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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진강
작성일 2017/11/16 (목) 22:35
ㆍ조회: 226   
술고래'였던 世祖 이야기

술고래'였던 世祖 이야기

세조(世祖)는 쿠데타만 일으키지 않았다면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자질들이 참으로 많은 임금이었다.

게다가 그는 친형제들과 임금 자리에 있던 조카(단종)까지 죽였기 때문에 적어도 사필(史筆)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얻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역사적 평가를 일단 유보해 두고 인간 세조를 들여다보면 분명 매력적인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는 스케일이 컸고 문무(文武)를 겸비한 호걸이었다.

아버지 세종처럼 은밀한 방식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불교를 숭배했다. 아마 조선 국왕 중에서 이처럼 내놓고 불교를 신봉했던 인물은 태조와 세조 두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세조 하면 반드시 떠올려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는 대단한 애주가(愛酒家)였다. 스스로도 호음지벽(好飮之癖)이 있다고 밝힐 정도였다.

문제는 애주나 호주(好酒)보다는 호주(豪酒)하는데 있었다. 너무 많이 마셨다. 횟수도 너무 잦았고 한번에 마시는 양도 너무 많았다.

세조 曰,
"공신(功臣)들이 과음(過飮)하여 죽은 자가 자못 많으니, 이계전(李季甸) 윤암(尹巖)같은 이가 그러하였다. 또 화천군(花川君) 권공(權恭) 계양군(桂陽君) 이증(李 曾) 중추원 영사 홍달손(洪達孫) 등은 비록 죽지는 않았더라도 또한 이미 병들어 파리해졌으니, 이것은 크게 옳지 못한 것이다. 내가 한결같이 금(禁)하여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신숙주로서는 마음 속으로 뜨악했을 것이다.

'아니, 온 조정을 술판으로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데 저런 말씀을 하시나?'

일단 신숙주는 '금주(禁酒)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공신들의 경우 과음(過飮)은 금하게 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세조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불과 2년 후 신숙주가 영의정이 되고 구치관이 우의정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공신들 중에서도 세조가 특히 아꼈던 인물이 한명회 신숙주 구치관이었다.

세조는 늘 "한명회는 나의 장자방(張子房-중국 한나라의 책략가) 이고 신숙주는 나의 위징(魏徵-당나라의 명신)"이라 평했고, 문신(文臣)이면서도 군사에 밝아 여진토벌에 공을 세운 구치관에 대해서는 "구치관은 나의 만리장성"이라고 극찬했다.

세조는 영의정 신숙주와 우의정 구치관 두 정승을 내전으로 불렀다.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한 세조는 술자리를 베풀고서 "내가 물어볼 것이 있는데 경(卿)들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벌주(罰酒)를 피할 수 없으리라"고 말한 다음 '신정승!'하고 부른다.

이에 신숙주가 '예'하고 대답하자 "나는 신(新)정승을 불렀는데 그대가 잘못 대답했구려"하며 신숙주에게 큰 잔으로 벌주를 내렸다.

물론 '구정승!'했을 때도 구치관이 답하지 않을 수 없었을게고 결국 큰 잔의 벌주를 마셔야 했다.

세조 자신은 얼마나 마셨는지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종일 벌주를 마시다가 몹시 취해서 파했다"고 한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유쾌한 자리였다.

술자리가 잦았기 때문에 사고도 많았다. 정인지는 여러 차례 만취하여 세조에게 '너(爾)'라고 불렀다가 파직당하는 등의 곤욕을 치렀다.

세조7년 성균관 대사성 서강(徐岡)은 세조와 불교를 놓고 논쟁을 벌이면서 벌주를 연거푸 받아 마시고 만취해 불경스러운 말을 했다가 결국 사형을 당했다.

세조12년에는 공신 양정이 술김에 퇴위(退位)를 건의했다가 참형을 당해야 했다.

사실 세조에게 술자리는 단순한 유흥(遊興)이 아니라 통치행위였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자리를 열었다. 그러나 세조8년12월 세조가 역시 술자리에서 세자에게 했던 말은 의미심장하다.

"내가 술을 마시고자 하면 너와 여러 장상(將相)들하고만 마셨다. 결코 궁첩(宮妾)들과 마시지 않은 것은 네가 본 바 이다."

분명 한 시대의 영웅이었지만 호색(好色)은 아니었다. 실제로 세조는 정희왕후 윤씨 외에 근빈 박씨라는 딱 한 명의 후궁만 두었다. 호주(好酒)형 호걸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술자리'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재위기간이 세조보다 5년이나 더 길었던 태종 때 '167건'인 데 반해 세조 때는 '467건'이다. 물론 '술자리'만 검색했기 때문에 반드시 태종이나 세조가 열어준 술자리는 아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많다.

32년 재위했던 세종 때도 91건밖에 되지 않는다.

재미있는 세조 이야기 하나 더-

“마마, 정신 차리십시오.” 잠자리에 든 세조는 악몽을 꾸는지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은 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옆에 누웠던 왕비가 잠결에 임금의 신음소리를 듣고 일어나 정신 차릴 것을 권하니 잠에서 깨어난 세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마, 신열이 있사옵니다. 옥체 미령하옵신지요?”

세조는 대답 대신 혼자 입속말을 했다.

“음…. 업이로구나, 업이야.”

“마마, 무슨 일이신지요. 혹시 나쁜 꿈이라도 꾸셨는지요.”

“중전, 심기가 몹시 불편하구려. 방금 꿈에 현덕왕후(단종의 모친) 혼백이 나타나 내 몸에 침을 뱉지 않겠소.”

“원, 저런….”

꿈이야기를 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으나 세조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린 조카 단종을 업어주던 모습이며, 생각하기조차 꺼려지는 기억들이 자꾸만 뇌리를 맴돌았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꿈에 현덕왕후가 뱉은 침자리마다 종기가 돋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세조는 아연실색했다. 종기는 차츰 온몸으로 퍼지더니 고름이 나는 등 점점 악화되었고, 명의와 신약 모두 효험이 없었다.

임금은 중전에게 말했다.

“백약이 무효이니 내 아무래도 대찰을 찾아 부처님께 기도를 올려야겠소.”

“그렇게 하시지요. 문수도량인 오대산 상원사가 기도처로는 적합할 듯 하옵니다.”

왕은 오대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월정사에서 참배를 마치고 상원사로 가던 중 장엄한 산세와 맑은 계곡 물 등 절경에 취한 세조는 불현듯 산간벽수에 목욕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추한 모습을 신하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늘 어의를 풀지 않았던 세조는 그날도 주위를 물린 채 혼자 계곡 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즐겼다. 그때, 숲속에서 놀고 있는 조그마한 동자승이 세조의 눈에 띄었다.

“이리 와서 내 등 좀 밀어주지 않으련?”

동자승이 내려와 등을 다 밀고나자 임금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단단히 부탁의 말을 일렀다.

“그대는 어디 가서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

“대왕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마시오.”

이렇게 응수한 동자는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왕은 놀라 주위를 살피다가 자신의 몸을 보니 몸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을 알게 되었다. 크게 감격한 왕은 환궁하자마자 화공을 불러 자신이 본 문수동자를 그리게 하였다.

기억력을 더듬어 몇 번의 교정을 거친 끝에 실제와 비슷한 동자상이 완성되자 상원사에 봉안토록 하였다. 현재 상원사에는 문수동자 화상(畵像)은 없고 얼마 전 다량의 국보가 쏟아져 나온 목각 문수동자상이 모셔져 있다.

또한 세조가 문수동자상을 친견했던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갈라지는 큰 길목 10km 지점은 임금이 그곳 나무에 의관을 걸었다 하여 ‘갓걸이’ 또는 ‘관대걸이’라 부르고 있다.

병을 고친 이듬해 봄에 세조는 다시 그 이적의 성지를 찾았다.

상원사에 도착한 왕은 곧바로 법당으로 들어가 막 예불을 올리려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세조의 곤룡포 자락을 물고 자꾸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예감이 든 세조는 밖으로 나왔고, 병사들을 풀어 법당 안팎을 샅샅이 뒤지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 세조를 시해하려는 3명의 자객이 칼을 들고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들을 끌어내어 참하는 동안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죽을 뻔한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위해 세조는 강릉에서 가장 기름진 논 5백 섬지기를 상원사에 내리고, 매년 고양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주도록 명했다.

이때부터 절에는 묘답(고양이 논) 또는 묘전(고양이 밭)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궁으로 돌아온 세조는 서울 근교의 여러 사찰에 묘전을 설치하여 고양이를 키웠고, 왕명으로 전국에 고양이를 잡아 죽이는 일이 없도록 했다. 최근까지도 봉은사 밭을 묘전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지금도 상원사에 가면 마치 이 전설을 입증하는 듯 문수동자상이 모셔진 청량선원 입구의 계단 좌우에는 돌로 조각한 고양이 석상이 서 있다.

고양이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 세조는 다시 상원사를 찾았다. 자신에게 영험을 베풀어준 도량을 중창하여 성지로서 그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서였다.

대중스님들과 자리를 같이한 왕은 상원사 중수를 의논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공양시간을 알리는 목탁이 올렸다. 소탈한 세조는 스님들과 둘러앉아 함께 공양을 들 채비를 했다.

“마마, 자리를 옮기시지요.”

“아니오. 스님들과 함께 공양하는 것이 과인은 오히려 흡족하오.”

그때 맨 말석에 앉아 있던 어린 사미승이 발우를 들더니, 세조의 면전을 향해 불쑥 말을 던졌다.

“이것아, 공양하시오.”

놀란 대중은 모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몸들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정작 놀라야 할 세조는 껄껄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도인될 그릇이로다.”

왕은 그 사미승에게 3품의 직을 내리고, 그 표시로써 친히 전홍대(붉은 천을 감은 허리띠)를 하사하였다. 아마 세조는 지난날 자신의 병을 고쳐준 문수동자를 연상했던 모양이다.

그 후 세간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귀하게 되라는 징표로 붉은 허리를 졸라매 주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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