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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경석
작성일 2007/06/08 (금) 15:34
ㆍ조회: 7267   
참전용사 외면하는 대한민국

호주는 우리 참전군인들까지 대우하고 있다

 • 부끄러운 출국 
호주는 매력있는 나라다.대자연이 살아있고 광대한 국토는 좁은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동경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사회보장제도가 완비되어 있고 무궁무진한 자원은 더욱 호주를 부럽게 만든다.

1770년 영국선장 쿡이 영국령 임을 선언한 후 1778년 죄수를 포함한 제1진이 이주하면서 이민이 본격화되었다.1901년 영연방 자치령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수립 1931년 웨스트민스터 조약에 따라 사실상의 독립국이 되었다.

주민 대다수는 유럽계이지만 근래 아시아계 이주민이 급증하면서 1990년 6월 난민에게 자동적으로 인정되던 영주권을 없애면서 이민 범위를 축소하였으나 이미 우리나라사람은 상당수 그 이전에 자리잡았다.

한국인의 이민은 베트남전쟁의 종말로 참전군인 또는 군복무를 마치고 현지취업을 한 기술자 및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시작되었다.

2007년 현재 우리의 교민수는 무려 10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대단한 숫자라 하겠다.

교민사회의 주축은 주로 베트남전쟁에서 유입된 난민형식의 참전군인들로부터 형성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들의 활약이 활발하다.

한국전쟁 참전군인들도 있지만 그들은 이미 7,80대의 고령으로 거의 모두 호주정부가 주는 연금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반면 베트남 전 참전군인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생활전선에서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 한 전우가 이윤화 호주 베트남전 전우회 회장이다. 단단한 기업체도 가지고 있어 조직을 운영할 만한 재력도 있다.그를 중심으로 조국애와 전우애를 이어가고 있는 참전 전우만 해도 수백명에 달한다.

바로 이윤화 회장의 전화를 받고 호주행을 결정하기 까지에는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 첫째, 내 창작계획이 꽉 차 있었고 두 번째로 미국 버지니아 주의 공대 참살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고의도 아닌 훈련 중 이동하는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의 사고사는 온통 한국을 뒤흔들면서 반미감정의 고조로 이어졌다.이사고는 책임의 일단이 사망한 여중생에게도 있었다.이동하는 장갑차가 다가오면 미리 도로 옆 도랑으로 대피했어야 했다.이런 사고가 반미감정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미국인이 한국인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그런 형국에 교포 공대생이 저지른 만행은 여중생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미국의 영주권자라고 하지만 분명 한국인이 아닌가.세계인이 한국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미국과는 철저한 혈맹인 호주에 이른 바 한국의 전쟁영웅들이 주요 행사장에 나타나면, 그들이 보는 한국인이 군복 정장차림으로 행사장에서 활보하면, 자랑스러운 무공훈장을 달고 행진하면,이런 저런 생각으로 망설였지만 나의 마음속 유일의 위대한 리더 채명신 장군이 함께 갈 것을 권유하기에 출국을 결심했다.그러나 부끄러운 출국이엇다.

 • 호주의 ANZAC DAY행사 

호주의 ANZAC DAY는 엄격히 말해서 4월25일 하루지만 그 전 1주일간을 ANZAC DAY주간이라고 하여 전국민이 그 행사에 관심을 쏟는다.

우리나라 국군의 날과 현충일을 한데 묶은 성격이라면 비슷한 표현이 되겠다.

ANZAC은 곧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의 약자이다.

92년전인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4월25일 새벽 4시에 호주군과 뉴질렌드군이 연합하여 터키의 갈리폴리(Gallipoli)반도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여 ANZAC DAY를 설정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호주는 연 연방가입 15년밖에 안되는 신생 국가였다.

호주군은 연합군의 흑해 진입을 돕기 위해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오또만 제국(현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점령하는 임무를 띠고 Gallipoli 반도에 상륙했다. 그러나 터키군의 완강한 저항과 일부 작전의 실패로 호주군은 이 작전에서 8천여명의 희생을 내며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Gallipoli 작전은 오또만 제국군의 격파와 콘스탄티노플의 장악이라는 군사목적 달성이 실패한 것이었기에 종전 후 과거서 규명의 논란이 있을 법했다. 그러나 호주의 지도자와 국민들은 그 8천여 장병의 죽음이 호주와 뉴질랜드 두 나라가 운명적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했고 호주의 국가 위상을 높여 오늘의 선진 호주국을 있게 만든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하여 이 날을 기념일로 정하고 회상하는 전통을 세웠다.

호주국민들은 어린 초등학교 학생으로부터 할아버지 세대에 이르기까지 Gallipoli반도를 상륙했던 젊은 장병들의 고통과 희생을 92년이 지난 오늘까지 회상하면서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념기간에는 호주국민들은 말할 것도 호주에 이민해 온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함께 참여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여러나라 가운데 대한민국은 동맹군으로 싸웠다는 명분이 있기에 한인 이주민들은 당당히 행사에 참여해 왔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동맹군 관계이기에 더욱 이 행사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호주군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유엔의 결의에 따라 보병 2개 대대를 비롯하여 해군의 항공모함 1첟, 구축함 4척,프리깃함 4척과 공군의 1개 전투 비행대대와 1수송기 편대를 파견하여 우리 국군과 나란히 싸웠다.

한국전쟁 기간 중 339명의 호주군 장병이 전사했고 1,216명이 부상하면서 우리와의 혈맹관계를 맺었다.또 한 베트남전쟁에서도 우리 한국군은 호주군과 함께 하며 혈맹을 다졌다.

 • 채명신 장군과 함께

채명신 장군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두 전역에서 위대한 전공을 세운 한국군 최고 영웅이다.한국전쟁 당시 적 후방에 침투, 유격전을 전개하여 신화를 창조한 백골병단을 지휘했던 전공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고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이룩한 공적은 세계 군사평론가들조차 연속적인 기적의 창출이라고 경탄하고 있다.


▲ 우로부터 박희모장군, 필자 박경석 장군, 한광덕 장군,신원배 장군.

중대 전술기지 개념의 창안과 야간침투작전의 성공적 지휘는 베트남전 참전 다른 나라 군대에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성공사례였다.

또한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라는 채명신 장군의 훈령은 전쟁중에도 휴머니스틱 지휘로 세계인을 감동시킨 바 있었다.따라서 채명신 장군은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일한 한국군 장군이었다.그런 연유로 호주의 베트남 참전전우들은 ANZAC DAY 행사에 그를 초청하여 호주국민들에게 당당함을 보여 주도록 몇 년전부터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채명신 장군의 일정이 그 행사에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러던 차 작년에 필자와 함께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으나 출발 며칠을 앞두고 채명신 장군이 복막염으로 연세대 병원에 입원 수술하게 되면서 호주행이 무산되었다.

금년에는 초청범위를 넓혀 채명신 장군과 필자와 함께 박희모(백마사단 보병대대장 당시 중령,(예)중장),한광덕(맹호사단 두코전투 관측장교 당시 소위,(예)소장),신원배(청룡여단 짜빈동 전투당시 소위(예)소장)등이 참가하게 되었다.

특히 한광덕 장군은 당시 두코전투 관측장교로서 월맹군격멸의 포병화력 유도로 영웅적 전공을 세웠고 해병의 신원배 장군은 짜빈동 전투에서 수십 배의 적을 격멸시키는 혈전에서 최고 수훈을 거둔 영웅이다.

이 외에 한국전쟁 기간 중 속초 HID지구대장으로 용명을 떨치며 인민군 장군을 생포한 바 있는 김동석 예비역 대령과 주월사의 최성영,맹호의 홍진흠,맹호의 김선주 세 전우도 참가하게 되었다.

4월20일 저녁에 인천 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편으로 출국한 일행은 여객기 안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그러나 버지니아 교포 학생의 학살사건 때문에 즐거운 마음이 아니었다.

출발 전 한광덕 장군과 나는 컴퓨터를 통해 이 무거운 마음을 주고 받으며 호주 국민앞에 나타나야 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둘 사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참가를 위해 가기는 가되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시드니 공항에 내리자고 하여 한광덕 장군이 만든 검은 리본을 두 사람만이 달고 시드니 공항에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복장이 검은 복장이어서 남의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와 나는 마음만이라도 겸허해지자고 눈빛을 교환하녀 입국장에 들어섰다.

 • 참전 전우들의 환영 물결

잠을 설친 탓인지 눈이 맑은 것 같지는 않았다.

4월21일 아침이었다. 시계를 보니 7시 40분이었다.푸른 하늘과 밝고 깨끗한 햇살,가슴에 스며 오는 공기는 정말 달콤했다. 이 기분이야 말로 서울에서 느끼지 못하는 공해 없는 자연 그대로였다.침침했던 눈이 금세 놀라 맑게 빛났다.시드니 국제공항은 기대보다 웅장하지도 않았고 이국 수속도 몹시 더디었다. 인천 국제공항과 비교되는 곳이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예상보다 오래 걸린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밖에 나와 보니 놀라울 정도로 많은 참전 전우들이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으로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것이었다.

낯선 땅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우들과 함께 한 행사장을 방불케 하였다.

대부분 환영인파가 베트남 참전 전우였으나 한쪽에 백발의 전우들도 기세 당당하게 환영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호주인 들은 신기한 눈초리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곧 ANZAC DAY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손을 흔들어 반겼다.


▲ 호주전우들에게 경레를 받는 채명신 장군.

전우들은 일제히 대오를 갖추고 채명신 장군을 중앙 앞 쪽에 세웠다.우리 일행은 그 뒤에 일열로 섰다.

베트남참전 전우회장인 이윤화 전우가 "채명신 장군님께 경례"라는 구령을 붙였다. 일동은 공항 건물이 떠나갈 정도의 큰 소리로 "충성"을 외쳤다.순간 나는 눈물이 고였다 감동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지난 맹호 재구대대장(在求大隊長)시절이 회상되면서 당시의 채명신 장군을 떠 올렸다.흘러간 세월 41년, 젊고 패기 넘치던 당시의 채명신 장군과 지금의 저 노 장군 채명신, 오버랩되면서 슬픔 아닌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순간 역사의 준엄함을 상기했다.주월한국군 사령관이 둘인데 채명신 장군과 비교되는 후기의 주월한국군 사령관은 어디에도 없었다.전우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후기의 사령관과 지금의 채명신 장군의 저 위풍 당당한 경례를 받는 모습. 바로 역사의 당위성이 실감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날의 족적이 떳떳할 때 훗날에도 빛으로 남지만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불의의 길을 걸을 때 역사는 공정하게 심판한다는 교훈이 발견되는 현장이기도 했다.

채명신 장군은 별 셋, 후기의 사령관은 별 넷 그러나 별의 숫자와 관계없이 존경받는 자와 잊혀진 자의 확연한 구분이 현실로 나타나는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는 순간이었다.

별 숫자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일 것이 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취임 전 별 더 달 기회가 있었다.그러나 드골은 측근의 권유를 뿌리치고 병 하나로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다.그에 비해 박정희,전두환 노태후 등은 스스로의 권력으로 특진 특진을 거듭해 별 넷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얼마나 비교되는 사안인가.위대한 지도자와 용렬한 지도자로 어디 이들 뿐이랴 이들 책략을 거들었던 유학성,황영시,소준열,박준병 등 줄줄이 모두 별 넷을 달았다.선진국 군사평론가들이 한국군의 격동기에 벼락 진급한 장군들에 대해 비판의 글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슬픈 과거사가 아닌가?

눈물을 닦았다. 정신을 바로 잡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주변을 두런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등 뒤에다 대고 "맹호"하고 외쳤다.

뒤 돌아보니 맹호출신 전우였다."제가 모시겠습니다. 재구대대장님의 글을 읽고 꼭 뵙고 싶었습니다."

아주 착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가 선도하는 곳에 따라가니 새 차임이 분명한 BMW가 세워져 있었다. 그 차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명찰을 보니 맹호사단 마크가 선명한 명찰에 「이중광」이라는 세 글씨가 눈에 띄었다. 6박7일간 나는 이중광 전우가 운전하는 BMW신세를 졌다. 시드니 시내 지리에도 밝을 뿐만 아니라 운전 또한 아주 깨끗하게 하여 나를 즐겁게 했다.

나는 전역하는 날 당일로 폐차 처분하여 오늘까지 20년간 전철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 만일 내개 돈이 여유가 생긴다면 차를 하나 장만해야겠는데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BMW가 마음에 들었다.그런데 지금까지 BMW 살 만한 돈이 생기지 않아 포기했는데 그 소원을 이중광 전우로부터 이룬 셈 이었다.

생전 처음 타보는 BMW를 타고 우리 일행이 묵을 숙소인 해변 Novotel호텔로 이동 여장을 풀었다.

 • 첫 행사장 가평 전투를 기리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뒤 일행은 교포가 운영하는 해장국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나라 해장국 맛과 다를 바 없었다.

오후 1시 첫 행사가 가평전투 전몰장병에 대한 추모행사였다. 행사장이 뜻밖에 시드니 도심 고층 건물 한 가운데였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기념비가 없었기 때문에 좀 생소한 분위기를 느꼈다.

Martin place 충혼탑 앞 자그마한 광장에는 벌써 많은 인파가 모여들고 있었다.거의 모두 백발의 노인들이었다. 그럴 것이 가평전투 참전용사들이니 노인일수밖에 없었다.가끔 젊은 남녀가 섞여 있었지만 참전용사의 자녀들이라고 했다.

기념탑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고 사람 키 두배 정도의 크지 않은 석조탑이었다.

 그곳에서 안내역을 맡은 참전자 대표 Jhon Heins씨는 채명신 장군에게 경의를 표한 후 행사장에 참석한 인사들을 소개했다.

이과정에서 우리에게 감명을 준 일이 생겼다.1951년 가평 전투에서 전사한 호주군 제3대대장 Olwyn Green 미망인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전사한 남편의 훈장과 기장들을 잔뜩 가슴에 달고 우리 일행 앞에 나타났다. 채명신 장군은 각별히 경의를 표하며 위로를 했다.그날의 주빈은 총독이 아니라 바로 Olwyn Green 미망인 이었다.

이행사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전사한 장병의 추모의 뜻이 있었으므로 우리 일행은 각별한 몸가짐에 신경을 썼다. 마치 죄인처럼 일행은 모두 예복 정장차림으로 훈장을 달고 참석했다.

당시 참전 노병들 수십명이 모인 가운데 행사가 진행되었으며 특히 참전 제3대대의 전통을 이은 현역 장병들이 참석 56년의 시차를 둔 두 모습의 제3대대를 맞는 감동을 느꼈다.

행사 진행중 헌화 순서에 따라 우리 일행은 채명신 장군을 앞세우고 함께 예를 표했다.사회자는 채명신 장군에 대한 특별 소개말에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영웅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행사를 주관한 대표의 연설에서 한국전쟁의 발발내역과 호주군이 참전하게 된 경위 그리고 휴전 직전까지 호주군의 활약상에 대해 상세히 보고 했다.

이 첫 행사에 우리나라 참전자 대표로 우리 일행이 참석한데 대해 호주 시민들은 각별한 관심을 표하며 그날 석간신문에 우리 일행의 동정과 채명신 장군의 빛나는 경력이 소개되었다.

 • 한인교회와 호주 원주민

다음날 22일은 일요일이었다.오전에는 시드니 일원 관광을 하였고 오후에는 한인 시드니 순복음 교회에서 저녁 예배에 참석했다.

김경훈 목사의 사회에 이어 채명신 장군 간증성회로 순서에 따라 채명신 장군 신앙 간증이 있었다.

모태 신앙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공산 치하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은총으로 살아남은 고비 하나 하나 간증할 때 많은 교인들이 은혜 받은 모습이 역력하였으며 태평양 건너 먼 이국땅에서 한인만이 모인 교회에서 채명신 장군의 신앙간증은 또 다른 감동에 젖게 하였다.

특히 교회 장로이며 6.25참전 전우회의 강영식 회장의 기도는 절절이 동포애를 느끼게 하였다.

월요일인 23일에는 오전 행사인 KoKoda Track에서 일본군의 호주 상륙을 물리친 기념비에 헌화했다.

65년 전 제2차 세계대전시 제39보병대대가 KoKoda Track에서 일본군의 호주 상륙을 격퇴한 경위를 안내자가 설명한 후 엄숙히 추모행사가 진행되었으며 또 한 ANZAC 정신에 의해 전통이 이어진 제39보병대대의 후신인 제39인사지원대대 부대장이 나와 당시의 전황과 현재의 임무수행 그리고 각오를 상세히 보고 하였다.인사지원대대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부대였기에 일행에게 관심을 갖게 하였다.

이 행사가 끝나자 호주 원주민과의 우정을 다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며 우리 일행은 그들과 기념 촬영을 하였다.

백인 호주 이민자들이 원주민을 각별히 대해주고 일체감을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 이채로웠다.

호주 당국이 백인 우월의 백호주의에서 슬그머니 물러선 이면에는 원주민의 감정을 다독거리기 위한 측면도 고려되었다고 생각되었다.


▲ 한-호 우호증진의 밤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하고있다.

 • 한·호 참전용사 우호증진의 밤

4월23일 저녁 6시. 한국과 호주의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함께 모여 우의를 다지고 만찬을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의미있는 모임이다.호주 향군에서 운영하는 Banks town Sports Club의 대강당에서 열렸다.

가족을 동반한 베트남참전 전우들과 지역사회의 지도급 주요인사가 입추의 여지없이 대강당을 곽매웠다.총 참석인원이 500여명에 이른다고 하니 만찬 연회장으로서는 큰 규모라 할 수 있다.

채명신 장군을 선두로 하여 우리 일행이 시드니 주재 총영사와 함께 입장하자 요란한 기립 박수와 함께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굉장한 축제 분위기였다.

이어서 이윤화 베트남참전전우회장이 연단위에 채명신 장군을 모신 다음 연단밑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차려 구령에 이어 "채명신 사령관님께 경례"구령을 붙였다.만장한 한·호 참전용사가 일제히 거수경례를 "충성"구호와 함께 울리자 우렁찬"충성"소리가 대강당을 진동하였다. 일부 호주 측 인사와 그의 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 보았다. 시계 바늘을 40년전으로 되돌린 듯한 장면이 연출되면서 용사들의 눈망울에는 감동의 눈물까지 보였다. 나 또한 이 감동의 물결에 파묻혀 눈물을 글성이었다.

채명신 장군에 대한 존경심이 활활 타오르는 화산의 마그마처럼 요동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어느 장군이 이처럼 퇴역 후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채명신 장군 이외에는 그 대안이 떠 오르지 않았다.

이어서 여흥시간으로 바뀌면서 교포 여인들의 북춤과 호주인의 마술이 분위기를 돋구었다. 데이블마다 음식과 와인이 차려지면서 연회가 사작되었다. 나는 술을 끊은지 3년째가 되어 금주 중이었지만 그날따라 결심을 깨고 내 옆 좌석의 호주명사 부인이 따라주는 와인을 주는 대로 홀짝 홀짝 마셨다.

그 분위기와 느끼는 기분으로 내 결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마 한 병 넘게 마셨던 것 같았다. 그 날의 빅 이벤트는 채명신 장군의 영어 연설이었다.

유창한 영어로 호주와 참전군인에 대한 고마움과 한국전쟁,베트남전쟁의 동반자로서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할 때 호주인들은 압도당한 듯 감동하여 열렬한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자발적으로 참여

 

회상의 송시

 한광덕 역

살아남은 우리는 자라며 늙지만

그대들은 늙지 않고 자라갈지니

나이가 그대들을 늙지 못하고

세월도 그대들을 비난하지 못할 지어다

태양이 질 때와 아침에 다시 뜰 때

우리들은 그대들을 기억하리라

우리들은 그대들을 기억하리라(일동)

호주 입국 첫날부터 계속되는 ANZAC DAY행사에 참가하느라 피곤도 할 법 한데 오히려 생기가 더 돋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전우들의 열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주인들이 조국을 위해 전사한 영웅들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심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감동 때문이었다.

어린 학생으로부터 시작하여 백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시드니 곳곳의 행사장이나 거리는 넘치는 조국애의 물결 때문에 무감각 지대에서 지냈던 우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우리나라의 '국군의 날' 이나 '현충일'은 구가기관에서 주관하는 행사 단 한번으로 끝나 버리는 실정이 아니었던가.

전국 곳곳에 조국을 위해 전사한 영령들에게 모든 국민이 저토록 일주일간씩이나 추모하는 호주인들이 부럽기만 했다.

4월24일 11시는 그러한 면을 응축한 감동을 안겨주는 또 다른 면모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시드니 모든 학생들의 대표가 자발적으로 ANZAC DAY 추모행사를 개최하는 광경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초등학교 학생부터 시작하여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시드니 도심 남부 공원인 HYDEPARK SOUTH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 공원 한 가운데에는 전쟁기념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곳에는 전사한 장병을 추모하는 할머니와 어머니 등을 형상화한 동상을 비롯하여 전적지의 실상 모형등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RSL School Children's ANZAC Service 라는 행사 이름이 말해주듯 어린 학생을 주인으로 하는 행사로 진행되었다.

어린이에게 조국애를 심어주고 조국을 위해 전사한 영웅들의 위대한 희생을 기리면서 그들 죽음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고 영원히 우리 호주 국민의 가슴에 살아 있다는 절절한 조국애가 느껴지는 감동의 행사장이었다.

RSL School's Remember ANZAC라는 케치프레이즈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Gallipoli 반도 상륙작전에서 전사한 8,000여 장병의 죽음을 상기하자며 모든 학생에게 그 정신을 심어주는데 의미를 둔 행사였다.패전이라 할지라도 조국을 위해서 죽었고 이로 말미암아 뉴질랜드와 호주의 운명적 동반자 관계가 성립되었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같은 시간대에 뉴질랜드에서도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같은 뜻으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조국애가 절절이 넘치는 또한 조국을 위해 영혼들을 기리기 위한 이 송시는 내 가슴을 짓 눌렀다. 우리 조국과 국민들의 무관심의 실상을 떠 올리며, 이날 18시에는 호주 재향군인회장 초청 채명신 장군과 그 일행을 위한 만찬에 참석하였다.

호주 재향군인회가 운영하는 Epping Club에서 호주측 주요 참석 인사를 이 클럽 회장이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호주측 주요 인사는 부인을 동반했고 채명신 장군은 부인 문정인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호주측의 환영 인사말이 끝난 후 채명신 장군은 답사를 통해 '대한민국이 건국 2년을 겨우 넘긴 시기에 기습 남침을 당했고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호주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빨리 육·해·공군 부대를 파견했던 고마움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며 눈시울을 붉힌 다음 '그런 고마움에 이어 베트남 전선에서 호주군과 어깨를 나란히 함께 싸웠다는 것은 자랑이며 긍지'라고 하며 말을 맺었다. 나는 이날 만찬에서도 금주의 룰을 깨고 와인을 맥주 마시듯 퍼 마셨다.

 • ANZAC DAY 당일 행사

4월 25일은 바로 ANZAC DAY 당일이다. 바로 이날을 기리기 위해 한 주간을 추모 주간으로 정한 것이다. 따라서 4월 25일을 끝으로 모든 ANZAC DAY 행사는 끝난다.

행사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날 새벽 4시에 Gallipoli 반도에 호주,뉴질랜드 군이 상륙했기 때문이다.

4시부터 시작되는 추모행사는 2시간 간격으로 전국 각처에서 진행된다.

나와 한광덕 장군, 신현배 장군 셋이서 이 뜻 깊은 행사에 참석했다. 호텔방에서 시간을 맞추느라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 4시의 추모행사는 92년 전 상륙시간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오랜 전통을 이어온 행사라고 했다.

칠흑같은 어둠에다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드니 일대에서 가뭄 때문에 비상이 걸릴 정도였다는데 새벽부터 비가 내리자 호주인들은 무척 좋아했다.일행은 비를 흠뻑 맞으면서 헌화 순서에 따라 셋이서 함께 헌화했다. 예복 차림의 우리 일행에 대해 시선이 집중되었으며 사회자는 한국에서 온 세 장군이라며 행사 참석자에게 소개했다.

이 행사에 이어 2시간 간격으로 진행되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연거푸 세 곳의 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나 비가 억수 같이 내리자 기념탑 옆 공회당 건물 실내에서 행사하는 일가지 생겼다.

이윽고 ANZAC DAY 전 기간을 통한 빅 이벤트의 시가행진 시간인 11시가 가까워왔다.우리 일행은 다시 채명신 장군과 합류하여 시가행진이 벌어질 도심에 있는 한 호텔 식당에서 행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진은 11시에 시작되지만 워낙 행렬이 길어 오후가 되어야 우리 한국군 차례가 온다는 것이었다.

정규군을 앞세우고 군악대의 주악에 맞춘 행진은 이색적이었다.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가지각색의 복장을 한 단체, 어린 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각각 독특한 밴드와 기수단을 앞세우고 행진했다.

차례를 기다리느라 도심 골목마다 행사 참가인원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으며 주요 가도변 양측에는 이를 기념하고 구경하기 위하여 인산인해를 방불케 했다.

이 행진에 직접 참가하는 현역과 예비역 그리고 거리의 시민들은 호주의 국방에 봉사하는 군인들에게 높은 명예를 느끼게 하고 호주를 위해 숨진 호국영령들을 기리고 그 유족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깊은 뜻이 있었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왔다.맨 앞 지프차에 채명신 장군과 몸이 불편한 김동석(예)대령이 승차해서 출발했고 바로 뒤를 이어 왼쪽부터 이윤화 베트남참전 전우회장, 한광덕 장군, 박희모 장군, 신원배 장군, 필자, 6.25참전전우회 강영식 회장 등 6명이 횡대가 되어 태극기와 호주기를 양손에 각각 들고 뒤 따랐다. 그 뒤를 이어 6.25 및 베트남참전 전우 수백명이 보무도 당당히 시드니 도심 가도를 행진했다.

도로 양쪽의 시민들은 일제히 우리 일행에게 환호하며 박수 갈채를 보냈고 우리 교포의 반기는 모습도 보였다.

거리를 행진하며 우리 일행은 조국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으며 호주 국민이 군과 일체 감을 갖고 조국 수호의 합심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벽 4시의 여명 추모식 Dawn service와 6시,8시,10시 등 계속 이어지는 다양한 행사의 추모행사가 전국 각 지역에서 거행된 후 ANZAC MARCH로 막을 내렸다.

「우리들은 그대들을 기억하리라」

(We will remember them)

우리 국민은 6·25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숨진 장병들을 정말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 호주는 우리 참전군인들까지 대우하고 있다.

베트남 참전전우 한 사람이 성난 표정으로 "우리 조국은 참전군인들을 학대하고 있다." 고 분개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7,80대의 노인들에게 참전수당의 명분으로 월 7만원을 준다며 이런 나라가 세계 어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느냐고 항변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조국을 지키다가 전투에서 무공훈장을 다섯 개씩이나 받았다는 6·25참전전우 한 사람은 탁자를 치면서 그 대가가 월 12만원이라고 하며 눈물을 글썽이었다. 자기는 80노인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베트남 참전전우가 뭔가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이것 좀 보십시오! 장군님. 제가 호주 정부로부터 받는 국가유공자에게 주는 혜택 명세표입니다. 제가 호주국 군대였습니까?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웠죠. 호주에 이민오니까 호주정부에서 함께 연합군으로 같은 목적 즉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윘다고 등록하라고 해서 망설이다가 등록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뭡니까. 그럴진대 앞으로 국난이 닥치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습니까"

절절이 옳은 말이었다. 나는 그 명세서를 훑어보았다.

베트남전쟁 참전자(맹호사단)
조건:시민권 받고 10년거주자. 60세이상(일반시민권자는 65세부터 사회보장 혜택)

혜    택
1.  매월 2주마다 (목요일)1,100달러 합계 월 2,200달러 통장에 입금
     (개인수입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음)
2.  의료혜택:100%면제
3.  전기료,전화료:40%감면
4.  자동차 등록세:전액면제
5.  가스요금:전액면제
6.  수도요금,오물제거세:전액면제
7.  의약구매시:액수에 관계없이 4달러 20센트
8.  사망시:장례비2,000달러 위로금 2,200달러.화장비:무료
9.  65세 이상 정부주택 우선배정
10.사업체 감세혜택

나는 깜짝 놀랐다.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두 배 가까이 되니까 호주국 군대 참전자에게 주는 혜택이라면 당연한 것인데 호주국이 아닌 대한민국 군대에서 6.25전쟁, 베트남전쟁 참전자에게도 똑 같은 혜택이 주어 진다니….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위정자들은 참전군인을 벌래 보듯 하고 있어요 민주화운동.광주사태 등 참가자가 애국자가 되고 참전자는 벌레죠 벌레"

참전전우들의 분개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일어섰다."앞으로 나아지겠죠"그러나 그 말을 그들에게 던졌어도 개운치 않았다. 마음이 무거울 뿐이었다.

 • 참전군인 홀대의 경위와 그 대책
문명국가에서 자주 국방의 전투행위로 기여한 참전군인들을 외면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세계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참전군인에 대해 특별 예우를 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이외에도 미국을 위시한 모든 나라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빠짐없이 예우를 하고 있다.

어느 여권 국회의원이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 장군 출신 대통령 때 못해 놓고 왜 지금 우리에게 책임을 묻느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푸념이다.

그러나 그 때 못한 이유가 있다. 그 셋 대통령은 커다란 원죄(原罪)가 있다.국권 찬탈의 멍에가 정책의 자유를 속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전군인을 우대하면 바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총칼로 빼앗은 권력으로 저희들끼리 해 먹는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은 제머리 깎기에도 벅찼다. 전두환, 노태우를 포함한 정치군인 척결과 광주 민주화 운동 명에 회복이라는 두 이슈가 멍에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전군인 예우를 국가유공자로 하지 못한 잘못은 어느 대통령에게도 추궁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적기는 현 정부이다. 그 당위성은 노무현 대통령이 군 관계문제로 서먹서먹해진 것을 풀어야 할 호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병역의 의무를 정상적으로 필 한 유일한 대통령으로서 선배에 대한 시혜는 곧 역사에 각인될 중요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 국회에 법안이 미처리된 채 썩어가고 있다. 전체 참전군인을 국가 유공자로 하자는 것도 아니고 6.25참전자인 7,80대 노인만 해 달라는 것이다.

6.25전쟁 참전자는 127만여 명이었지만 지금 생존자는 약 20만 정도밖에 안 된다.

내 경우는 훈장이 많기 때문에 국가유공자로 여러 번 재탕할 수 있다. 단지 훈장이 없다고 나 보다 더 고생한 전우가 국가유공자가 못 된다면 얼마나 큰 모순인가.

 현 정권은 신속히 이 문제를 해결하여 법안처리를 빨리 서둘러야 한다.

이들의 명예회복은 곧 닥쳐올지 모를 국난에 극복할 수 있는 역군을 확보할 호재가 된다는 것을 결언으로 남기고 싶다.

 • 다시 생각하는 조국애
군인은 민간인과 국가 구성원의 일체성 의미를 지닌다. 양자는 뗄 수 없는 관계로 조국을 위해 존재한다.

군인은 민간인 즉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국민은 군인의 존재를 존중하면서 그로 말미야마 안전을 유지하고 있다는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낄 때 평화로워 진다.

이 평범한 진리가 아니 상식이 흐트러지기 시작 한 것은  해방 후 이년의 갈등에서부터 발원되었다. 군인과 민간인은 상대적 개념처럼 되어지면서 여수 순천 반란사건, 제주도 4.3사건 등을 겪어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6.25남침으로 야기된 동족 상잔은 그 골을 더 깊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5.16군사쿠테타와 12.12군사반란을 겪으면서 더욱 피해 받는 계층이 폭팔적으로 양산되기에 이르렀다.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최악의 분열이 계속 이어지면서 민족적 불행인 광주 사태를 맞게 되었다.따라서 군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쪽은 군을 마치 적처럼 보게 되었고 그 당사자가 정권을 잡자 더욱 갈등의 상처는 깊어갔다.

이게 오늘의 현실이다.과거 쿠데타나 군사반란에 직접관여했던 계층은 마치 현 정권을 좌익으로 몰면서 정책 하나하나 무조건 반대하는 대열에서 저항했다.자기들이 수행하려고 했던 정책을 지금의 정부가 채택하게 되면 마치 나라를 망치는 매국노처럼 질타하면서 별까지 다닥다닥 달고 거리에 나와 데모대의 앞장에서 소리쳤다. 장군의 위상을 추락시킨 해외토픽 해프닝이었다.

이 판국에 참전군인에 대한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으려 해서 성사될 까닭이 전무할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사사건건 반대하는 조직이 요청하는 사항을 안들어 준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정치군인들을 앞세운 일부장성들이 데모하며 반대한 것 예를 들면 용산 미군기지 이동, 작전통제권 환수, 군인복무 18개월 단축 등 뭘 하나 관철시킨 것이 없으면서 감정의 골만 깊게 만들었다.

한 쪽만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양측 다 문제를 안고 있다. 이제 일부 장성들은 조용히 있어야 한다. 정부도 나름대로 비전이 있고 정책수행에 책임을 맡고 있기에 자기 주장이 최선이라는 옹고집은 노추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나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군인 의무 복무기간 18개월 두 프로젝트를 발의한 장본인이었다.지금도 그 두 프로젝트의 실현이 국익에 보탬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작전통제권 문제도 일각의 장성 주장을 그르다고 할 수 없지만 환수반대를 외쳐대며 앞장섰던 전과 및 실책 등으로 상처 투성이 인 전직 국방장관들 재직 시 이미 추진하기로 결정한 정책이었다.

자기가 하면 애국이고 남이 하면 매국이라는 모순이 깔려 있었다. 그들은 걸핏하면 NOTO의 경우를 인용한다. 그러나 NOTO 가맹국 각자의 기본 작전지휘권은 독립국가의 기본 자존심으로 확신하고 있다. CASE BY CASE로 운영하는 작전권을 우리의 경우와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맞지 않다.

여하간 이제 양측 모두 군에 애정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우리 국군에는 단 한 명의 정치 군인이 없는 순수 국군이기 때문이다.

큰 화합을 이룬다면 우리나라도 호주와 같이 군과 국민이 일체 감을 갖고 국방의 효율을 높일 때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호주에서 행사에 참가하는 동안 호주인의 조국애의 실상을 파악하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국민 모두 군을 존중하고 참전군인에 대해 그 업적을 높이 평가해주며 그에 합당한 보상을 아낌없이 해주는 것을 볼 때 깊은 감회에 젖었다.

우리나라도 머지 않아 호주처럼 군대에 대한 애정과 참전군인에 대한 예우가 향상되기를 기원하며 귀국길에 올랐다.

귀소 본능이 남달리 강한 탓인지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정말 천국과 같은 보금자리에 안기는 행복에 젖었다.

호주에 체류해서 행사에 참가하는 동안 많은 전우들의 애국심과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보았다. 그 가운데 다음 전우들에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이윤화,이중광,한수원,김영길,유재경,김종병,민재선,정하만,박석호,심재웅,이태열,박노원,김충섭)

이름아이콘 서현식
2007-06-08 16:28
존경하옵는 박장군님  우리 전우들이 갈망하는 참전군인의 예우문제를 심도 깊게 써 주심에 진심으로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장군님의 행사참가기중에서 우선 위 글부터 게재함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원고를 일일히 자판을 두두리자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한참 일하다보면 눈이 아른거려 잘 보이지도 않아 전문을 올리는데는 조금 시간이 걸릴것 같습니다. 위 내용을 모든 정치인에게 메일로 보낼까 생각하는데 장군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아마 많은 전우들이 위 글을 읽으면 장군님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할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많은 창작 이루시길 바랍니다.
   
이름아이콘 한사랑
2007-06-08 21:26
맹호 서현식 전우에게.
전우들의 권익을 위한 부분 편집에 동의합니다.그리고 서현식 전우의 모든 계획을 지지합니다.힘을 합쳐 쟁취합시다.
앞으로 시간이 나는대로 전문 게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름아이콘 서현식
2007-06-08 21:40
장군님 저의 의견에 동의하여 주심에 감사드리며 힘을 합쳐 쟁취하자는 말씀에  용기가 용솟음치는것 같습니다. 앞으로 장군님의 전문게재에 또한 큰 기대와 더불어 최선의 편집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밤 정치인과 모든 전우들에게 메일로 게재문을 보내겠습니다.
   
이름아이콘 Pyngsan
2007-06-09 11:34
특히 참전전우들께 알여저있는 서현식님  안녕하십니까?읽을거리 알아야할 일들 배워워야할 넓은세상의 정보를 주셔서 고맙습니다.아직은 사라 숨쉬는 이사람 용기를내지못하는 이사람 동참못하는 이사람  許億이는 참전전우들의 권익에 힘쓰시는 서현식님께 경의를 표합니다.감사들입니다.
   
이름아이콘 이원주
2007-06-09 11:36
안녕하세요.  얼마남지 않은 생 .. 더러워.서...... 억울하면 뭐? 하면 된다는데요.
끝나지 않은 전쟁 남은 생 을 이대로 보낸대서야 되겠습니까 우리한번 연락 잘 좀하고 지내지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이름아이콘 일통강재성
2007-06-09 11:48
소식 잘 받아 보았습니다.
본인의 의견 중에 한마디 드리고 싶은 내용은,한국 사람들은 생각이 많이 부족한 탓도 있아고 봅니다.
생각 없이 바람몰이에 들뜨고 나대지만, 진정으로 염두에 둬야 할 일은 까먹어 버리고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그래서 하는 일마다 시행착오가 계속되어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름아이콘 달마
2007-06-09 14:47
아직까지 장군님들은 채명신 사령관님외 우리들 문제에 이렇타할 깊은 관심을 가져주신분이 없었습니다.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까요... 군문을 떠나 문인으로 전업하신 박경석 장군님이 날카로운 팬을 들었습니다. 위 댓글에서 보시다 시피 전문게재의 필요성을 느끼고 계시니 만큼 우리는 천군 만마를 얻은것입니다. 오늘도 혹독한 고통에 시달리시는 전우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요 희망을 가지십시요.... 언제나 태양은 다시 뜨는 법입니다.
   
이름아이콘 운영자
2007-06-10 08:48
박경석 장군님의 "참전군인 외면하는 대한민국" 전문을 확대경에 게재하였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름아이콘 이원주
2007-06-10 09:24
안녕하세요  서현식님   자주 소식 주세요   감사합니다.서현석님 께서주신 메일 참 감명깊게  잘읽었습니다.
우리 그냥 이대로 있어야 됩니까?  뭐?좀  움직였으면 합니다.한심한 작태? (위정자넘들) 아쉬울땐 공약? 뭣나게 밭아놓고언제 내가  오리발내미는 넘 넘들   소식 자주 주세요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이름아이콘 박경석
2007-06-10 15:28
맹호 서현식 전우에게.
호주 ANZAC DAY행사 참가기 [조국애로 가슴 뭉클했던  7일간]-참전군인 외면하는 대한민국.전문을 손수 옮긴대 대하여 고마음과 함께 찬사를 보냅니다.많은 전우들이 읽고 단결하여 꼭 국가유공자 대우 쟁취를 향해 전진하기를 기대합니다.내 계획으로는 금년에 6.25참전 전우의 권리를 쟁취하고 내년에 베트남 참전전우의 권리를 찾을 생각입니다.
나는 아무 단체와도 관련이 없지만 이 기회에 채명신 장군 휘하에 모일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대한민국 기라성 같은 장군 가운데 그를 능가할 인물이 없음은 내외 군사평론가들의 공통된 인식입니다.
한때 나도 채명신 장군을 비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그러나 결론은 그에게 굴복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여러분 우리의 권리를 찾으려면 단결이 우선 조건입니다.거듭 나는 아무 단체와도 관련 없음을 밝힙니다.
                                           맹호사단 제1연대 초대 재구대대장   박경석
   
이름아이콘 한태식
2007-06-10 17:17
"호주는 우리 참전군인들까지 대우하고 있다" 박경석 장군님의 글 잘 정독하였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림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이름아이콘 이윤화
2007-06-19 09:04
서현식전우님의 글 감사합니다 호주의 금년 안작행사에 참석하셨던 채 사령관님을 비롯한 박경석장군님 박희모장군님 한광덕장군님 신원배장군님 그리고 김동석(예)대령님과 최성영 홍진흠 김선주전우님들을 모시고 7일 동안 이곳 호주의 향군 참전 관계자들과 이곳 동포사회의 참전전우들 그리고 호주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직접 접하시고 귀국하셨습니다 특별히 박경석장군님께서 "군사저널" 6 월호에 감격의 순간들을 체험담으로 집필하시어 많은 분들에게 감명을 주셨습니다 박 장군님의 나라사랑과 전우들을 사랑하시며 배려하시는 마음에 다시한번 감사한 마음을 올립니다 부디 건강하시어 살아숨쉬는 군 정신을 계속 후배들에게 널리 전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호주에서 올렸습니다==
   
이름아이콘 달마
2007-06-19 15:31
이윤화 전우님 반갑습니다. 그동안 몸은 호주에 있어도 마음은 조국의 전우들을 위하여 동분서주하시는 귀하의 활약을 인터넷을 통하여 많이 접하였습니다. 지난 ANZAC DAY를 통하여 님에 대한 조국애와 전우애는 눈물겹도록 감격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이름아이콘 까마득후배
2007-06-23 15:02
박장군님은 진정한 장군이십니다. 말도 안되는 똥고집만 피우는 장군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장군님 화이팅
   
이름아이콘 백마
2007-07-23 11:26
위의   수혜 명세서는  문제가   있으니    호주 전우회의  정 하만 전우님께   문의 히여   정정  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박경석 ,수혜 명세서 가운데 2,200달러를 3,200달러로 잘못 기록된 오류를 바로 잡았습니다.위 수혜 명세서는 정확합니다.그러나 당사자의 직업, 수입, 등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음을 확인 하였습니다. 6/7 08:57
   
이름아이콘 백마
2007-07-23 11:43
국민이 국가를 배신한  예는 동서고금에 무수히 많다 허나  국가가 국민을 배신한 일은  유사이래 동서고금을통해 대한민국이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이름아이콘 김촌태
2007-09-09 07:21
 호주에서는 신체검사 규정이 없나 보네요. 만일에 있다면 어떠한 경로를 밟아야 합니까?미국은 전투에 참가한 부대에 있었다는 증명만 되면 다른 별도의 검사는 요구를 않고, 그 당시 어디에 근무를 했던지를 따지지않고 무조건 보상과 배상을 하더군요.까다로운 신체검사는 결국은 담당공무원만 배를 불리고 안해주겠으니 찾아 오지말고 빨리 죽으란 말이지요.아무리 어려도 나이가 이미 육십인데 통박이 너무 뻔하지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군은 피해자중에 고급장교들도 있던데 우리는 한분도 없나 봅니다. 고엽제가 용케도 그분들은 피해갔나 보죠? 희안하네요.그리고 그 당시 육사 17기 인가 18기 출신 박세직씨가 주월군 통역장교단의 대표였는데 완전 오리발 이더군요.그리고 국회에서
전우들을 위하여 일을 할 시간이 있었지만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그 아까운 시간을  보내서 결국 서울 올림픽 위언장인가를 해잡수셨지요.무론 명박이는 운하를 만들어야 하니까...그리고 폐병으로 안갔다는데,
   
이름아이콘 종석우
2010-02-07 15:30
호주에 계신 전우들이여 부럽습니다.. 저는 백마 29연대에서 구정공세 닌호아 2차전을 격은 분대장 이였고 살어 귀국하여 국교도 없는 리비아에서 3년동안 공사를 하면서 우리 태극기만보면 눈물을 흘리곤 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외국에 계신 대한민국 동포들이 애국자라 생각 합니다 지금의 이나라 정치를 하는자들 정말 원망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보훈처 수장이란자는 법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데 법도 국민을 위한 법이건을 깡판부리는 자들은 국가 유공자 법을 준수하는 단체는 뒷전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고을 좀 먹는 자들의 행태라 생각 합니다.. 하여간 국위를 선양하는 호주 전우들이여 건강 하고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
   
이름아이콘 정도
2011-02-18 19:45
호주로 이민 갈가 부-다. 좋은 글 감사드리며 호주지부의 무긍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이름아이콘 이상범
2012-02-26 17:11
5년이 지난 지금에도 ~ ~ ~ 봐도 봐도 넘 멋진 호주의 예우!
대한민국이여!
호주의 예우를 배우시구 즉각 조치하라!
참전자에 대한 예우를 조속히 감당하여 주시기를 촉구합니다.
충남 서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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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 참전 유공자, 실질적인 국가유공자 예우 필요(제284회 정기국회 이인기 의원 발언 영상) 13 서현식 2009-09-16 23:09
560 참전군인은 모두 국가유공자다 11 전대열 2008-03-26 13:41
559 ★ "진정한 영웅들" ★ (어느 주부의 뜻있는 글입니다) 12 송카이로 2008-01-21 11:36
558 越南參戰 戰友들의 가슴속에 서린 恨 10 최승일 2007-12-14 17:17
한국인 이면 누구나 꼭 봐야 할 글<대통령에게 드리는 건의> 9 jang40 2010-03-26 10:50
556 【역사왜곡】아버지는 영웅(투코전투의 실상 영화제작) 12 운영자 2008-02-01 22:21
555 김충배 육사교장의 감동의 편지 8 2004-02-02 21:30
554 중앙일보가 생략한 진실의 내용 10 다윗 2011-12-26 21:23
553 어느 미망인 이야기 10 初心 2010-03-09 10:02
552 통영시가 추진중인 윤이상 음악당 절대 않된다, 7 송영인 2008-12-29 08:57
551 박경석 장군 편-국방대학교 7 운영자 2014-01-08 15:32
550 박정희 대통령의 일기 7 카이로 2008-08-25 18:24
549 대한민국 국회가 파월장병에게 보내는 메시지 6 2006-04-23 10:37
548 朴대통령은 ‘조국 근대화’의 創業主였다” -朴衡圭- 7 서현식 2012-01-30 19:56
547 박정희, 그 유신의 진실 6 유공자 2011-12-19 08:35
546 <역사의 현장>독도는 한국 땅! 명확한 증거! 日本總理府令 24號,大藏省令4號 5 서현식 2011-07-02 08:20
545 <역사의 현장>지만원이 겪은 빨갱이 김대중 이야기 8 박민식 2011-06-10 02:42
544 인간방패에 자국민 학살한게 누구탓 ? <역사의 현장> 5 서현식 2011-04-14 11:03
543 대통령의 꾸지람-역사의 현장- 5 서현식 2010-08-30 23:41
542 김문수 경기도지사 강연!! 9 network 2009-07-01 10:47
541 푸른산 볼때면 박정희 대통령 생각난다, 6 이강성 2008-12-28 15:19
540 끝까지 깽판질 혈세 490억 고향마을 도배 (옮겨옴) 14 달마 2008-01-31 14:11
539 긴급뉴스 속보입니다. 8 유공자 2008-01-23 19:04
538 人面獸心의 배신자들--- 6 김경만 2013-10-24 20:24
537 아~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4 화곡 2011-07-31 22:54
536 <역사의 현장>박정희와 싸워 이기고 싶다면 결사항전하라! 4 송영인 2011-07-10 21:07
535 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전에 머리를 조아리며<역사의 현장> 4 network 2011-04-08 08:59
534 核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와 朴正熙 7 서현식 2010-11-07 18:59
533 박정희가 싫어서 떠났던 그녀, 박정희를 뛰어넘다 4 소양강 2009-10-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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