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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상훈 칼럼
작성일 2017/08/21 (월) 20:51
ㆍ조회: 365   
작전명 에버-레디(Ever-ready)를 아십니까??
제목 없음

에버-레디(Ever-ready)는 6·25전쟁 중이던 1953년 5월 유엔군사령부가 극비리에 수립한 작전 계획이다. 중공군 격파 작전이 아니다.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를 붕괴시키고 이 대통령을 감금하는 작전이다. 

이승만의 피눈물 나는 대미(對美) 투쟁과 파국 직전의 한·미 갈등 끝에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51년 시작된 휴전 회담을 한국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국토와 국민이 결딴났는데 통일도 없이 분단된다는 것은 새 지옥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7만명 이상의 미군 인명 손실에 대한 국내 여론 악화와 막대한 전쟁 비용 때문에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이승만은 이대로 휴전이 이뤄지면 미군은 한국을 떠날 것이고 고립된 섬으로 남는 한국이 중·북·소련에 의해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아니더라도 일본 세력권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었다. 

미국이 그걸 원하고 있었다. 이승만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1953년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이승만 대(對) 미국'의 살벌한 갈등은 약소국이 살아남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한편의 교과서다. 

노르웨이 대사를 지낸 최병구씨가 지은 '외교의 세계'는 그 드라마 같은 3개월을 잘 기록하고 있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자 휴전 회담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이승만은 4월 22일  중공군의 북한 주둔을 허용하는 휴전 협정이 맺어지면 한국군은 유엔군에서 이탈해 독자적으로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클라크 주한 유엔군사령관은 이승만 보호 감금과 임시정부 수립을 미국 정부에 건의하기에 이른다. 

미 국무부까지 동조해 5월 에버-레디 작전이 수립된다. 

한국은 독자 전쟁이 불가능했다. 전쟁 유류가 단 2일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승만이 독자 전쟁을 선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한·미 동맹(상호방위조약) 체결이었다. 

그것만이 공산 세력과 일본의 재침을 막는 유일한 방패라고 보았다. 예지(叡智)였다.

미국에선 한국과의 동맹은 불필요하다는 견해가 다수였다. 한국은 가치 없는 나라였다. 

한국이 미국을 동맹으로 만들려면 '너 죽고 나 죽자'고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 국무부, 국방부, 합참의 합동 회의에서 격론이 이어졌다. 

5월 30일 이승만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외에는 6·25전쟁을 중단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에버-레디는 폐기됐다.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같은 날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친서를 보내 한·미 동맹을 맺으면 휴전에 동의하겠다고 했다. 

아이젠하워는 동맹이 아니라 미 정부의 '한국 방어' 성명과 군사 지원 행정 협정을 맺자고 했다. 

10억달러 경제 원조도 제시했다. 

이승만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조약'이 아니면 미국을 붙잡아둘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런 가운데 6월 8일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 송환 문제가 타결됐다. 

한·미 동맹을 못 얻었는데 휴전이 목전에 온 것이다. 

이승만은 6월 18일 3만5000여명 반공 포로 석방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다. 휴전 회담을 무산시킬 조치였다. 

이승만은 그 다음 날 주한 미 대사에게  "이것이 자살 행위라 해도 그것은 우리의 특권이다"고 했다. 

한·미 동맹 없이 휴전이 되면 자살도 불사하겠다는 결의였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을 '정신착란자'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승만은 굴하지 않았다. 아이젠하워에 편지를 보내 '한·미 동맹 없이 휴전되는 것은 한국에 대한 사형 집행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7월 9일, 휴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약속과 함께 한·미 동맹 조약 초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이승만이 어떤 행동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하워는 어쩔 수 없이 방위조약을 맺을 특사를 한국에 파견했다. 

그러나 미국 측 초안에는 '한쪽이 공격받으면 다른 한쪽이 자동 개입한다'는 동맹 조약의 핵심 부분이 없었다. 

이승만은 미 특사에게 한·일 합방과 한반도 분단에 대한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전쟁 참여는 행정부 아닌 상원의 권한이었다. 이승만은 우회로를 택했다. 

'한쪽에 대한 공격을 다른 쪽에 대한 공동 위험으로 보고 각자 헌법에 따라 행동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바로 그다음에 '미군의 한국 주둔'을 규정했다. 미군이 주둔하면 유사시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교 귀재의 발상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됐고 8월 8일 서울에서 한·미 외교장관이 동맹 조약에 서명했다. 

한·미 동맹은 국민의 피와 모든 것을 건 한 지도자의 필사적 투쟁으로 이뤄낸 것이다. 

이승만은 한·미 동맹으로 "우리 후손들이 여러 대에 걸쳐 갖가지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했는데 그대로 적중했다. 

한강의 기적은 한·미 동맹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에 힘이 없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많이 성장했으나 더 큰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한국의 지도자는 한·미 동맹사(史)를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201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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