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베트남 전쟁시 한국군의 심리전과 대민지원 활동

 

6.  월남에 한국인 촌장

 

56세인 월남인 윙덕(Nnguyen Doc)씨는 히븐 부락의 촌장이다. 그는 강파르게 마른 몸매에 키는 보통이다. 자기를 소개할 때에는 항상 '合榮邑長阮德(히븐읍장 윙덕) 이라고 한문으로 쓴다.

언제 어디서 보아도 웃는 얼굴. 월남인에게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구수한 맛과 정감을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월남인 누구 나가 겪어야 했던 비극을 치렀다.

원래 그는 상당한 토지를 갖고 있어서 시골 사람으로서는 비교적 부유한 층에 속했다. 공산도배들이 즐겨 부르는 유산계급(有産階級)이었다는 게 옳은 표현일는지 모르겠다.

3남2녀를 둔 그의 가정은 행복하기만 하였다. 그런데 베트콩이 그의 마을을 점령한 후부터 그에게도 불행의 그림자가 찾아 들었다.

왜냐하면 베트콩에게는 이 윙덕이라는 사람이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공산도배들이 말하는 소위「자본주의 반동분자」라는 낙인이 찍혀져 있었다.

그래서 윙덕씨는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많은 세금을 징수 당하고 고역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큰아들인 23세의 티안은 베트콩들의 말대로 특수훈련을 받기 위해 끌려간 지 2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공산도배들의 만행이란 어쩌면 이렇게도 꼭 같을까?

아군의 작전이 공격적으로 활달하여짐에 따라 베트콩 골수분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대신 지방유격대원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신변에 위험을 느껴 마을을 탈출하였다. 산 속에 숨어 있다가 아군의 작전이 끝난 후, 튜티라는 곳에 피난 가 있었으며 히븐 부락이 수복되자 정든 옛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행히 집에 남겨두고 간 아내와 어린 자식들은 해를 입지 않고 살아있었다.

"내 큰자식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도 해치거나 원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식 하나 태어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이젠 모두가 지나간 일들이며 나만이 겪는 괴로움이거나 서글픔이 아닐진대 어찌 나 혼자만 슬프다고 할 수 있습니까."

미소를 잃지 않던 그도 이 말을 할 때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난날을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는 한문을 잘 알고 있어서 통역관이 없을 때에는 대원들과 한문을 써서 주고받으며 의사를 통하고는 한다.

그가 관장(管掌)하는 주민은 거의 3,000여 명에 달하나, 아직도 미수복지구가 많아 현재 그는 1,500여 명을 관할하고 있다.

부락민들은 그를 잘 따른다. 부락민 누구에게나 물어 보아도 그를 원망하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신변을 보호하기 위하여 낡은 권총이나마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18세의 둘째 아들이 마치 경호원처럼 그의 뒤를 따라 다닌다. 마치 어느 서부영화에 나오는 부자(父子) 카우보이처럼…. 그는 재구대대에 있어서 둘도 없는 협조자이다.

하루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

오후 3시경 아군의 정찰대가 정찰 도중, 산 속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수색해 본 결과 수상한 자를 체포하여 검문소로 데리고 왔다. 그는 약 30세 가량의 젊은 사람으로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통역관을 통해서 심문을 하니, 자기는 과거에 베트콩 게릴라 요원으로 활동하였으나 얼마 전에 월남 민병대(民兵隊) 계통으로 귀순해 왔다고 한다.

그는 묻는 질문에 횡설수설하였으므로 권중택 대위는 윙덕씨를 불러 확인하려고 했다. 지금까지 수상한 자나 베트콩 용의자를 잡았을 때 윙덕씨를 불러서 확인하면 가장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만큼 대원들에게 신임이 두터웠다.

윙덕씨가 검문소에 도착하자 그에게 간단한 심문결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백지에다 한문으로 '被者熱烈共産分子(피자열렬공산분자, 저 사람은 열렬한 공산분자이다.)'라고 써 주며 윙덕씨는 흥분된 어조로 무어라고 한참 동안 중얼거렸다.

물론 이 용의자가 한문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본인 앞에서 더구나 두 눈을 말똥거리고 있는 목전에서 이런 글을 써 보이므로 권 대위는 윙덕씨의 신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후에 달려온 민병대원에 의해 이 용의자는 악질 베트콩으로 판명되어 후송하였다. 달려온 민병대는 이 용의자를 보자마자 주먹으로 치려는 것을 한 병사가 만류했다.

그 민병대는 약 1개월 전에 이 용의자가 던진 수류탄에 의해서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는 목에 남아있는 큰 흉터를 가리켜 보였다. 그 험악한 젊은이는 히븐 부락민은 아니었지만 이 지역 일대에서 악질로 유명한 지방유격대원이었다.

권 대위는 윙덕씨에게 나지막하게, 그러나 걱정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우리에게 그토록 협조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만, 당신의 신변에 해가 미칠지도 모르니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부탁하듯이 그의 동의를 구하자, 그는 빙그레 웃더니 그 날 오후부터는 권총을 차고 또 카빈총도 메고 다녔다.

그는 읍장으로서만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부락민 하나하나의 언어와 행동까지 친절하게 지도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권 대위는 그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감동하였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특수임무 소대원들이 히븐 부락민에게 대민 사업으로 쌀을 분배하여 주고 있을 때였다.

정보관이 윙덕씨에게

"선량한 부락민과 베트콩 가족들에게 똑같이 쌀을 분배해주고 싶은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서슴없이

"누구도 그런 것에 불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면서 웃는다.

정보관이 분명히 어떤 선입감을 가지고 물어보았을 것인데 그의 대답은 조금도 꾸밈이 없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 같았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의 오랜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서로 돕는 그 고운「휴머니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날 한국동란 시, 서로 돕고 도와도 힘에 겨울 때에 서로 헐뜯고 모략 중상하여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던 일을 생각하면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인의 이 고질적인 병은 언제나 면역을 얻게 될까….

재구대대의 대원들은 윙덕씨를 비롯한 히븐 부락민을 만나면 꼭 고국의 형제자매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히븐 부락민과 대원들이 이처럼 가까워지고 친숙해진 데는 월남의 한국인 촌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정보관 권준택 대위의 노력이 매우 크다.

그는 재구대대 정보관의 직책에다 겸하여 특수임무소대를 운영 감독하면서 심리전 및 대민사업도 책임을 지고 있다. 원래 심리전과 대민사업 관계는 정보관의 직책과는 무관하였지만 대대장은 그에게 이 모든 것을 겸하도록 지시하였던 것이다.

이유인즉 정보관의 직책이라면, 첩보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인데 이 첩보를 얻으려면 자연히 민간인과 접촉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비교적 사교성이 좋고 영어에도 능통하였으므로 심리전과 대민 관계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적임자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거의 매일 이곳 부락민과 접촉을 하게 되었고, 능란한 사교성을 발휘하여 며칠이 지나고부터는 히븐 부락민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가 차를 타고 부락을 통과할 때 어린아이들은 두손을 흔들며「다위권!」을 외칠 만큼 유명해졌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가씨들도 얼굴을 붉히면서 그를 보면 반가워한다.

또 그가 총각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는 윙덕씨가 백지에 '我願權大尉婚 越南娘(아원권대위혼 월남랑, 나는 권 대위가 월남아가씨와 결혼하기를 원합니다)'라고 써 온 적이 있다. 대대장이 곧 '我大贊成(아대찬성, 나도 대찬성입니다)'라고 써 보이자 그는 정말로 알고 '祝祝…(축축, 아주 좋습니다)'이라고 계속해서 써 보이는 바람에 모두가 한바탕 웃은 일이 있었다.

권 대위가 부락을 돌아다닐 때에는 비록 초라한 집이지만 밥과 산나물 등을 정성 들여 만들어 놓고 먹으라고 권할 정도로 친숙해져서 대원들은 그를 월남의 '한국인 촌장'이라고 불렀다.

그가 부락민들을 모아 놓고 무슨 말을 시작할 때 통역관을 통하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면 부락민들은 한결같이,

"맹호"

하며 손을 흔들고 아우성을 친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안녕하십니까? 아버지."

라고 한국말로 그에게 인사하면, 권 대위는 기쁜 표정을 짓는 한편 얼굴을 붉히곤 하였다.

처음에 대대가 이곳에 왔을 때는 열 살 가량의 꼬마들이 담배를 피우며 대원들을 볼 때마다 담배를 달라고 졸라댔다.

권 대위는 이런 소년을 보면 꾸짖어 주고 촌장 윙덕씨나 부락 어른들에게도 이야기하여, 한 달이 지난 후부터는 꼬마들이 담배를 달라거나 피우는 짓을 하지 않게 되었다.

권 대위가 구태여 싫다는데도 부락민들은 고추나 마늘, 파를 가져왔다. 얼마 후 권 대위가 이것을 받기 꺼려하는 것을 알고는 그것들을 종이에 싸가지고서 검문소에 있는 대대의 병사들에게 와서는 권 대위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작년 연말에는 부락민들로부터 권 대위에게 귀중한 선물이 증정되었다. 어느 날 읍장이 귀중한 물건을 싼 듯한 보자기 하나를 가져왔다.

호기심으로 보자기를 풀어보니, 흰 백지에 '合營邑長阮德 大尉權祝願幸福新年到來(합영읍장완덕 대위권축원행복신년도래, 히븐 읍장 윙덕은 신년을 맞이하여 권 대위의 행복을 축원합니다)'라고 쓰인 것과 손수건 만한 흰 헝겊이 나왔다. 거기에는 '合營邑民願 幸福大尉權(합영읍민원 행복대위 권, 히븐 읍민들은 권 대위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이라고 세 가지의 색실로 수가 놓여 있었다.

흰 백지의 글은 윙덕씨가 직접 쓴 것이었고 헝겊에는 세 아가씨들이 공동으로 수를 놓았다는 것이다.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비록 언어와 풍속이 다른 사람들이건만, 그들과 재구대대 사이에 오가는 인정 앞에는 저 멀리 들려오는 총소리와 포성도 한 가락의 귀에 익은 선율로 들리는 것 같았다.