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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성목
작성일 2018/04/16 (월) 06:49
ㆍ조회: 251   
《역사의 鑑戒(감계)》
제목 없음

우리는 국민학교 때 이렇게 배웠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그리곤 조선이 망한 이유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다.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때문에 망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이다.

금년이 2018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8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이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 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다. 에스파냐 왕국이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 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다.

전 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보자. 고려가 500년 갔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다. 고구려가 700년 갔다. 백제가 700년 갔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아시아에 하나가 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다. 지금 말한 것은 과학이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이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다. 왜 그럴까요? 그러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하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난다. 알다시피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한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니까.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신문고는 왕궁 옆에 매달아 놓으니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 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격쟁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이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이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이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이다.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이 있었나?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한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한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하고자 한다.

첫째는 기록의 문화이다.

이집트에 가면 스핑크스가 있다. 그걸 보면 어떠한 생각을 들까?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다. 아마도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 왕이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은가?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을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하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는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는다.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공식 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다.

우리가 사극에서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왕은 공식 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을 갔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다.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다. 이걸 사초라고 한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하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한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한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한다. 4부를 출판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 활자본을 만들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인가,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인가? 쓰는 게 경제적이다.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다. 글자 하나 더 쓸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 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6,400만자다.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든다.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아보자.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이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은 참았다. 몇 년이 지났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희 정승이 나섰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다.

이 말을 세종이 들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다.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볼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볼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볼까?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다.

누구 보라고 썼는가?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는가?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놓았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도 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 비서실이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이다.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다. 그런데 승정원 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는가?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이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정리가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난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이다.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이다. 왕들의 일기이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했다.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다.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서 찾아보라.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한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고 싶으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고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 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그게 뭐냐면 감히 국격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조사를 해 보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온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다. 우리가 만약 방폐장이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이것을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원자력발전소를 만드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원자력발전소를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이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데 만들어야 한다.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 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원자력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이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이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실로 위대한 선조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여 자부심을 가지고 삽시다.

세계를 향해 포효합시다.

(허성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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