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베트남 전쟁시 한국군의 심리전과 대민지원 활동

 

9.  주월 한국군사령부의 심리전 대책

 

월남전에서 월남 군이 군사작전이나 대민 심리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을 때, 주월한국군은 월남정부를 적극 도와가면서 과감한 군사작전으로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전 국토의 평정에 이바지하고자 심리전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특히 주월한국군은 전후방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월남전의 특수상황을 파악하고, 군사작전과 병행해서 대민 지원과 대적선무공작(對敵宣撫工作)을 실시하여 심리전 분야에서 거의 독보적인 업적을 이룩하였다. 심리전의 두드러진 성과는 지역평정과 아울러 월남정부의 통제지역을 넓히고, 베트콩과 선량한 주민을 분리시켜 주민들이 공산주의보다는 자유민주주의 쪽을 선택하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주월한국군 채명신 장군은

"실제 월남전에서는 심리전이 더 중요하다. 현재 상태 하에서 군사작전에 더 비중을 둔 이유는 군사작전이 필요한 적지역이 너무나 넓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월한국군의 활동결과를 보아 심리전의 중요성은 더 증대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군사작전의 불가피성 때문에 심리전이 침체되어 있음을 시인하고 점차적으로 심리전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주월한국군사령부는 1966년도까지 실시한 심리전에 있어서, 비효율적인 문제점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심리전 실태를 여러 각도로 분석 검토하였다. 그리하여 보안책으로써 미군당국과 협의하여 심리전에 필요한 장비의 부족을 조속히 보충하고, 선전매개물(宣傳媒介物)의 제작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는 동시에 첩보의 활용과 심리전 효과에 역행되는 요인을 제거하는 데 힘썼다. 특히 북한 공산집단은 라디오 방송망을 통하여 주월한국군 병사들에게 염전사상(厭戰思想)을 고취시키려 광분하고 있었고, 각종 전단을 살포하여 미군의 용병임을 강조하면서 한국군의 긍지와 주체성을 깎아 내리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주월한국군사령부는 1967년 상반기의 계획을 달성하고자 기본목표를 설정하였다.

첫째, 강력한 군사력을 과시하여 월남정부와 국민에게 필승의 신념을 고취시킨다.

둘째, 베트콩과 주민의 관계를 차단시키기 위한 노력을 집중한다.

셋째, 한·월간의 우호증진과 친선유대를 강화한다.

넷째, 월남정부의 시책을 최대로 지원한다.

다섯째, 한국군과 자유세계의 공동노력을 인식시킨다.

위와 같은 기본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월남의 특수상황에 알맞은 심리전 활동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임을 깨달은 주월한국군은 보다 진지하고 구체적인 이념구현에 전념하였다. 특히 심리전 활동의 실질적인 효과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침을 설정하였다.

첫째로 심리전과 대민 지원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고 구원한다는 정신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즉, 작전지역에서 본의 아니게 양민이 죽는 경우가 생긴다. 비행기 폭격과 포병사격은 물론이지만, 때로는 작전지역에서 수색 중 동굴 속이나 대피호 속에 숨어 있다가 봉변을 당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

'베트콩 속에 양민이 있고 양민 속에 베트콩이 있다'는 비유처럼 적과 아군의 구분이 어려운데다 베트콩은 그것을 이용하여 양민을 방패로 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굴작전의 경우, 양민을 출입구 쪽에 몰아놓고 한국군이 접근하면 저격을 가하고 동굴 속으로 깊이 숨는다. 이때 한국군이 다치지 않았을 때는 별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희생자가 났을 때는 분노한 젊은이들이 수류탄을 던져 넣는다든가 총질을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양민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대민지원이나 심리전 공작에 의하여 애써 한국군이 월남주민으로부터 점수를 땄다가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를 파악한 채명신 장군이 심리전 수행을 위한 방침에서 첫째로 내놓은 것이 양민보호였다.

둘째로 전 장병은 심리전 및 대민지원요원으로 활동하라는 것이다.

심리전을 위한 활동은 주로 연대급 이상의 부대에서 실시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연대급부대 이상이라야 편제상에 민사근무가 있기 때문에 전문요원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대민 지원도 보급기능(補給機能)이 있는 대대 급이라야 실질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 제도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다. 심리전을 위하여 대대나 연대 또는 사단에서 애써 자매결연이나 구호품 증정 그리고 의료지원 등으로 민심을 얻어 놓았는데, 말단 병사들이 부락에서 술 주정이나 하고 행패를 부리면 지금까지 도와준 것은 모두 허사가 되고 한국군에 대한 반감만 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단병사들이 민간인들을 접촉할 때부터 그들에게 한국군의 인간성을 느끼게 해 줄 필요성이 생긴다. 결국 전 장병이 심리전 요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월남인들을 대할 때만이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심리전과 대민지원으로 군사작전을 적극 지원한다는 것이다.

주월한국군이 가끔 군사작전에서 실패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것을 분석하여 보면 대개 정보의 빈곤이 으뜸이다. 적에 관한 정세를 알지 못하고 덤비다가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주민을 장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베트콩은 주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으므로 주민을 이용하면 많은 첩보를 얻게 된다. 그런데 대민 지원을 하지 않으니 심리전 효과는 기대할 수 없고, 그 결과 첩보의 빈곤으로 작전에 타격을 받다. 이러한 이유로 월남에서의 군사작전은 반드시 심리전과 대민 지원으로 뒷받침될 때만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끝으로 심리전과 대민 지원은 월남정부 및 군부, 그리고 주월 미국기관 및 미군사령부와 긴밀히 협조하여 실시하라는 것이다. 심리전이나 대민 지원은 맨 손으로 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심리전의 선무공작만 해도 고가의 방송기재가 필요하고 많은 전단이 필요하므로 인쇄시설이 필요하다. 또한 대민 지원만 해도 많은 구호물자와 식량공급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군은 자신이 절약하여 남은 식량 외에 미군이나 월남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방침 하에 주월한국군의 모든 부대들은 적극적인 심리전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장기화와 전시 경제의 파탄으로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와 생활필수품의 궁핍, 염전사상이 만연됨으로써 심리전 활동에 적잖은 어려움이 닥쳐왔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모든 실적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결과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첫째, 심리전 장비와 선전매개물이 부족하다.

둘째, 대내심리전 활동에 치중하다 보니 베트콩 지배지역에 대한 대외심리전 활동이 미약하다.

셋째, 작전간 귀순자의 진술을 이용한 대적방송에 있어서 귀순의향을 가질 만한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귀순을 권고한 결과, 귀순자가 단절되는 현상이 생겼다. 이는 적의 역대책으로 말미암아 귀순행동에 제약을 받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또한 전단에 귀순자의 사진을 실었는데, 남루한 복장에 우울한 표정의 사진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귀순의향자로 하여금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게 하였다.

넷째, 지역정보부대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이용함에 있어서 포로나 귀순자로부터 획득한 첩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경향이 있었다.

다섯째, 포로에게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제재를 가하거나 또는 귀순자의 진술에 따라 은폐된 무기를 색출하려다 성과가 좋지 않으면 고문으로 그들을 학대하여 도망가게 하는 과오를 범했다. 또한 작전간에 적의 부상자를 방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군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라는 그들의 악선전을 인정해 준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 같은 분석결과에 따라 시정책을 강구한 주월한국군사령부는 이를 예하 각 부대에 시달하여 이 해의 심리전 활동을 차질 없이 실시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그 시정책의 내용은

첫째, 인내심을 가지고 포로나 귀순자들에게 인도적으로 대할 것

둘째, 한·월간의 역사적 공통성과 생활방식 등이 같다는 것을 깊이 인식시킬 것

셋째, 한국군 파월의 의의, 즉 월남인을 돕기 위해서 월남 땅에 왔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시킬 것

넷째, 연합군은 기필코 승리하는 반면에 공산군은 머지 않아 패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주입시킬 것 등이었다.

주얼한국군사령부는 지난날의 실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지적된 심리전 장비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하여 미군 당국과 장비의 조기지원을 교섭하고, 선전매개물의 제작기술을 향상 발전시키기 위하여 관계관 및 실무진의 연구노력을 독려하였다. 그뿐 아니라, 지역정보부대에서 수집된 첩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반면에 심리전 효과를 파괴하는 한국군 자체 내의 제반 모순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대책을 취함으로써 활동상의 애로를 타개하는 데 힘썼다.

주월한국군사령부는 1966년 9월에 실시된 월남정부의 총선거기간 중 베트콩의 선거방해 활동이 빈번했던 사실에 비추어 앞으로 있을 정부통령선거에 다시금 적의 악랄한 방해공작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였다. 첩보에 의하면 공산 측은 1977년의 심리전 방침을 첫째는 국민봉기를 야기하기 위한 인민의 조직강화에 역점을 둔다. 둘째는 반정부 선동을 위한 심리전 활동을 강화한다. 셋째는 전쟁공포심을 유발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 넷째는 흑색선전과 허위선전으로 유언비어가 널리 퍼지도록 온갖 방법을 다 쏟는다 등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본방침에 의거하여 월맹 및 베트콩은 매개수단으로서 활용할 전단제작과 방송편성의 기본요강을 책정하였다.전단은 대상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하되,

월남군에 대해서는

 반미 투쟁과 반전사상을 선동

 베트콩에의 가담을 종용

 베트콩정부 수립에 동조요구

 귀향선동 및 귀향 후 국민혁명참가 권고

 평화가 왔으니 전쟁을 중단하라는 호소

월남주민에 대해서는

 징병제도 반대 선동

 행정관리의 부정부패 폭로

 행정요원의 태업을 선동

 혁명대열의 참가를 호소

한국군에 대해서는

 북한 정책의 선전

 한국정부의 파월 정책 비난

 반전의식을 고취하고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찬양

 한·미·월의 이간을 책동

 김일성의 우상화 선동

이상과 같은 심리전 방침에 따른 전단공세와 방송의 강화를 도모하면서 군사작전을 강화시켜 갔다. 그 무렵 입수된 첩보에 의하면, 1966년부터 북한의 심리전 요원이 월남전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활동보고서는 1966년 6월4일에 최초로 4명의 북한 심리전 요원이 파월된 이래 1977년 2월3일에 2차로 10명의 요원이 추가됨으로써 점진적으로 그 규모가 증강되어 갔던 것이다. 북한 심리전 요원의 활동지침을 보면

첫째, 한국군의 사상전환을 고취하며 한국군의 만행을 확대하거나 날조하여 유포시킨다.

둘째, 한국정부의 파월 정책을 용병(傭兵)과 미제국주의의 강압에 의한 정책임을 비방하여 반정부 감정을 돋운다.

셋째, 반전의식을 고취하고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찬양한다.

넷째, 베트콩간부 양성교육의 일환으로써 한국군의 생활풍습과 사상동향을 학습하도록 한다.

다섯째, 한국군과의 접촉요령과 정치전을 위한 세포조직 방법을 습득시키는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적의 다양한 심리전 활동에 대처하기 위하여 주월한국군사령부는 그들의 심리전에 관한 첩보수집에 노력하는 한편, 한·미간은 물론 각 부대간에 신속히 심리전 정보를 교환하는 동시에 전훈(戰訓)의 조속한 전파를 위하여 심리전순보를 발간 배포하였다. 또한 1966년 6월1일에 창설된 민사심리전중대로 하여금 전단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실시하게 하였다. 전단내용은

첫째,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 보장 또는 약속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둘째, 전투요원에게 필요한 전단은 작전지역에 수시로 장기간 살포한다.

셋째, 전단은 항공기로 살포한다.

넷째, 적의 상황에 적합한 내용의 특수전단은 시기에 알맞게 제작하여 살포한다 등이었고,

확성기방송은

첫째, 전투 시에는 전투와 동시에 확성기 방송을 실시한다.

둘째, 항공기에 의한 대적방송은 야간에 실시한다.

셋째, 귀순자를 이용하여 육성방송을 실시한다.

넷째, 해안에 근접한 지역에서 작전할 때에는 해상방송을 이용한다 등이었다.

효율적인 대민 지원은 곧 심리전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판단한 주월한국군사령부는 파월 초기에 이미 시달한 대민지원의 세부지침에 따라 더욱 철저한 봉사활동을 강조함과 아울러 예하 각 부대가 그동안의 대민 활동을 통하여 각 부락 및 학교 등과 맺은 자매결연을 기반으로 보다 친숙한 유대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그 세부지침은

첫째, 대민 지원은 월남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도록 한다.

둘째, 대민 지원은 월남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원도(支援度)를 높이는데 기여하도록 한다.

셋째, 대민 지원을 통하여 월남인의 자립, 자조정신과 국가건설에의 참여의식을 고취시킨다는 것이었다.

이상의 실천사항에 따라 주월한국군은 월남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요망하는 농사지원, 건설지원, 의료지원, 구호활동, 친선행사, 태권도 지도 등에 힘을 기울여 성실한 자세로 지원활동을 계속하였다.

이 무렵 사이공포스트지의 사설에 한국군의 민사지원에 대한 찬양기사가 실렸다.

「한국군은 우리들 월남인에 비하여 몸이 크고 건장한 것 외에는 모든 인상이 똑같다. 그리고 군기가 엄하고 태도가 분명하여 호감을 준다. 먼 나라가 아니라 바로 이웃에 사는 것 같은 정다움이 느껴진다.

한국군이 태권도를 잘하고 전투시 용맹스럽다는 것은 일찍이 우리들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렇게 성실하게 월남인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한국군은 어디서나 월남인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 무더운 태양 아래서 땀을 흘리면서 농가를 짓고 농로를 닦으며 볏단을 매는 등 농촌일손을 돕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월남에는 많은 나라 사람들이 다녀갔다. 중국인, 프랑스인, 일본인 등. 그러나 누가 농촌의 힘든 일을 직접 거들어 주었단 말인가? 농촌에서의 한국군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며 우리들과 같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