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ung1.gif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베트남참전 유공자회

그리운 전우 찾기

베트남전쟁 참전수기

베트남전쟁의 영웅들

침묵의 살인마

STOP THE WAR

6·25참상

國會인터넷生放送 

國會議員홈페이지 

고 엽 제 란? 

고엽제 보고서 

  고엽제 후유(의)증 

  고엽제 등록절차 

  전국보훈병원안내 

  전국호국묘원안내 

tmp3512.bmp

dalma01.gif

역사의 현장

게시판은 건전한 사회문화의 흐름입니다. 본 사이트와 관련없는 글, 또는 타인을 비방, 욕설은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으며
또 이곳은 젊은 학생들이 학습자료 수집을 위해 많이 찾고있음을 유념하시기 비랍니다.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13/10/24 (목) 01:54
ㆍ조회: 2376   
아! 10.26...태산이 무너진 듯...강물이 갈라진 듯

  

[경제풍월/2012년 8월호]

불굴의 혼

태산 무너진 듯 강물 갈라진 듯

高正一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운명의 갈림길

가슴과 머리에 총탄 두 발을 맞고 중태에 빠진 박정희 대통령은 김계원 비서실장에 의해 경복궁 옆 국 군보안사령부와 붙어 있는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 숨이 완전히 끊어졌다. 병원에 도착하 자마자 군의관들이 인공호흡 장치를 사용하고 심장마사지도 실시했지만, 이미 사선을 넘은 그를 도로 이승으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돌발적 상황 발생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다음 장(章)으로 넘어가는 것이 역사의 냉혹한 속성이다. 박 정희라고 하는 한 시대의 주역이 갑자기 사라지자마자 대한민국 역사는 격렬한, 그러면서도 필연적인 과도기의 장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궁정동 본관 1층 식당에서 주인도 없는 객들만의 저녁식사를 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김정섭 중앙정 보부 제2차장보는 총소리를 듣고 밖에 나가보았다. 정승화는 청와대 외각을 지키던 어느 초소의 경비 병이 오인사격을 한 것이겠거니 짐작했고, 김정섭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는 안가 정문초소에 문 의전화를 걸어보는 정도였다.

두 사람이 식탁으로 돌아와서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있 을 때, 와이셔츠 바람의 김재규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들어온다.

“총장님, 큰일 났습니다.”

김재규가 헐떡거리는 소리로 외친다.

“아니, 무슨 일입니까?”

정승화가 눈이 뚱그래서 물었으나, 김재규는 다짜고짜 팔을 끌어당기며 자기 의전비서 윤병서를 보고 빨리 승 용차를 대라고 지시한다.

운전석 옆자리에 수행비서관 박흥주, 뒷좌석 좌우에 김 정섭 2차장보와 김재규가, 그리고 그 중간에 정승화가 끼어 앉은 모양새로 차가 궁정동 안가를 급출발할 때야 정승화는 자기가 ‘꼼짝없이 갇혔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불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김재규에게 묻지만, 대답은 그냥 ‘큰일 났습니다’였다.

김재규는 운전사 유석문한테 빨리 남산으로 가자고 재촉한다. 남산이란, 말할 나위 없이 중앙정보부 청 사를 지칭한 것이었다.

저녁 러시아워가 끝나갈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세종로 일대는 상당히 혼잡했다. 김재규의 차가 곡예 운행을 거듭해 청계천을 거쳐 삼일고가도로로 접어들 무렵, 비로소 냉정하게 자기 직위의 위엄을 되찾 은 정승화가 추궁하듯 강하게 묻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김재규가 오른쪽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고 양손 검지로 X표시를 해보인다.

“아니, 각하께서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그게 정말이오?”

깜짝 놀란 정승화의 추궁에 김재규는 딴소리를 한다.

“보안유지가 필요합니다. 북괴가 알면 큰일입니다.”

“어떻게 돌아가셨다는 거요?”

“저격당했습니다.”

“누가 한 짓입니까?”

“나도 정신없어 모르겠어요.”

“그런 대답이 어디 있소. 외부 침입입니까, 아니면 내부 소행입니까?”

“…….”

정승화는 직감적으로 경호실을 의심했고,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 무렵 차지철은 대통령의 묵인 아래 경호실 내에 정보대를 설치해 정치권·경제계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 손을 뻗치고는 본연의 경호업무보다 그쪽에 더 치중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야망을 의심하며 ‘저러다 큰일을 저지를 것이 다’ 하고 우려해온 터였다. 그날 밤 대통령이 사고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 정부요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즉각 차지철의 소행이라고 짐작했을 정도였다.

“그는 경호실 상황실에서 육군 예하 사단과 직통전화를 연결하여 지휘관들을 마음대로 불렀다. 자기가 육군참모총장이나 된 것처럼, 청와대 경비를 위해 나가 있는 수도경비사령부 부대에 들러 나팔을 불게 하고 하기식(下旗式)을 한 인간이었다. 그는 군에 뿌리를 박으려고 애썼다. 일부 장성들이 찾아가서 그 에게 알랑거리기도 했다. 나는 그의 배후에 이런 지휘관들이 개입하지 않았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 다.”

정승화가 나중에 자신의 회고록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고가도로가 남산 쪽과 서울역 쪽으로 갈라지는 지점을 앞두고 김재규가 앞자리의 박흥주에게 불쑥 묻는다.

“어디로 갈까? 부(정보부)와 육본, 어디가 좋겠어?”

정승화가 얼른 대답을 가로채 육군본부 벙커로 가자고 하고, 박흥주도 찬성한다.

그 행선지 변경은 두 가지 문제사항의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하나는 쿠데타 성공에 매우 필수적 요소인 지휘소 결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그날의 대통령 시해가 ‘막연한 계획의 즉흥적 결행’이었다는 증거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김재규 스스로 자기 몰락을 앞당긴 결정적 실수였다는 점이다. 그가 처음 생각대로 남산 중 앙정보부로 직행했다면, 그래서 정보부장 위상과 권위를 십분 활용해 각부 장관들을 남산에 불러들여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면, 자기 관할권인 궁정동 안가를 봉쇄하고 김계원을 압박해 상당기간 입을 막았다면, 친분이 상당한 정승화 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내세워 군의 동요를 막고 자신 은 아무것도 모르는 최규하 총리를 실권 없는 대통령에 승계시킴으로써 정권을 장악했다면, 역사의 물 줄기는 다른 쪽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다분했던 것이다.

육군본부 벙커에서

그때까지도 차지철이 살해된 줄도 모르고 그를 대통령 시해의 정범(正犯)으로 막연히 짐작하고 있던 정 승화 참모총장은 ‘안방’인 육군본부에 도착하자 비로소 자기 위상과 냉정을 되찾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맨 먼저 직속상관인 노재현 국방부장관한테 연락해 ‘비상사태 발생’이라고만 보고하며 육군본부로 나오 도록 촉구한다. 그런 다음, 비상사태 발생에 따라 명령이 떨어지면 정규전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하는 ‘부 엉이 둘(데프콘2)’을 서울 인근 예하부대에 발령하고, 수도경비사령부 등 차지철에게 동조했음직한 부 대의 지휘관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유도심문 투의 우회적 화법으로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그 결과 각 부대의 사정이 평상시와 다름없음을 알자, 비로소 안심이 된 정승화는 참모차장·작전참모부 장·정보참모부장 등 막료들을 소집한다.

밤 8시 30분. 노재현 국방부장관이 맨 먼저 달려온다.

“총장, 무슨 일이오? 정승화가 귓속말로 “각하께서 피격당하신 모양입니다” 하자, 노재현이 화들짝 놀란다.

“아니, 어디서?”

“청와대 만찬장에서 그랬나 봅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차실장인 것 같습니다.”

“그 인간이 끝내…. 돌아가신 거요?”

“그런 것 같습니다. 김 정보부장이 저기 와 있으니까 자세한 설명을 들어봅시다.”

이어서 전성각 수도경비사령관이 도착한다. 정승화는 부대 이상 유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대통령이 저격당했으니 밤에 청와대를 포위했다가 날이 새면 진입해 장악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전성각은 난 색을 보인다.

“우리가 포위하자마자 총격전이 벌어질 겁니다. 경호실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됩니다.”

“그럼 직접적인 접촉이 안되게 멀찍이서 포위 차단하시오. 이재전 경호차장이 당신하고 육사 동기지?”

“그렇습니다.”

“알았소. 내가 미리 전화를 걸어놓을 테니까.”

정승화는 즉각 청와대 경호실로 전화를 걸어 이재전 경호차장을 찾는다.

“이 차장, 나 참모총장 정승화요.”

“아 예, 총장각하. 어쩐 일이십니까?”

“단도직입으로 묻겠는데, 거기 분위기 어때요? 솔직히 대답해 봐요.”

“글쎄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 같아 뒤숭숭하지만, 청와대는 조용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 말을 듣고, 정승화는 경호실 전체가 조직적으로 가담한 사태는 아니라고 판단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수도경비사령부에 명령한 조치를 설명하고 동기인 전성각 사령관과 잘 협조해서 불 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한다.

그 상황에서 가장 초조하고 긴장한 인물은 말할 나위 없이 김재규 정보부장이었다. 그는 자기 행위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는 김계원 비서실장의 ‘입’이 걱정되었다. 급히 청와대로 전화를 건다.

“형님, 이쪽으로 오시오. 다 끝났는데, 거기는 뭐하러 갑니까? 여기 국방장관이랑 다 모였습니다.”

김계원은 그 말을 듣고 ‘이 작자가 각하를 시해하더니 육군총장을 감금해 군을 장악해서 혁명을 일으켰 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는 한 번 비튼다.

“총리 각하를 비롯해 내무·외무·법무장관이 지금 여기 와 계시니, 국방장관 모시고 청와대로 와요. 각의 를 열어야 하잖소?”

“안 됩니다. 지금 못 갑니다.”

그런 다음, 조금 강압적으로 말한다.

“총리 모시고 형님이 이리로 오세요. 노 국방께서도 나랑 같은 말을 하십니다.”

김계원은 일단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별도로 전화를 걸어 노재현 국방부장관과 직접 통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 노재현도 김재규와 같은 말을 하므로, 김계원의 ‘김재규 군부 장악’ 심증은 더욱 굳어지고 말았 다. 노재현은 노재현대로 진상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청와대가 차지철에 의해 장악되어 있구나’ 하 고 엉뚱한 오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밤 9시 30분. 힘의 균형이 육군본부에 가 있는 정보부장에게 쏠렸다고 판단한 최규하 국무총리·박동진 외무부장관·구자춘 내무부장관·김치열 법무부장관·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청와대에서 육군본부로 와서 벙커에 들어간다.

이 시점의 객관적 중요한 포인트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통령 시해범이 정보부장인 줄 비서실장의 이 야기로 이미 알았으면서 총리 이하 각부 장관들이 김재규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기만 했다는 것. 또 하나는 대통령 유고시에 자동으로 국가원수직과 국군통수권을 승계하게 되는 국무총리의 위상 에 합당한 경호조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본인 또한 그 사실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상황에 수동적으로’ 움직여주었다는 것.

벙커의 참모총장실에서는 곧 난상토론이 벌어진다.

김계원 : 대통령께서 유고이십니다. 총리 각하를 모시고 사태를 수습해야겠습니다.

구자춘 : 막연히 유고라고만 하지 말고, 내용이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보세요.

김계원 : 차지철 실장이 너무 강경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김치열 : 각하를 시해한 범인이 도대체 누굽니까?

김재규 : (초조하면서도 살기등등해서) 각하께서 이미 돌아가신 지금 시급히 필요한 것은 북괴 침공에 대비해 전방경계를 강화하고 비상계엄령을 발령하는 겁니다. 최소한 48시간 보안을 유지해야 되겠고,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김치열 : 그런 보안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치에도 어긋납니다. 미국에게 진실을 밝히지도 않고 어떻게 ‘데프콘2’니 북괴 남침 대비니 하는 소리가 먹혀들어가겠습니까? 그들은 그 막강한 정보력으로 이미 이쪽 일을 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박동진 : 김 법무 말씀이 맞아요. 미국에게 휴전선 경계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라도 사태를 빨리 통보해야 합니다. 우리가 설령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하더라도 그쪽 사회의 체질상 보안이 불가능 할 겁니다. 각하의 유고 사실에 대해 외국 언론이 떠들고, 그게 역으로 국내에 들어오면 국민들이 정부를 어떻게 보겠어요?

김재규 : (격앙된 목소리로) 난 김 법무의 의견과 생각이 다릅니다. 비상은 말 그대로 비상인데,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어디 있어요? 우선 계엄부터 선포해놓고 봐야 합니다. 밤 10시 30분. 벙커 안 국방부장관실에서 최규하 국무총리 주재로 비상각료회의가 열리고, 신현확 경 제부총리·김성진 문공부장관 등 나머지 장관들이 집에서 육본으로 직행해 합류한다.

최규하 : 계엄을 선포하는 이상 이유가 명확해야 합니다. 유고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각하의 서거라고 해야 할지, 의견들 들어봅시다.

김재규 : 부마사태도 있고 하니 국내 치안문제라고 합시다.

김계원 : 유고라는 정도까지는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각하의 유고로 인해 27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면 되겠지요.

김재규 : 유고는 안 됩니다. 국내 치안이 불안해서 계엄령을 선포한다고 해야 합니다.

최규하 : 데모가 난 것도 아니고 지금은 부산·마산도 조용한데,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대통령 서거를 어떻게 국민들한테 알리지 않는다는 거요.

김재규 : 왜 안됩니까? 고작 2~3일 간만 보안유지를 하자는 건데. 소련은 일주일 동안도 발표하지 않 았습니다.

김성진 : 이유를 명백히 밝히지 않는 계엄령 선포가 어디 말이 됩니까? 절대 안됩니다.

김재규 : (버럭 역정을 내며) 알만한 사람이 왜 이렇게 따지고 드는 거요?

신현확 : 김 부장, 유고의 내용이 도대체 뭐지요?

김재규 : 그건 밝힐 수 없습니다.

신현확: 다치셨소, 아니면 갑자기 병이라도 난 거요?

김재규 : 죄송합니다. 밝힐 수 없습니다.

신현확 : (화를 버럭 내며) 아니, 그런 말이 어디 있소. 내용도 모르면서 어떻게 비상계엄을 선포하느냐고. (김계원에게) 김 실장이 말해봐요. 당신은 각하와 늘 행동을 같이 하는 직분이니 아실거 아니냐고.

김계원 : 사실은 제가 각하를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신현확: 오, 그래. 지금 수술 중입니까?

김계원 : 아닙니다. 사실은 끝장이 났습니다. 별실에다 안치를 했습니다.

신현확 : 원, 세상에! 어쩌다 그렇게 되었지요?

김계원 : 사고인데, 저도 정신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김재규와 김계원이 계속 진상을 은폐하는데 분통이 터진 일부 장관들이 ‘보안은 무슨 놈의 보안이냐!’ ‘정말 돌아가셨는지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하고 들고일어나자, 최규하 총리가 분위기도 조정할 겸 육군 본부와 길 하나 사이로 이웃한 국방부 청사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서 국무회의를 속개하겠다고 선언한다.

김재규 체포되다

밤 11시 20분. 국방부에서 국무회의가 속개되기 직전.

김계원 비서실장은 전체적인 상황이 김재규한테 불리하게 전개되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자기가 도매금에 공모자로 몰릴 것 같은 불안감에 떠밀린 나머지 호젓한 장소에서 노재현 국방장관·국방 장관보좌관 조약래 준장·정승화 참모총장에게 ‘시해범은 바로 김 정보부장이다’ 하고 재빨리 사건 경위 를 귀띔한다.

노재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세상에!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김 부장을 체포해야겠는데, 저렇게 눈이 시퍼래 나만 노려보고 있으니…….”

“저놈을 당장 잡아야지.”

노재현은 정승화를 재촉한다.

“총장, 빨리 체포하시오.”

“예, 곧 잡겠습니다.”

정승화가 벌떡 일어나자, 김계원이 불안스러운듯 주의를 준다.

“조심해요. 김 부장이 권총을 갖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노재현이 묻자, 정승화는 일단 육본에 내려가서 적절히 조치하겠다고 대답한다.

“장관님은 여기서 모른 척 회의에나 참석하십시오.”

육군본부 벙커에 도착한 정승화 총장은 육군헌병감 김진기 소장을 불러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으로 김 재규 체포지시를 내린다. 그런 다음 육군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을 불러 지시한다.

“각하를 시해한 범인은 바로 김 정보부장이요. 바보 같은 김계원 실장이 조금 전에야 나한테 실토했어. ”

전두환은 깜짝 놀랐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내가 미쳤다고 터무니없는 소릴 하겠소? 지금 김진기 헌병감이 김 부장을 유인해 잡으려고 국방부로 갔으니까, 체포해오면 전 장군이 신병을 인수해가서 수사에 착수해요. 계엄령이 선포되는 대로 당신을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할 테니.”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로 이 장면이 역사 아이러니의 결정적 열쇠인 것이다. 정승화로부터 계엄령 아래의 합동수사본부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받은 전두환은 대통령 시해사건 당시 정승화가 궁정동 안가 본관에 있었다는 사실을 ‘김재규 공범’의 혐의증거로 삼아 소위 ‘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육군참모총장에다 계엄사 령관인 그를 전격 체포해 버린다.

1980년 4월, 스스로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직함으로써 정치적 격변기의 새로운 실력자로 급부상한 전두환은 초고속 승진으로 육군대장에서 예편한 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고 제5공화국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상황변화의 과정이 1980년 한 해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시 국방부 청사의 2층 장관집무실. 최규하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부 장관들이 김재규의 존재를 의식 하느라 명색 국무회의를 열지 못한 채 서성거리고 있을 때, 국방장관보좌관 조약래 준장이 들어와서 김 재규한테 허리를 굽히고 귓속말로 전한다.

“부장님, 정승화 총장께서 육본에서 조용히 뵙자고 하신답니다.”

“그래?”

“총장비서실장이 와서 밖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동지’라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정승화와 어떤 조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김재규는 두말없 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약래를 따라 장관접견실을 통해서 평소 사람의 발걸음이 뜸한 다른 쪽 복도로 나가자, 헌병감 김진기 준장·보안사령부 오일랑 중령·국방부 헌병중대장 이기덕 대위가 대기하고 있다 가 김재규를 호위하고, 미리 배치되어 있던 헌병들이 정보부장 근접경호원둘의 동행을 차단한다.

김재규는 ‘아뿔싸!’ 하고 후회했지만, 애써 의연한 태도를 견지하며 뒤뜰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짐 짓묻는다.

“왜 이쪽으로 가나?”

“이건 요인들 전용 통로입니다. 최 총리 각하께서도 이쪽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오일랑 중령이 임기응변으로 둘러댄다.

외등 하나 없는 캄캄한 청사 뒤뜰에는 승용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고, 차 안에는 헌병 두 명이 미리 타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는 김재규를, 오일랑과 이기덕이 차 속으로 밀어넣는다.

“죄송하지만 무장을 해제하겠습니다.”

“알았어. 내가 주지.”

김재규가 자기 바지 오른쪽 호주머니로 손을 뻗어 권총을 꺼내려는 순간, 오일랑과 이기덕이 번개같이 낚아챈다.

대통령 시해를 클라이맥스로 하는 쿠데타 계획과 실행 자체가 즉흥적이고 치밀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가기 위해 진행되는 체포작전에 그처럼 어수룩하게 순응한 김 재규. 그것이 인간 김재규의 진면목이자 한계가 아니었을까.

10월 27일 새벽 2시. 국방부 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는 『헌 법』이 정한 국가원수 승계순위 원칙에 따라 최규하 국무총리를 대통령권한대행에 옹립하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일원에 비상 계엄을 선포함과 아울러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했다.

바야흐로 역사의 새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초인적 영웅이 마지막 떠나던 날

1979년 11월 3일.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임시공휴일로 정한 그날은 7일간의 국장(國葬)으로 치러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일이었다.

그날 수도권 일원에는 장례의 의미를 더하려는 듯 상당히 짙은 안개가 끼어, 가시거리가 300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오전 9시 25분. 박정희의 영정을 모신 선도차를 앞세운 국장행렬이 청와대 동문을 나설 때, 고인의 나이에 맞춘 62발의 조포가 발사되었다. 영결식장인 중앙청 광장으로 향하는 운구차 앞쪽 중앙에는 육군 사관학생 정복차림인 상주(喪主) 박지만 생도가, 그 좌우에는 박근혜와 박근영 두 영애가 소복차림으로 나란히 앉아 있었으며, 국화로 뒤덮인 운구차 양옆의 대형 유리창을 통해 태극기에 덮인 채 중앙에 안치된 대통령의 관이 밖에서도 들여다보였다.

운구차 뒤에는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백두진 국회의장·이영섭 대법원장 등 삼부요인을 비롯해 친족들· 장의위원·청와대 직원 등 1000여 명이 200미터나 행렬을 이루며 숙연히 뒤따랐다.

중앙청과 정부종합청사 주변에는 새벽 4시 통금이 해제되자마자 시민은 물론 각지에서 올라온 조문객 들이 연도에 자리잡기 시작해, 오전 9시쯤에는 일대가 빽빽이 들어찬 애도인파 때문에 발을 디딜 틈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운구차가 청와대 동문을 나와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며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했다.

오전 9시 53분. 운구차가 중앙청 동문으로 들어서자, 약 2000명에 이르는 국내외 영결식 참여자들은 일제히 기립해 마지막 떠날 대통령을 맞이했다. 운구차는 3군 사관생도들의 선도로 3군의장대가 도열 한 영구식장으로 들어섰다.

10시 정각. 영결식 개식선언과 함께 전국에 걸쳐 1분간 사이렌이 울리고 모두들 묵념하기 위해 고개 숙 여 눈을 감았을 때, 돌연 하나의 불가사의한 이적(異蹟)이 일어난다. 당일 날짜 동아일보 기사가 그 장 면을 아주 분명하게 묘사해놓았다.

짙은 안개에 덮인 중앙청 영결식단 5개의 분향대에는 향이 피워지고, 노랑 흰색 자주 국화송이로 둘러 진 고인의 영정 좌편에 지만생도·큰영애·작은영애의 순으로 유족들이 앉았다.

고인의 유해가 영결식장에 서서히 들어서면서부터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조악이 더욱 장내분위기를 숙연하게 했고, 김창식 총무처 소청심사위원장의 개식사로 식이 시작되자, 짙은 안개 틈으로 얼굴을 내민 햇살이 고인의 영정을 밝게 비추었다.

신현확 경제부총리는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다가 “영부인을 잃은 흉탄 속에서도 의연했던 고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는 구절에 이르러 목이 메어 말끝을 흐렸고, 장의위원장인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조사에서 “아직도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하실 일이 많은데 각하 자신마저 가셨으니 이 얼마나 망극한 일입니까.……이제 영부인 곁에서 고이 잠드소서”라며 울먹일 때는 영결식 온 장내가 울음바다로 변 해 버렸다.

최규하 권한대행이 고인의 영정 앞에 분향재배하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봉정할 때는 참석자들이 전 원 기립해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장엄한 조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인의 유덕을 기렸다.

이날 영결식에는 사일런스 밴스 미국국무부장관·다위 출라사피아 태국 부수상 등 47개국 공식 조문사절이 참석했고, 모두 하루이틀 전에 방한한 다른 나라 사절들과 달리 당일 참석으로 스케줄을 잡았던 일본의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과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는 짙은 안개 때문에 탑승기의 김포공항 착륙이 불가능해 부득이 일본 후쿠오카로 날아갔다가 영결식이 끝난 뒤에야 겨우 되돌아와 국립묘지 안장식에만 참여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앙청에서 종로 네거리·시청앞·서울역·삼각지·한강 인도교·국립묘지에 이르는 약 10㎞ 연도에는 이른 아침부터 대부분 검은 예복과 소복을 입고 전국에서 모여든 200만 조상객이 줄을 이었고, 거리 양쪽으 로 조기가 드리워진 채 거의 철시한 상태였다.

길거리 요소요소에는 확성기가 설치되어 조악과 박정희 대통령의 생전 육성을 수시로 흘려보냈고, 고 인의 육성에 숙연히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운구행렬이 지나갈 때 나이어린 세 유족을 바라보며 울음 을 터뜨리기도 했다.

행렬이 한강로 삼각지 로터리를 지날 무렵에는 미제8군 장병과 군속 등 400여 명이 정복차림으로 도열 해 거수경례를 하며 우방국 원수에 대한 조의를 표했다.

묘지가 마련된 국립묘지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새벽 4시 통금이 풀리자마자 모여들기 시작한 조객들 은 출입이 허용된 일반묘역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국장행렬을 지켜보았고, 하관(下棺)할 때는 하나같이 흐느끼며 머리 숙이거나 합장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모습들이었다. 이들은 안장식에 참석한 귀빈들 이 모두 서문을 통해 퇴장한 다음, 묘소까지 올라와 분향까지 하고서야 비로소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서울에서만 그렇게 대단했던 것이 아니라 지방도 마찬가지였다.

‘10.26사건’의 도화선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는 부산에서는 영결식이 시작되는 오전 10시 정각 시내 4 개 소방서와 9개 경찰서가 일제히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했고, 부산항에 정박하고 있던 선박 700여 척의 고동소리가 이내 뒤따랐다. 상가들이 대부분 철시한 가운데 길 가던 시민들은 그 소리에 멈춰 서서 묵념을 올려 고인의 명복을 빌었고, 달리던 차량들도 일제히 정지해 운전사와 승객이 함께 고개숙여 묵 념을 올렸다.

인천에서는 온 시장과 일반상가가 문을 닫은 가운데 영결식 또는 장례행렬을 먼발치에서나마 보려는 시민들이 서울로 가려고 새벽부터 너도나도 나서는 바람에 동인천역·제물포역·주안역 등 지하철역들이 임시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몸살을 앓아야 했다.

대전에서도 일반 시장과 백화점뿐 아니라 다방과 식당 등 온 상가가 조기를 내걸고 철시한 가운데 시민들은 텔레비전 생중계로 영결식과 운구행렬, 안장식 장면을 줄곧 지켜보았다. 행인의 발걸음이 뚝 끊어진 거리에서 운행을 멈추고 아무데나 주차한 일부 택시들 속에서 운전사들은 하나같이 맥이 빠져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는 국장 실황중계를 듣고 있었다.

부끄럼을 타는 소박한 인간미의 소유자 박정희, 그는 적어도 1979년 11월 3일 이날만은 혹시 그를 미워하고 적대하던 사람들의 가슴에조차 푸른빛 슬픔을 물들여놓았다. 시대의 영웅이었고 초인이었던 그는 그렇게 만인의 곁을 떠나 진정으로 사랑한 아내의 곁으로 돌아간 것이다.

세계인물 박정희를 기리며

한국인으로서 생전의 박정희만큼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찬사와 존경의 대상이었던 인물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쪽에 무게를 두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국에서 정부 차원의 공식 조의 표명이 몰려들었고, 자체적으로 빈소를 차린 각국 주재 한국대사관과 총영사관에는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1979년 11월 22일 한국외무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박정희 서거 이후 11월 19일까지 재외공관에 접수된 조의 규모는 빈소 방문객 3만 3742명, 조의전보 289건, 조의편지 349통, 조의전화 118회, 조화 224매, 추도식 및 추도예배 51회 등이었다.

각국 정상들의 추모 소감도 안타까움과 아쉬움 일변도였다.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 : 박 대통령은 미국의 확고한 친구이자 협력자였다. 그가 한국 경제를 놀라울 만큼 발전시킨 역할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수상 : 박 대통령은 1960?70년대를 통해 우수한 지도력으로 한국의 발전을 이끈 인물이며, 한일 우호관계 증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 : 한국을 방문하고 떠나오면서 박 대통령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박 대통령 서거는 한국국민에게 커다란 손실이다. 한국의 경제적·사회적 발전이 계속되길 희망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 박 대통령의 역동적 리더십은 한국국민에게 아시아의 경제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능력과 열망을 불어넣었다. 그의 통치기간에 이룩한 한국의 발전은 제3세계 국가들 에게도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람굴람 모리셔스 수상 : 박 대통령이 이끈 한국의 경제적·사회적 발전은 개발도상국들에게 기념비적 사 건이었다.

톨버트 라이베리아 대통령 : 박 대통령은 한국의 중대한 경제발전과 제3세계 국가들간 협력을 증진시 켰다. 그의 부재는 아시아 및 세계의 손실이다.

한편, 멜리 주한터키대사는 한국에 주재하는 외교사절단을 대표해서 당시 어린 나이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해온 박근혜에게 ‘당신의 추앙받는 아버지인 박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에 심심한 애도를 표 하며, 박 대통령에 대한 외교사절 및 외국인 사회의 애도가 큰 위로가 되길 바란다’는 조문전보를 보냈다.

나라 안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추모열기와 상관없이 휴전선을 경계로 한 한반도의 하늘과 땅과 바다에 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국정부가 일찍이 발령한 ‘데프콘2’에 따른 철통같은 군사적 경계태세가 지속되고 있었으며, 8만 톤급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모선으로 한 미국제7함대 항공모함전단이 서 태평양 해역에서 재빨리 북상해 동해 해상에서 북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조시와 진혼가

인간 박정희와 오랜 친구로 지내온 시인 구상은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나사렛 예수』를 집필하다가 그의 서거 소식을 듣고 애끓는 슬픔으로 다음과 같은 조시(弔詩)를 썼다.


정부는 1979년 10월 31일 다음과 같은 ‘박정희 대통령 조가(弔歌)’를 공식 제정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영전에〉

이은상 작시, 김동진 작곡

  1. 태산이 무너진 듯 강물이 갈라진 듯
    이 충격 이 비통 어디다 비기리까
    이 가을 어인 광풍 낙엽지듯 가시어도
    가지마다 황금열매 주렁주렁 열렸소이다
     
  2. 오천년 이 겨레의 찌든 가난 몰아내고
    조상의 얼과 전통 찾아서 되살리고
    세계의 한국으로 큰 발자국 내디뎠기
    민족의 영도자외다 역사의 중흥주외다

  3. 자유와 평화통일 그게 님의 이상과 소원
    착한 국민 되시라고 억센 나라 만들다가
    십자가 지신 오늘 붉은 피 흘리시다
    피의 값 헛되지 않아 보람 더욱 찾으리라

  4. 육십년 한평생 국민의 동반자였고
    오직 한결 나라사랑 그 길에 몸 바친 이여
    굳센 의지 끈질긴 실천 그 누구도 못 지울 업적
    민족사의 금자탑이라 두고두고 우러러보리라

  5. 우리는 이 아픔 이 슬픔 딛고 일어서
    끼치신 뜻을 이어 어김없이 가오리다
    몸부터 편히 쉬시고 이 나라 수호신 되어
    못다한 일 이루도록 큰 힘 되어 주소서
이름아이콘 베드로
2013-10-24 12:34
박정희 대통령님을 존경합니다.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일으키시고, 세계 대열에 서게 하시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신 보람으로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인정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아직도 이 나라 대한민국은 가난한 나라, 헐벗고 굶주리는 나라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북괴의 김일성의 제 2의 남침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천국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해 주실 때입니다.
종북좌파세력들은 대한민국을 북괴에게 받칠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나라가 어수선한 이 때에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시고, 강한고 담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대한민국 내의 악한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고,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는 대통령이 되게 도와 주소서,
서현식 내일 모래가 10.26입니다.
인터넷 쇼핑릏 하다가 위의 내용을 발견하고 가신님을 기리는 뜻으로 게시하였습니다.
10/24 14:47
   
이름아이콘 운영자
2013-10-24 20:39
본 내용은 결국 저자의 책을 광고하는 내용이겠으나 전우여러분의 관심이 클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리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대한민국 이땅에서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그리고 진정 10.26을 맞이하면서 님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게시했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저절로 눈물이 나네요...
   
이름아이콘 하수
2013-10-25 11:43
박정희 대통령은 신이 이 나라에 보내주신 축복입니다 . 오로지 그 어른만이 세계의 가난뱅이 나라국가였던 이 나라를 이렇게 부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뻘짓'하는 무리들이 그분의 공을 폄하려고 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어르신에 대한 추모의 정은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깊어져 중천에 뜬 태양처럼 빛이 나 천년 만 년 세세토록 이 겨레붙이들에게 추앙을 받을 것입니다. 내일 10.26을 하루 앞두고 어르신에 대한 추모의 정이 사무쳐 가슴이 저려옵니다. 어르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편히 쉬소서.
서현식 이 책을 많은 젊은이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10/25 15:42
   
 
  0
1000
윗글 과연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를 한국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사항
아래글 核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와 朴正熙

역사의 현장

게시판은 건전한 사회문화의 흐름입니다. 본 사이트와 관련없는 글, 또는 타인을 비방, 욕설은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으며
또 이곳은 젊은 학생들이 학습자료 수집을 위해 많이 찾고있음을 유념하시기 비랍니다.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40년 지방은행에 예치된 '박정희 계좌' 비밀은 운영자 2017-10-05 21:25
박정희 大統領과 김병희 博士 전광섭 2012-01-17 06:06
과연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를 한국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사항 2 박민식 2014-01-22 03:32
아! 10.26...태산이 무너진 듯...강물이 갈라진 듯 5 운영자 2013-10-24 01:54
核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와 朴正熙 2 운영자 2013-09-25 21:48
한국인 이면 누구나 꼭 봐야 할 글<대통령에게 드리는 건의> 9 jang40 2010-03-26 10:50
파병과 관련한 브라운 각서내용 (영상과 문서) 2 서현식 2011-06-11 03:37
브라운 대사와의 氣싸움(브라운각서의 동기와 배경) 2 김경만 2013-02-19 15:36
558 Never such a thing and here again JamesDeefe 2019-04-29 21:10
557 JP, 그의 삶은 허업이었나 [임철순] 엉터리전도사 2018-06-27 02:20
556 비목(碑木) - 그 숨은 이야기 운영자 2018-06-22 02:02
555 [ 박정희 대통령 야화 ] 운영자 2018-04-25 21:49
554 《역사의 鑑戒(감계)》 양성목 2018-04-16 06:49
553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옮긴글) 큰돌맹이 2018-04-15 00:11
552 종신집권 여는 혁명가의 아들, 시진핑 60년 탐구생활 엉터리전도사 2018-04-04 11:03
551 2월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입니다. 운영자 2018-02-11 11:07
550 ◈그옛날 그시절의 우리들의 생활상◈ 박민식 2018-01-26 17:58
549 청송 沈씨-반남 朴씨 600년 원한 운영자 2018-01-23 12:22
548 사쿠라와 민들레의 얽힌 이야기(實話) 임진강 2018-01-11 09:11
547 ◈그옛날 세계의 추억어린 자동차들◈ 운영자 2018-01-02 23:58
546 ◇실록으로 본 朝鮮의 기이한 기록들◇ 운영자 2017-12-30 00:13
545 술고래'였던 世祖 이야기 운영자 2017-11-16 22:38
544 술고래'였던 世祖 이야기 임진강 2017-11-16 22:35
543 이승만 대통령은 독도 등대 점등식을 세계에 공개했다 이강성 2017-10-04 15:56
542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올린다니, 제정신인가! 김진화 2017-10-04 14:34
541 [기획특집] 공수부대가 체험한 광주 5·18 운영자 2017-09-12 00:36
540 6.25 당시 한국의 노점상들 임진강 2017-08-27 23:16
539 작전명 에버-레디(Ever-ready)를 아십니까?? 양상훈 칼럼 2017-08-21 20:51
538 1900년대 전후의 한국 임진강 2017-08-16 09:25
537 "박정희"가 한게 뭐있냐~? 박민식 2017-08-07 17:59
536 대한민국의 두 영웅 박민식 2017-08-02 23:48
535 생도송(生徒頌)| 운영자 2017-07-30 05:28
534 탄생 100주년]한 눈으로 보는 박정희 대통령 생애와 업적 송영인 2017-07-30 01:39
533 2차대전 중 양측 병사들 모두에게 애창된 노래 Lili Marlene과 Marlene Dietrich 엉터리전도사 2017-07-12 02:58
532 김동길 교수님 말씀 운영자 2017-07-08 13:38
12345678910,,,17

mailbox_red.gif

vietnamwar@naver.com

Copyright (c) 2002 www.vietnamwar.co.kr All rights reserved.
 
Contact vietnamwar@naver.com for more information .

cellularphone03.gif

010-3720-8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