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베트남 전쟁의 양상과 한국군 작전의 교훈

(박경석)

 

1.  무기 없는 전쟁

 

포성과 총성이 울려 퍼지는 월남전에서 일방 무기 없는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 주체는 말할 것 없이 호치민에 의해 계획되고 지휘되는 월맹과 베트콩으로 또 다른 전투의 양상이었다.

월맹의 지도자 호치민은 공산주의자이면서 항상 자기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민족주의자임을 내세운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월남인의 마음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에서 위장하는 수법이다.

많은 월남인들은 공산주의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영향 하에 오랜 세월을 살다보니, 자유에의 동경이 생긴 탓도 있자만 그들의 보수적인 관습상 통제적이고 틀에 박힌 통치를 받기 싫어하는 개성 탓이다.

"당신은 프랑스의 지배를 원합니까? 공산주의자의 지배를 원합니까?"

이러한 질문을 자유월남인에게 한다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우리는 남에게 지배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후자보다는 전자를 택할 것입니다."

이러한 월남인의 생각을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호치민이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인 월맹이며 베트콩인 것이다.

그들은 월남인의 마음을 돌리는 길은 바로 공산주의를 내세우는 것보다 국민감정을 달콤한 말로 회유하는 길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회유하는 방법이 무기를 가지고 전투를 하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중요시되면서 월남인 속에 파고들고 있었다.

더구나 월남의 자연조건과 다수 종족에 의한 이질적인 사회구조, 그리고 종교 및 식민지 생태 등의 여러 가지 취약성은 공산주의자의 침투를 용이하게 하였으며 그들이 기생(寄生)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민전쟁이라는 침략수단으로 농민을 포함한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전투력화 함으로써 적과 농민을 구별할 수 없는 혼미상(混迷相)을 띄우게 하였다.

즉 그들은 월남 전지역의 주민 속에 침투하여 게릴라 행동을 위주로 한 비정규전을 전개하면서 하부조직의 확대를 계속 획책하여 월남의 전지역을 사실상 전선 없는 전장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월남전은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군사의 여러 문제와 국제정세가 서로 얽혀 점점 복잡하여졌다.

또한 장기간 베트콩에 의하여 침식된 지역이나 격리된 취약지역 주민들은 자의나 타의를 막론하고 베트콩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적지역을 점거하였다고 하여 곧 승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군사전략가들은 이 점에서 크게 잘못 판단하였다.

군사작전을 통한 적의 섬멸과 지역점령이 곧 승리로 되어 있는 전쟁의 통념을 벗어날 수 없었던 미국은 확전을 하면서 많은 군사력을 집중하면 월남전이 마무리될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뒤늦게 깨달은 주월미군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월남에서의 모든 작전의 우선 순위는 심리전, 정보, 대민사업, 그리고 끝으로 군사작전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월남의 전지역이 베트콩과 그들의 추종세력에 의해서 불그레하게 물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물론 보통의 군사 상식을 가진 사람이나 이러한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월남에 와서 보면 어렴풋이 총칼 없는 전쟁의 위력을 깨닫게 된다.

역사적으로 더듬어 볼 때, 월남은 오랫동안 외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장기간의 전쟁으로 주민들은 지칠대로 지쳐버려 포성과 총성이 들려와도 그저 무표정한 태도를 보인다.

이들이 문제삼는 것은 오로지 하루하루의 삶을 위해 빵을 얻는 데 있으므로 주의나 사상에는 무관한 듯하다.

따라서 미국이나 월남정부 당국자들이 주는 쌀이나 구호 품을 받을 때만은 고맙게 생각하다가 밤이 깊어지면서 베트콩이 들이닥쳐 그들을 꾀면 어제의 우방이 곧 적으로 둔갑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월남전에서는 군사작전과 병행하여 베트콩과 주민을 효과적으로 분리하는 데 심리전을 전개하여야 된다는 필요성이 점차 높아져 갔던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미군, 월남군 등 연합군보다 심리전에 대한 중요성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며 보다 효과적으로 월남인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월남이 오랜 세월 다른 민족에게 지배를 받는 동안 편협된 민족관념을 지니게 되고 안일한 일상생활을 추구하다보니 그 부산물로서 부정과 부패가 도처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외국의 지배에 넌더리가 난 월남인은 미국의 식량과 담요나 생활필수품은 좋았지만 미국인들은 싫어했다.

그래서 국민성향은 배타적인 쪽으로 깊어만 갔다.

이러한 현상은 공산주의의 침식을 더욱 용이케 한 요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른바 혁명전쟁이라는 기치 밑에 월남의 특수성이 편승한 심리전에 혈안이 된 전투형식으로 나타나게 하였다.

또한 그들은 심리전 가운데에서도 특히 대민심리전을 중요시하였다. 즉 월남주민을 '물'로 보고 게릴라전을 능사로 하는 그들 자신을 '물고기'로 비유하듯이, 피차에 있어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내세워 선량한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우리는 물고기입니다. 여러분은 물입니다. 여러분이 없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으며 여러분의 도움 없이 우리의 침략자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평범한 월남인은 이것을 진실로 믿고 따랐다. 이러한 베트콩의 심리전 기구는 월맹 노동당의 지령에 따라 행동하는 공산당 특유의 조직으로 되어 있으며, 중공측의 군사고문으로부터 지도 받는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또 그들은 말단조직체 내에서의 심리전의 효과를 중요시하여 면지회(面支會, Village Chapters)에 28명으로 구성된 선전교리과를 두고 있으며 이와 같은 편제가 군(郡)에는 6명, 성(省)에는 45명으로 각각 구성되어 있었다.

베트콩은 이러한 기구를 통하여 월남에서의 미군 철수를 선동하고 반미사상 주입에 열광하면서 미국과 월남의 이간을 획책한바,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조직과 거점을 확보하여 사회적, 정치적 불안을 한층 격화시키며 게릴라 요원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이른바 해방지역의 조직을 확대하여 지역 내의 주민을 전투에 이용하며 외국군의 철수를 선동하였다.

둘째, 그들이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민족주의를 내세워 월남국민으로 하여금 그들의 혁명행동이 합법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였다.

셋째, 월남정부에 대체할 지하정부가 각 행정단위로 침투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하정부 조직체의 일환으로 각 면, 군, 성의 행정간부들을 임명한 뒤 책임지역 부근의 접근하기 곤란한 정글이나 산악지대에 기거하면서 상황의 진전에 따라 주민들을 포섭하게 하였다.

이와 동시에 월남정부가 통치하는 지역을 야간에 장악하다가 최종단계에 이르러 행정기관을 점령하여 실질적으로 그 지역을 장악하였다.

넷째, 그들의 방해자를 철저히 제거하는 한편 이에 협력하는 사람에게는 보상을 하고 방해자는 가차없이 죽였다.

이른바 인민재판의 설치를 공표하고, 혁명군의 이름으로 베트콩 경고문을 작성하여 살포하는 동시에 월남정부에 충실한 주민을 살해하고도 오히려 이를 정당한 행위라고 내세우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주민의 자유의사를 탄압하였다.

다섯째, 투쟁기간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다양한 행동과 병행하여 최종의 승리는 혁명전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승리를 대대적으로 날조 선전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한편 월남국민들에게 우방군에 대한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도록 선동하였다.

여섯째, 월남정부의 약점을 들추어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를 불신임하도록 꾀하는 한편 연합군의 사소한 민간인에 대한 사고를 침소봉대하여 악선전하고 심지어는 전혀 근거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과대 선전함으로써 월남국민과 연합군과의 이간을 일삼았다.

일곱째, 월남주민과 정부 및 군기관 등의 공인된 단체 내에 은밀히 침투하여 베트콩 하부조직과 공산당 책임간부로 하여금 비밀세포를 장악하게 하였다.

상기와 같은 심리전을 전개함에 있어서 전단과 방송을 그 매개물로 이용하였는데, 전단은 현지의 잠복지역에서 제작한 것과 성당위원회(省黨委員會)에서 제작한 특수전단을 제외하고는 공산당 남부월남 중앙국 내의 작가와 연예인으로 구성된 '문화 및 예술위원회'에서 원고를 작성한 뒤 월맹정부의 인쇄지원을 받아 제작하였다.

그리고 전단에 기재된 내용은 살포대상에 따라 달랐는데 대상별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월남군에 대하여

1. 반전반미(反戰反美) 투쟁의 선동

2. 베트콩에의 가담선동

3. 베트콩정부 수립에의 동조

4. 귀향 및 귀향 후 국민혁명 참가의 선동

5. 동족간의 전투중지를 호소

 월남민간인에 대하여

1. 징병 반대 선동

2. 정부 관공리의 부정부패 폭로

3. 행정요원 제거 선동

4. 혁명대열 참가호소

 미군에 대하여

1. 침략자라는 낙인

2. .죽음에 대한 공포감 조성

3. 미국내의 반전운동 내막 폭로

4. 본국내의 부모 및 처자식에 대한 애정 상기

 한국군에 대하여

1. 북한 공산집단의 정책내용에 대한 선동

2. 파월정책 비난

3. 한국, 미국, 월남에 대한 이간

4. 김일성 우상화 선전

한편 이러한 전단을 베트콩들이 마을에 은밀하게 침투하여 살포하거나 마을주민, 특히 행상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전달하는 방식을 취했다. 살포장소는 주로 작전지역과 출입 예상지역 및 도로변과 가옥근처 등 비교적 발견되기 쉬운 곳을 택하였으며 모두 지상살포수단에 의존하였다.

이밖에 베트콩의 심리전을 지원하는 국가로는 중공과 소련 및 북한 등이 있으며, 다른 공산국들도 남부월남에서의 베트콩을 합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들을 도왔다.

또한 그들은 북경과 하노이, 그리고 모스크바의 방송망을 통하여 전 세계 및 현지의 심리전을 고무하였는데, 특히 북한 공산집단의 심리전 방송은 비둘기부대가 도착하면서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북한은 하노이 방송을 통하여 반미선전을 비롯하여 날조된 북한소식과 왜곡된 한국소식 및 월남전의 역선전, 그리고 향수심을 일으킬 수 있는 문학작품의 낭독과 민요·동요 등을 방송하였다. 한편 맹호사단 도착 직후인 1965년 12월 1일부터 하노이 방송을 이용하여 우리말 방송을 매일 2회 실시하였는데, 이것은 사이공에서 파월한국군을 위하여 실시하는 아군 방송보다 더 강한 출력의 전파를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집요한 베트콩의 심리전에 놀아난 대상은 다름 아닌 월남민간인과 월남군인들이었다.

기나긴 전쟁, 그로 인한 경제파탄과 사회혼란, 그리고 부정부패가 만연되면서 일확천금의 정상배가 판을 치자 선량한 시민들은 이를 저주하고 이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이때 베트콩들은 심리전을 전개하면서 정부 고위장성과 고급공무원의 축재사실을 몇 배, 아니 몇 십 배로 과장하여 선전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부패정부를 위하여 죽느니 차라리 베트콩이 되겠다고 나서는 청년 학생들이 늘어났다.

월남군인은 군인대로 진급과 보직운동에 돈을 뿌리게 되면서 공금횡령과 부하로부터의 착취 및 뇌물수수 등으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월남군인이 진주하는 주변도시나 촌락은 이들에 의한 민폐로 주민들은 월남군인을 기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월남군부는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베트콩들은 심리전을 통하여 반전(反戰)운동을 고무하면서 월남군과의 접선을 끈질기게 시도하고 있었다.

여기에 현혹된 일부 군인은 베트콩과 몰래 손잡고 양다리를 걸치는 신세가 되었으므로 자연히 월남군과 연합군의 기밀이 베트콩 측으로 흘러 들어갔다.

가령 연합작전을 위하여 공격목표를 정한 후 작전회의를 하고 다음날 공격하면 목표지역에는 베트콩은 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는 현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들이 월남군의 제보에 의하여 연합군의 공격 전에 도피해버린 탓이다.

심지어 월남군 장병간에도 입으로는 국가에의 충성을 부르짖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생겨갔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호치민을 실질적인 민족의 지도자로 추앙하는 가 하면 월맹의 국방상 보구엔지압 장군을 위대한 전략가로 찬양하기까지 했다.

이는 베트콩의 심리전에 의한 영향도 영향이려니와 그보다 월남정부 고위층의 부패와 권력투쟁에 염증을 일으킨 국민의식 탓도 있음은 중요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군 또한 베트콩의 심리전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반전사상(反戰思想)의 확산으로 나타났다. 미국군인들은 월남전쟁의 참전 경험자치고 월남전에 대해 비판적이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로 미국의 대 월남정책을 비난했다.

"왜 우리가 월남에서 죽어야 하느냐? 월남인 자신도 우리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데 우리가 이들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다니……."

많은 미국군인들이 회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월남에서의 군복무를 보람 없는 군인생활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전형적인 직업군인인 웨스트포인트 출신장교들은 월남전을 자신들의 군사경력을 위한 실습장 정도로 생각하면서 충실히 자신들의 의무를 위하여 책임을 다하였다.

그런데 베트콩의 심리전에 대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집단이 있었으니, 그것은 한국군이었다.

이미 고국에서 북한공산집단의 맹랑한 허위선동을 들어왔던 한국군은 그들의 심리전이 너무나 유치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예를 들자면 김일성의 우상화 선전의 경우 그것은 오히려 웃음거리로 여기게 되었고, 북한이 행복한 생활을 누리는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할 때는 믿을 수 없는 넌센스로 웃어 넘겼다.

그리고 한국군의 특징은 자진해서 파병된 의욕에 넘치는 군인들이고 보면 월남전 참전에 대한 목적의식이 뚜렷하게 서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해외에 파병, 우방을 돕는다는 자긍심에 차있었고 전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직업군인은 군사경력의 확충을 보람으로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트콩은 이러한 상황을 포착하고도 한국군에 대한 심리전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었다.

이것은 한국군에 대한 어떤 효과를 노리는 것보다 미군이나 월남군 또는 월남민간인에게 한국군에 대한 이미지를 구기게 함으로써 한국군을 월남에서 고립시켜 보자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군 파병에 대한 월남국민의 거부반응을 확대함으로써 급기야 '한국군 물러나라'는 국민감정의 폭발을 노리고 있었다.

전장에서는 부득이 민간인이 죽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작전상황에 따라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양민을 사살하는 경우가 생겼다. 더 심할 경우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상관이나 전우의 죽음을 보고 민간인인 줄 알면서 사살하는 사고도 때로는 발생한다.

이러한 사고는 불행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전장에서나 있는 일이다. 더구나 베트콩은 정규군처럼 당당히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 속에 섞여서 주로 테러 행위를 전문으로 하는 무장집단이고 보면 민간인에 대한 사고를 없애기란 힘든 일이다.

한국군에 대한 심리전 목표는 바로 이런 경우 부상된다.

양민학살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군에 대하여 항의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대민선전용으로 삼고 심지어는 하노이를 통하여 세계 여론에 포악무도한 학살을 일삼는 한국군이라고 생떼를 부려가며 모략선전에 쓰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한국군에 대한 베트콩의 심리전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음은 한국군의 정신무장을 알게 하는 증거이기도 한다.

오랜 세월 공산당의 허위선전에 익숙해진 한국군이기 때문에 그들의 모략에 미동도 않고 유유히 월남땅에 서있는 것이다.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교관단이 월남에 도착할 때만 해도 비교적 잠잠하던 베트콩의 심리전기구가 비둘기부대에 이어 맹호사단, 청룡여단 등 전투부대가 월남땅에 발을 디디자 맹렬한 비난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비난하는 내용과 같이 한국군은 학살자도 아니었으며 침략자도 아닌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한국군부대들이 심리전을 전개하면서도 그 방법이 전쟁방식이 아닌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약소국가로서, 피지배국의 경험자로서 누구보다 월남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한국군은 월남인을 대할 때 인간으로 존중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방식을 썼던 것이다.

따라서 베트콩과 연락을 유지하면서 그들을 돕던 월남인까지도 한국군의 인간성에 이끌려 한국군에게 협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당황한 베트콩은 더 악랄한 방법으로 나왔다.

즉 한국군에게 협조하는 월남인을 암살하거나 그의 가옥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국군은 협조하는 월남인을 보호해주어야 하는 임무까지 떠맡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들을 보호할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작전을 위하여 잠시 주둔지를 떠나거나 부대교대로 관심이 소홀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이용하여 테러가 가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국군에게는 곤란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한국군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보복을 당한다는 강박관념이 널리 퍼져나가면서 한국군에게 베트콩의 상황을 제보하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베트콩은 계속 이러한 수법을 써가며 한국군과 월남인 사이를 이간시키는 데 온갖 수법을 다 동원하였다.

그리고 이 길만이 한국군을 상대하는 심리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공산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자의 무기 없는 전쟁에서 흔히 패배하는 쪽은 자유민주주의 쪽이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자는 그때그때 국민의 감정을 휘어잡을 수 있는 이슈(issue)를 들고 나오면서 국민들의 불평 불만 등을 해소해주는 양 눈가림으로 속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불만에 가득찬 대중을 꼬이면서 혁명이라는 수단으로 새로운 희망의 터전을 향해 한 걸음 전진한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을 하거나 말을 엉뚱하게 꾸며대면서까지 민중을 선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먼 훗날, 혁명이라고 하면서 민중을 끌어들인 달콤한 말들은 감언이설로 그 탈이 벗겨지고야 만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상황은 바뀌어 지난날의 거짓이 적나라하게 밝혀진다 해도 더 이상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도록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주월연합군의 심리전에 대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주월미군의 심리전은 전형적인 심리전 개념에 입각하여 대적심리전에 중점을 두었으며 월남국민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첫째, 베트콩과 월맹은 공산주의자들이며 그들의 악랄한 공산당식 침략수단을 총동원하여 자유월남을 적화시키기 위하여 침공을 계속하고 있다.

둘째, 공산주의자들의 적화통일 망상에도 불구하고 자유월남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국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아 자유를 수호할 것이므로 반드시 승리는 월남정부에 있다.

셋째, 베트콩과 월맹은 그들의 배후세력에 의한 괴뢰에 지나지 않으므로 언젠가는 자유진영의 연합군에게 패배하고야 말 것이다. 따라서 베트콩과 월맹의 생존은 오직 귀순을 통하여 자유를 얻는 데 있다.

넷째,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의 참전목적은 오직 월남인의 자유를 수호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인 만큼 연합군의 지원을 받는 월남정부를 지지해야만 월남에 평화가 온다.

상기와 같은 임무를 위하여 미군은 월남의 특수여건에 부합된 다양하고도 폭넓은 심리전체제를 갖추어 월남 및 연합군부대와 서로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심리전을 수행하였다.

한편, 월남군은 심리전을 중요시한다는 구실로 참모부의 직위를 격상하고 거기에다 방첩과 헌병기능, 즉 권력기능까지 부여함으로써 헌신적인 봉사와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되는 민사지원기능이 사실상 권위의 상징처럼 거들먹거리는 직능으로 오염되어 버렸다.

따라서 심리전 대상지역의 주민들은 권위를 내세우는 그들에게 가까운 정을 느낄 리가 없었다. 아무리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설득해도 그들 지역의 주민들은 마이동풍 격으로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월남정부 관리들이나 군부의 부정부패가 심해지자 월남정부나 월남군부의 말을 믿지 않는 풍조가 만연되어갔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를 타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행복을 구가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월남정부를 믿고 따릅시다."

부락마다 누비면서 선무공작반이 짚차에 스피커를 달고 선전을 해도, 부락 주민들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누가 통치해도 좋다. 다만 공평한 세상에서 평등한 대접을 바랄 뿐이다."

많은 주민들은 자유민주주의거나 공산주의거나 상관하지 않고 당장에 괄시하지 않는 쪽에게 지지의 정을 보내고 싶어했다.

이러한 평범한 생각을 하는 월남인들 틈에서 베트콩의 심리전은 전개되었다.

"우리는 오직 농민들의 편이며 노동자의 벗입니다. 우리는 인민의 재산을 착취한 자를 물리쳐야 합니다."

짚차에 스피커를 매달고 요란하게 누비고 다니는 월남군 선무공작반이 지나간 다음, 누군가가 귀엣말로 속삭이니 그 말을 들은 농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월남인들의 가슴에 맺힌 한이 있다면 기나긴 세월 중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것과 프랑스, 일본 등 계속 강대국으로부터 유린당한 것인데, 월남인 눈에 미군까지도 침략자로 보인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미군은 월남을 도우러 왔습니다. 월남을 공산주의자로부터 구출하여 자유를 되찾아 주기 위한 군대이지요."

많은 월남인은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마음속 깊이에서 강대국이라는 저항감이 꿈틀거리고 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월남에서 미국은 정말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다. 월남군에게 원조물자를 비롯한 군사장비, 끝없는 군수품의 수송을 단 한푼도 받지 않고 무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러나 월남군인들은 미국이 지원해준 원조물자를 받으면서도 별로 고마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 하에서 미군은 어느 쪽으로부터도 깊은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었으니, 이것은 미군과 월남인만의 불행이 아니라 자유진영 전체의 비극의 씨앗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