에 아무것도 없고, 예비해둔 특별한 계획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 핸들을 꺾었다. 김재규와 함께 가다가는 김재규와 함께 사형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밤 11시 40분에 발생한 김계원의 밀고는 역사의 기막힌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장관 보좌관실에서였다. 김계원은 정승화가 있는 자리에서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김재규가 시해범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박대통령 시해현장을 지켜본지 4시간만의 일이었다. 이 말을 들은 노재현은 조건반사적으로 정승화에게 김재규를 즉각 체포하라고 지시했지만 한동안 정승화는 시간을 끌며 미온적인 자세를 취했다. 1979년 12월 15일, 체포된 정승화는 이때 그가 취했던 행동을 자세히 진술했다.

23시 30분경 벙커에서 나와 국방장관실로 들어갔다. 장관 부속실에 들어가 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김계원 실장이 장관실에서 나와 조용한 방이 없냐고 하자 장관보좌관 조 장군이 자기 방이 비어 있다고 했다. 김계원 실장이 본인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김계원 실장이 먼저 들어가고 국방장관이 뒤따라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다. 김계원이 ‘각하를 시해한 자는 김재규인데 권총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서 체포해야 된다’는 말을 했다. 이때 장관이 ‘빨리 잡아야지’ 하므로 부득이 ‘체포하겠습니다’ 라고 하고 급히 벙커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여러 시간이 지났지만 김재규의 세력이 나타나지 않는데다가 국방장관과 같이 있는 장소에서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체포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일단 체포키로 결심을 했다. 벙커 내의 총장실로 돌아와 헌병감(김진기)을 불렀다. ‘중정부장을 빨리 잡아오시오’ 라고 지시하자 헌병감이 ‘신병은 어떻게 합니까?’ 라고 묻기에 총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서 하고 ‘내가 보잔다고 유인해서 방카로 오는 도중 잡아서 보안사령관에게 인도하시오’ 라고 지시했다.

그로부터 20~30분이 지난 후, 헌병감과 보안사령관이 함께 들어왔다. 이 때 본인은 김재규가 성공하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보안사령관에게 ‘신병을 인수받아 시내에 있는 안가에 수용하고 정중히 대하시오’ 라고 지시했다. 국무회의 결과가 궁금하여 국방장관 부관실에 가서 있는데 보안사령관이 간단한 보고서를 주어 보니 김재규를 연행하던 도중 그의 언행 등으로 보아 범인이 틀림없는데 조사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보호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할 수 없이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1980년 3월 7일, 정승화내란방조사건 제2차 공판에서 헌병감 김진기는 아래의 요지로  진술했다.

11시 40-50분경, 총장으로부터 체포지시를 받았다. 이유는 모르고 그냥 '잡아오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구나 생각은 했지만 각하에게 이상이 있는 줄은 몰랐다. 체포해서 보안사령관에게 인계하라고 했다. 헌병 10명에 무장을 지시했다.‘정중히 대하라’는 정승화의 지시는 난폭하게 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1996년 5월 20일, 제8회 공판에서 전두환은 이렇게 진술했다.

변호인: 피고인은 정승화 총장의 호출을 받고 벙커 안에 있는 총장실로 찾아갔지요?

전두환: 그렇습니다,

변호인: 그 곳에는 정승화 총장과 김진기 헌병감 두 사람이 있었지요?

전두환: 예, 같이 무언가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변호인: 피고인은 총장에게“노재현 장관이 김재규를 체포하라 말합니다” 라고 얘기하자 정승화는 “김재규를 보안사 안가(정동 소재)에 정중히 모셔라”는 뜻밖의 얘기를 했지요?

전두환: 예,

변호인: 보안사 정동 안가는 무장병력이 경호하고 있는 곳이 아니지요?

전두환: 아닙니다.

변호인: 정동안가는 중대한 범인을 수용하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지요?

전두환: 아닙니다. 일반가정과 똑 같습니다. 보안사 요원 1명 정도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변호인: 방첩부대장을 지낸 정승화 총장은 익히 알고 있는 곳이지요?

전두환: 잘 알고 있습니다.

변호인: 당시 정승화 총장은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범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든가요?   

전두환: 일체 말이 없었습니다.

변호인: 김재규를 체포하라는 말은 하던가요?

전두환: 없었습니다.

변호인: 수사하라는 말은 하던가요?

전두환: 안가에 모시라고 했으니까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없지요.

변호인: 범인을 보안사 안가에 데려가는 것이 일반적 수사관례입니까?

전두환: 아닙니다. 범인은 수사분실에 데려가야 합니다.

변호인: 보안사 안가는 중요인사와 비밀 회담을 하는 고급스러운 장소이며 범인을 데리고 갈 장소가 아니지요?

전두환: 전혀 아닙니다.     

김재규의 내란음모는 이렇게 끝을 마감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시각까지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안 사람은 정승화, 최규하, 노재현이다. 정승화는 김재규가 바라는 대로 군을 움직였고, 최규하는 사실을 알고도 김재규가 체포되는 순간까지 4시간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노재현은 조건반사적으로 즉각 체포할 것을 명령했다.

 더구나 최규하는 김재규가 대통령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입을 굳게 다물고 회의를 주재하다가 10월 27일 새벽 00시 25분에 김재규가 있는 국방장관실로 가서 김재규에게 중간보고까지 했다.“비상계엄은 27일 04시를 기해 선포하기로 했습니다.” 한 다리 걸치는 식으로 행동한 것이다. 이것이 최규하의 진면목이었으며, 침묵했던 다른 국무위원들 역시 떳떳한 입장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김재규는 10월 27일 새벽 00:30분에 보안사 요원에 의해 전격 체포됐다. 김재규는 정승화와 함께 8시 5분에 B-2 방카에 도착한 이후 체포될 때까지 4시간 30분간 정승화의 보호를 받으면서‘시해사실을 숨긴 상태에서 비상계엄령을 발동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국무위원들은 국방장관실에 모여 국무회의를 하자면서도 회의의 목적을 “계엄선포”를 위한 것으로 했다.

그 많은 장관들 중에 “사건의 진상부터 따지고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다. 살아있는 대통령 앞에서는 충성을 보였을 장관들일 테지만, 일단 서거하고 보니 진상을 캐기보다는 권력이 누구에게 가는가에 대한 눈치부터 본 것이다. 권력의 태양은 서서히 저문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셔터처럼 한순간에 낙하한 것이다.    

비상국무회의 결과 10월 27일 새벽 4시를 기하여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로 했고, 정승화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최규하 권한 대행은 특별담화문을 발표하여 대통령 서거사실을 공표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계엄공고 제5호에 의해 계엄사 내에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됐다.

합동수사본부(합수부)는 계엄사령부 내에 설치된 기구로 검찰, 군검찰, 중앙정보부, 경찰, 헌병, 보안사 등 모든 정보수사기관의 업무를 조정 감독하는 그야말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 기관장 회의에서 전두환은 언제나 상석에 앉아 회의를 주재했다, 전두환은 보안사령관 겸 합수부장이었다. 보안사령관으로서의 직속상관은 국방장관이었고, 합수부장으로서의 직속상관은 계엄사령관이었다.  

만일 정승화가 시해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국무회의는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으로 결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12.12도 없었을 것이다. 비상 국무회의가 열리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승화 육군 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동안, 유고의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11시 40분, 김계원은 노재현에게 권총을 내놓으면서 바로 이 권총으로 김재규가 대통령을 쏘았다고 발설했다.

이에 노재현은 “체포하라”는 지시만 내렸다. 그는 그 권총을 가지고 국무회의 석으로 달려가서 권총을 내놓으며‘김재규가 바로 이 총으로 대통령을 살해 했으며, 이 총은 살해 현장에 있던 김계원이 가져왔다. 김계원이 사정을 잘 알 것이니 자초지종을 들어 봅시다’하고 긴급제안을 했어야 했다. 김재규를 체포하라고 명령한 국방장관이라면 그 정도까지는 했어야 했다.

 대통령이 서거하였으면 국무회의는 단연 청와대에서 최규하 총리에 의해 열렸어야 했고,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김계원으로부터 전해 들어 알고 있는 최규하 국무총리는 경호실에 명령을 내려 대통령 시해의 현장부터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어야 했다. 그러나 최규하는 김재규-김계원이 유도하는 대로 국무회의를 국방부에 가서 열었고,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이에 더해 최규하는 회의도중 빠져나가 궁금해 할 김재규에게 국무회의 결과를 알려주는 등 극도의 기회주의적 행동까지 보였다.     

새로운 세상의 주역이 될 것임을 직감했을 정승화는 참으로 예리한 판단과 능숙한 솜씨로 김재규를 도왔다. 계엄선포의 필요성은 국무위원들이 결정할 사항이었다. 그러나 정승화는 계엄선포를 위해 자기보다 상위의 직책에 있는 국방장관, 합참의장, 연합사부사령관 등 군수뇌부를 호출하여 김재규가 있는 육군본부 벙커로 오라 했고, 김계원과 통화를 하고 있는 국방장관에게 국무위원들을 벙커로 부르는 게 좋겠다는 건의까지 했다. 이렇게 해놓고도 정승화는 그의 자서전 “12.12사건 정승화는 말 한다”(조갑제 정리)에서 국무회의를 청와대에서 주재하지 않고 국방부에 와서 주재한 사실에 대해 오히려 최규하를 비난했다.

정승화가 20사단과 9공수여단에 출동명령을 내린 것도 용서될 수 없는 월권이었다. 1973년 8월 17일자에 발효된 국방부훈령 43조에 의하면 각군총장의 병력출동은 국방장관의 승인사항이었다. 그런데도 정승화는 국방장관의 허락 없이 병력을 동원했던 것이다. 국무위원들이 결정하지도 않은 비상계엄을 위해 대통령권대행과 국방장관의 명령 없이 비상계엄선포에 대비한 준비를 했고, 계엄이 발동하지도 않았는데 계엄군을 동원했다. 김재규 이외에는 아무도 정승화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명령한 사람이 없다.

작전명령권 상, 자기의 수하에 있지 않은 경호실 차장에게 부당한 명령을 내려 경호실병력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동결시켰고, 그것도 모자라 작전명령권상 자기의 수하에 있지 않은 또 다른 수경사 병력을 동원하여 청와대를 포위시킴으로써 시해사건에 대한 진실을 커버하고, 시해 현장에 있는 김재규 수하들을 비호하였다. 또한 자신이 시해 현장 부근에 대기해 있었고, 김재규와 함께 같은 차를 타고 육군 B-2벙커로 왔다는 사실을 숨기고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군사전문가인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김재규와 한 배를 타고 김재규가 일으킨 쿠데타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한 일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되지 않는다.            

1979년 10월 27일,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특별담화를 발표했다.“국민 여러분! 우리는 오늘 민족중흥의 지도자인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졸지에 서거하신 데 대해 그 충격과 애통함을 가눌 길 없습니다. . . 군은 비상시국에 국가수호의 막중한 책임을 다해 북한 공산집단의 동향을 주시하며 철통같은 방위태세에 임하고 있습니다. . . 헌법 제48조 규정에 따라 본인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습니다. . .우리의 맹방인 미국정부는 즉각 협조할 것을 명백히 했습니다 . . 모두 다 같이 굳게 뭉쳐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하겠습니다.”이어서 계엄포고 제1호가 발령됐다. 모든 집회는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시위 등의 단체 활동을 금하고, 언론 및 출판은 사전검열을 받아야 하고, 통행금지시간은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로 하고, 태업을 금지하고 유언비어 날조 유포행위를 엄금하고, 대학은 휴교한다는 등의 내용들이었다. 같은 날, 계엄공고 제5호에 의해 합동수사본부(합수부)가 설치되었고, 합수부가 모든 정보 수사기관(검찰, 군검찰, 중앙정보부, 경찰, 헌병, 보안사)의 업무를 조정감독 하도록 했다.  

2009.8.29.  지만원

  0
1000
윗글 참전 유공자, 실질적인 국가유공자 예우 필요(제284회 정기국회 이인기 의원 발언 영상)
아래글 Re..김재규 진술서 全文-박정희를 쏜 이유
10.26 그 살육의 현장   운영자   2009-08-30 00:32     1874    
   Re..김재규 진술서 全文-박정희를 쏜 이유   유공자   2009-08-30 11:11     1774    

역사의 현장

게시판은 건전한 사회문화의 흐름입니다. 본 사이트와 관련없는 글, 또는 타인을 비방, 욕설은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으며
또 이곳은 젊은 학생들이 학습자료 수집을 위해 많이 찾고있음을 유념하시기 비랍니다.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252 60년대를 생각나게 하는 것 들..기억도 새로울 겁니다. 2 유공자 2008-10-19 14:24
251 차인태씨 엣세이서 비화공개 1 유공자 2009-08-30 11:05
250 전주 콩나물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와 박정희대통령 3 카이로 2009-02-27 20:27
249 박정희대통령과 김병장의 아름다운 추억 달마 2007-11-13 00:24
248 통일벼와 박정희 김현식 2005-11-15 16:12
247 <펌글>미얀마에서 만난 박정희 대통령 1 서현식 2010-04-13 05:36
246 박정희 장군과 박종세 아나운서 1 이강성 2010-05-22 14:12
245 박정희가 그리워지는 이유 1 송영인 2010-02-11 21:46
244 故 朴正熙 大統領 옛사진 1 rokmc56 2010-05-18 13:59
243 박정희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중에서 2 rokmc56 2010-04-28 11:19
242 李舜臣, 李承晩, 朴正熙 徐賢植 2010-04-14 13:41
241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인요한(John Alderman Linton)박사의 강연 2 운영자 2010-02-20 18:19
240 박정희 유신정권과 차지철 운영자 2010-04-02 02:32
239 韓國戰에 참전한 어느 美軍 老兵의 글 2 송영인 2010-03-10 15:03
238 어느 미망인 이야기 10 初心 2010-03-09 10:02
237 일본 대학생들의 박정희 예찬(禮讚) 송영인 2010-02-03 16:02
236 긍정의 생각은 기적을 낳고.. 이강성 2010-01-31 14:37
235 [필독]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구국횃불을 !!! 이강성 2010-01-24 22:21
234 세계가 평가하는 혁명가 박정희 徐賢植 2009-12-28 01:22
233 국보 1호 부터 100호 까지 감상하기 운영자 2009-12-17 19:06
232 이토 히로부미를 보는 한ㆍ일의 시각 운영자 2009-11-27 17:31
231 한국의 고대사를 확인 하기 운영자 2009-11-13 22:01
230 5000년 歷史를 움직인 10人의 大韓國人 2 유공자 2009-11-01 20:45
229 포항제철 박태준과 고 박정희 대통령 2 유공자 2009-10-23 21:29
228 故 朴正熙大統領의 人間的인 면모 유공자 2009-10-23 21:00
227 박정희가 싫어서 떠났던 그녀, 박정희를 뛰어넘다 4 소양강 2009-10-22 11:05
226 참전 유공자, 실질적인 국가유공자 예우 필요(제284회 정기국회 이인기 의원 발언 영상) 13 서현식 2009-09-16 23:09
225 10.26 그 살육의 현장 운영자 2009-08-30 00:32
224    Re..김재규 진술서 全文-박정희를 쏜 이유 유공자 2009-08-30 11:11
223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3 서현식 2009-08-23 17:12
222 ‘간도반환 소송가능시한 3주밖에 안남아“ 4 송영인 2009-08-20 20:44
221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아시나요? 1 유공자 2009-08-13 18:09
220 쓰러진 나라를 일으킨 소아마비 대통령 1 송영인 2009-08-14 20:07
219 朴大統領의 美陸士 방문 일화 1 송영인 2009-08-14 19:20
218 일본의 컬럼중에서 송영인 2009-08-01 18:45
12345678910,,,17

mailbox_red.gif

vietnamwar@naver.com

Copyright (c) 2002 www.vietnamwar.co.kr All rights reserved.
 
Contact vietnamwar@naver.com for more information .

cellularphone03.gif

010-3720-8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